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은 '진짜 꽃·나무'로 980만명 흥행…전문가 "관람객 기대 충족"
전남광주 여수시 돌산읍에 자리한 여수세계섬박람회 행사장.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여수 밤바다'와 '낭만포차'로 대변되며 남도의 대표적 관광 도시로 자리 잡은 전남광주 여수시가 그간의 명성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 9월 5일 개막한 여수세계섬박람회의 부실 운영으로 개막 첫날부터 수많은 비판이 쏟아지면서다. 도로 정비 등 연계사업을 포함해 18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제2의 전북 새만금잼버리 사태라는 악평도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부산 북항에 나타난 상어 '부캉이'가 여수를 이겼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부산보다 더 직접적으로 여수와 비교되는 도시가 있다. 여수 바로 위에 위치한 순천시다. 순천은 2013년과 2023년 두 차례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폐막 이후 현재까지도 순천만국가정원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 이웃도시의 성패(成敗)는 무엇이 갈랐을까. 기자가 체감한 여수와 순천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진짜'와 '가짜'의 차이였다.
여수의 실패와 순천의 성공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난 9월 23일 찾은 여수시 돌산읍 여수세계섬박람회 현장은 그간 언론에 노출된 한산한 모습 그대로였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휴가를 낸 사람들도 많았을 터인데, 방문객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입장료 1만5000원(성인기준)을 지불하고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인 것은 상설체험 부스와 벤치, 파라솔이 설치된 넓은 공터였다. 상설체험 부스는 '고래꼬리 키링 만들기' '여수 섬 이끼정원 만들기' 등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체험에 참여한 관광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도우미들만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공터에는 섬박람회의 마스코트인 '다섬이'를 비롯해 바다표범, 물고기, 개구리, 긴꼬리원숭이 모형들이 설치돼 있었다. 모형 동상들 사이로 벤치와 파라솔이 겹겹이 설치돼 있었지만 앉아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메인 부스인 주제섬, 해양생태섬, 문화섬, 미래섬 등 행사장 내부에는 이런 구조물만 더 눈에 띄게 잘 보였다. 각 부스의 이름 자체도 '섬'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지만 피라미드 형태 주제섬을 제외하면 밋밋한 흰색 천막에 불과했다.
섬의 생태와 자연 경관을 표현하고자 했던 해양생태섬 내부에 전시된 나무, 해양 생물, 식물 등도 모두 모형이었다. 현장에서는 섬과 바다라는 큰 주제를 품고 있는 박람회인 만큼 해양 생물들의 실제 표본이라도 보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볼 수 있는 것은 조잡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다사자, 바다쇠오리, 게 모형뿐이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 역시 불명확해 보였다. 주제섬과 문화섬, 미래섬 내부에 위치한 구조물들은 '섬' 자체와 크게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고전문학 구절 내용이나 유명인들의 명언을 비석처럼 만들어놨고 공간을 채우기 위한 구조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광양에서 왔다는 40대 관광객 박모씨는 "우리 아들들을 포함해서 요즘 애들은 하도 좋은 걸 많이 봐서 웬만한 전시회에는 반응이 잘 없다"며 "해양생태섬은 한 5분 정도 보다가 나갔다"고 말했다.
전남광주 순천시 오천동에 위치한 순천만국가정원.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여수, 2012년 엑스포 노하우 사장
같은 날 오후 4시경 기자는 여수세계섬박람회장에서 나와 곧바로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순천시 오천동·풍덕동 일대의 동천 변에 조성된 순천만국가정원은 국내 '1호 국가정원'이다. 여수세계섬박람회(1만5000원)보다 저렴한 1만원(성인기준)의 입장료를 내고 순천만국가정원 내부로 들어서자 앞선 섬박람회장과는 달리 '진짜' 꽃과 나무들이 바로 보였다.
순천만국가정원은 입구부터 그린아일랜드, 호수정원, 세계정원, 습지센터 등 모든 부스로 이어지는 길목이 실제 꽃과 나무들로 꾸며져 있었다. 박람회가 추구했던 '정원'과 '꽃' '생태'의 정체성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관광객들에게 포토 스폿으로 인기가 많은 세계정원 구역 내 네덜란드 정원에는 실제 크기 풍차가 돌아가고 있고 조화가 아닌 실제 튤립이 심어져 있었다. 흰색 천막 위주로 급조한 분위기가 역력한 여수섬박람회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전남광주 순천시 오천동에 위치한 순천만국가정원. photo 강은이 영상미디어 기자앞서 순천시는 2013년 4월 제1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시작으로 2023년에도 2회 박람회를 유치했다. 특히 2회 박람회 당시 순천시장이었던 노관규 전 시장은 박람회장 현장에 집무실을 두고 매일 출근하며 진행 상황을 챙겼다. 그 결과 박람회는 1회 대회에 이어 2회 대회도 대성공을 거두면서 순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2023년 제2회 박람회 기간 중 다녀간 관광객은 순천 인구(27만명)의 36배가 넘는 980만명에 달했다. 여수세계섬박람회의 목표 관람객 300만명의 3배가 넘는다.
호남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은 순천만정원박람회와 여수섬박람회의 차이로 '비주얼 자체가 순천은 가고 싶고, 여수는 안 가고 싶게 만든다'라고도 했다. 사실 2012년 여수엑스포를 치러낸 여수는 순천보다 숙박시설 등 관광인프라가 더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14년 전 국제대회를 치러낸 노하우는 섬박람회를 앞두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여수세계섬박람회 두 곳 모두를 방문해 봤다는 50대 관광객 정모씨는 "순천만정원은 아내를 데려가든 애들이랑만 오든 동호회끼리 오든 한눈에 봐도 예쁘고 나들이 온 느낌이 난다"며 "여수섬박람회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콘셉트가 뭔지 잘 모르겠고 걸어다닐 맛이 안 났다"고 말했다.
김민서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순천만정원박람회의 경우 정원을 즐기고자 하는 관람객의 기대가 행사장에 도착한 즉시 충족된 경우"라며 "반면 여수는 섬박람회라는 이름과 달리 섬의 부수적인 요소만 재현하거나 설명하는 '대리 경험' 위주로만 소비돼 관람객들의 만족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