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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고도화-제재 맞교환, 구슬 꿸 참모가 필요해

요약
  •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공존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 중단과 제재 해제의 맞교환이라는 실질적 해법을 시사했다.
  • 그러나 연설 직전 발생한 DMZ 지뢰 폭발 사고는 여전히 한반도가 전쟁 중임을 상기시켰으며, '비핵화' 표현을 둘러싼 대통령과 참모진 간의 엇박자 등 현실적 과제들이 노출되었다.
[한반도]이재명 대통령, 유엔 연설서 한반도 평화공존 위한 실질적 청사진 제시 평가… 11월 아펙 정상회의 때 대화 돌파구 열어야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9월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026년 9월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무장지대’(DMZ)는 고약한 언어도단이다. 지구에서 가장 촘촘하게 무장된 땅이 한반도를 가르는 비무장지대다. 2026년 9월21일 오전 10시50분께 서부전선을 관할하는 육군 제25사단 최전방 부대 소속 장병들이 비무장지대에서 ‘수색로 개척’ 작전 도중 폭발 사고가 났다. 지뢰였다. 장병 3명이 다쳐 2명은 응급헬기로, 1명은 작전에 참여했던 다른 전우들과 함께 육로로 이동해 각각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했다. 수색대대장은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수술 뒤 위험한 상황은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은 평화운동가 조디 윌리엄스와 함께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단체는 2018년 10월 펴낸 보고서에서 한반도 비무장지대 일대에 매설된 지뢰가 약 200만 발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1㎡당 2.3개꼴로 세계에서 ‘지뢰 밀도’가 가장 높다. 지뢰의 치명적 위협은 은밀성과 무차별성에 있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군인도 민간인도 가리지 않는다.

1997년 12월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인류는 대인지뢰 사용·비축·생산·이전을 전면 금지하고 기존에 매설된 지뢰를 폐기하기로 다짐했다.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협약)이다. 협약은 121개국이 참여했고 1999년 3월1일 발효됐다. 현재 참여국은 162개국까지 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는 협약을 비준했고, 미국·중국·러시아는 서명조차 하지 않았다. 분쟁을 겪는 파키스탄과 인도, 한국과 북한도 ‘예외’를 주장하며 여태 협약 참여를 않고 있다.

 

한반도가 ‘전쟁 중’임을 웅변한 지뢰 사고

 

“공화국의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 2026년 3월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5기 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사상 처음으로 영토 조항(2항)을 신설했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론’을 개헌을 통해 명문화한 셈이다. 북은 2024년 초부터 군사분계선(MDL)을 실질적인 국경선으로 삼기 위해 요새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비무장지대 일대 지뢰 매설도 그중 하나다.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한반도의 오래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9월22일 제81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부전선 지뢰 폭발 사고는 우리가 여전히 ‘전쟁 중’임을 웅변한다. 이 대통령은 “오랫동안 멈춰 있던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한반도 전쟁 종식과 평화 체제 전환을 위한 당사자 간 대화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25년 9월24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교류(Exchange)·관계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를 뼈대로 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END) 구상을 내놓았다. 2026년 연설에선 한반도 평화공존의 방향을 담은 세 가지 청사진을 밝혔다. 첫째,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공존이다. 둘째,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공존이다. 셋째,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평화공존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2025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이고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엇박자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통된 인식으로부터….” 2018년 9월19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쪽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서명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9·19 군사합의) 전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시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도 전면 철수하기로 했다. 비무장지대의 실질적 비무장화가 목표였다. 2024년 6월4일 북쪽의 오물풍선 살포 등을 빌미로 당시 대통령 윤석열은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니 지금, 누가 누굴 탓하는가?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어차피 별다른 실효성 없는 제재와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의 핵능력 고도화 중단과 제재 해제를 맞바꾸자는 실질적 해법을 제시한 셈”이라며 “관건은 이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이냐는 것”이라고 짚었다. 대통령이 큰 뼈대를 제시했으니, 참모진은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2026년 9월29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모습. 연합뉴스 2026년 9월29일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모습.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란 표현을 썼다. 연설문 준비 과정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외교부, 통일부의 치열한 논의 끝에 초안엔 ‘비핵화’란 표현이 담겼지만, 이 대통령이 직접 ‘핵 없는 한반도’로 수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 강력히 반발하는 현실을 고려한 결정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 연설 전날인 9월21일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회의에선 “한반도 비핵화 목표 실현을 위해 계속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엇박자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9월24일 발표한 담화에서 “그 어떤 경우에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고 백 년, 천 년이 지나도 절대불변할 우리 국가의 확고부동한 핵보유 의지를 가장 단호한 어조로 재천명,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9월24일 오전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관계를 비롯한 핵심 현안을 논의했다. 중국 외교부가 9월25일 낸 관련 자료를 보면, 두 정상은 중동 정세와 우크라이나 전황에 더해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 11월18~19일 중국 광둥성 선전에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다. 국가정보원은 9월30일 오전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미 대화 관련해선 APEC 전후 50% 정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창수 전 청와대 통일정책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공간이 열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미와 남북 두 트랙을 분리했다. 대화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다. 지금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두 트랙이 만나야 한다. 외교안보 당국자들의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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