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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통신법을 다시 묻다㊤] ‘통신사 독박 투자’ 공식 흔들린다

요약
  • AI와 6G 시대에 네트워크가 국가 핵심 인프라로 부상했으나, 통신사들은 수익원 부족과 과도한 투자 부담으로 설비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에 해외 주요국들은 민간 투자를 유도하고 비용 분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규제 개편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인공지능(AI)·6G 시대, 네트워크를 둘러싼 셈법이 달라지고 있다. 통신사의 사업 설비로 여겨졌던 네트워크가 국가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디지털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수혜 범위는 산업 전반으로 넓어졌지만, 정작 투자 부담은 여전히 망을 구축하는 통신사업자에 집중돼 있다.

여기에 5G 이후 뚜렷한 수익원을 찾지 못한 통신사의 투자마저 감소하면서, 민간 투자에만 기대 차세대 인프라 구축을 지속할 수 있느냐는 고민도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규제를 손질해 민간의 투자를 끌어내고, 달라진 산업구조에 맞춰 비용과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네트워크 정책을 다시 짜는 모습이다.

◆ 로봇 경쟁력도 망에서 갈린다…AI가 바꾼 네트워크 공식

AI 시대 도래와 함께 이동통신이 5G에서 6G로 넘어가면서 통신망의 역할도 달라질 전망이다.

이미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장해왔지만 피지컬AI 시대에는 네트워크의 속도와 용량, 지연 성능이 로봇과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타 산업의 생산성과 비용 경쟁력까지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로봇마다 고가의 GPU를 탑재하는 대신 네트워크를 통해 AI 연산을 지원하면 단말 비용을 낮추면서 다수의 로봇을 운용할 수 있는 식이다.

김동구 연세대 교수는 “앞으로 로봇의 경쟁력은 개별 로봇 한 대가 얼마나 똑똑하냐뿐 아니라 여러 로봇이 각자 학습한 경험을 서로 얼마나 빠르게 교환하고 학습하느냐에 달릴 수 있다”며 “결국 로봇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반에도 네트워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작 투자 주체인 통신사의 설비투자비용(CAPEX)은 감소하는 추세다. 5G 투자 이후 뚜렷한 신규 수익원을 찾지 못하면서 추가 투자 여력이 줄어든 영향이다. AI·6G에 대응하려면 다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수익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더해 기존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통신사가 부담하는 주파수 할당대가는 연간 약 8000억원, 전파사용료는 약 2000억원에 달한다. 무선국 검사 수수료와 면허세도 각각 약 400억원 수준이다.

특히 향후 요구되는 투자 규모는 지금까지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한 망 증설을 넘어 네트워크 전반의 고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AI 확산으로 업링크 트래픽과 데이터 사용량의 변동성이 커지면서다.

김 교수는 “미디어 데이터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필요한 용량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AI가 데이터를 사용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며 “AI는 데이터 사용량의 변동성이 커 기존처럼 이용자가 30명에서 300명으로 늘었다고 단순히 용량을 10배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트래픽 변화에 따라 훨씬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로 재탄생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투자 책임은 통신사의 몫?…국가 인프라 부상에 흔들리는 기존 공식

네트워크가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한 만큼, 구축과 고도화의 책임을 통신사에 집중시킨 현재의 구조가 여전히 유효하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과거에는 주파수라는 공공재를 할당받아 통신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통신사가 망 투자도 책임졌지만, 이제는 통신서비스의 성장성이 둔화된 반면 AI·클라우드·플랫폼 등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각국은 먼저 민간이 계속 투자할 수 있는 여건부터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영국 과학혁신기술부(DSIT)는 ‘모바일 시장 검토(Mobile Market Review)’에 착수하면서 통신시장이 급격한 시장 변화와 지속적인 투자난이라는 변곡점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은 2018년부터 2025년까지 495% 증가했지만 2024년 모바일 서비스 가격은 실질 기준 2019년보다 25% 낮아졌다.

영국 정부는 “전 세계 정부와 규제기관은 새로운 시대에 혁신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통신 정책과 규제체계를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영국의 국제 경쟁력을 보호하고 고품질의 전국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은 “통신산업이 투자자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산업이 됐다는 진단을 봐야 한다”며 “요금은 인상하기 어렵고 가입자는 포화됐으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원을 찾기도 쉽지 않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성장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산업이 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통신산업이 다시 매력적인 산업이 되려면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고 이용자가 그 서비스에 반응하며 앞으로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야 한다”며 “사업자가 다양한 신규 서비스를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어야 하고, 여러 방식으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투자할 이유’ 만든 EU…망 투자 저해하는 규제 대대적 개선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 규제체계 개편에 나선 곳이 유럽연합(EU)이다. EU는 디지털네트워크법(Digital Networks Act·DNA)을 통해 민간의 네트워크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에 나섰다.

EU 집행위원회가 올해 1월 제안한 DNA는 회원국별로 분절된 전자통신 규제를 하나로 묶는 것이 골자다. 한 회원국에서 사업 신고를 하면 EU 전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주파수 이용권의 장기 안정성을 높여 투자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DNA는 통신사의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데서 더 나아가 네트워크를 둘러싼 비용과 책임의 구조도 손봤다. 통신사와 콘텐츠사업자 간 망 이용대가 분쟁에 규제기관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해 글로벌 빅테크와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네트워크 투자 여력을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유럽은 디지털 규제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데 굉장히 탁월하다. 2021년 디지털 컴퍼스(Digital Compass)와 DSA, 최근 DNA까지 긴 호흡으로 정책을 단계적으로 쌓아왔다”며 “개별 규제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방향 아래 일련의 제도를 치밀하게 연결해온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러한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설계는 우리나라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네트워크 고도화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과거처럼 국가 차원의 대규모 재원을 투입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여건에서 이를 실제로 조달해 집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업자가 대규모 투자를 지속할 수 있도록 국내 여건에 맞는 투자 재원 확보 방안과 투자 유인 구조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해외 각국 분담 책임 재설계 흐름…한국도 30년 된 통신법 손본다



EU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달라진 네트워크의 역할에 맞춰 기존 통신 규제의 틀을 손보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2022년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통신망을 직접 보유하지 않더라도 사회·경제적 영향력이 큰 검색과 SNS 등을 규율 대상으로 포함했다. 통신망 보유 여부를 중심으로 사업자를 구분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서비스의 영향력을 기준으로 책임의 범위를 넓힌 것이다.

미국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네트워크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함께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상원에 발의된 ‘소비자를 위한 브로드밴드 비용 절감법’은 통신사업자 중심이던 보편서비스기금(USF)의 분담 대상을 대형 플랫폼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미국 인터넷 트래픽의 3%를 초과하고 미국 내 연매출이 50억달러를 넘는 대형 엣지 사업자가 대상이다.

마크웨인 멀린 미국 상원의원은 “엣지 사업자의 USF에 대한 공정한 기여는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어야 한다”며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가 농촌 브로드밴드 네트워크 전체 트래픽의 75%를 차지하지만 스트리밍 기업으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비용은 소규모 농촌 브로드밴드 사업자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 가능하고 저렴한 인터넷은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그동안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원격의료와 교육, 고용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며 “농촌 지역 주민들도 도시 지역 주민들과 동일한 연결성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와 업계 역시 입법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해외 주요국이 규제를 완화하며 사업자의 투자 여건을 넓히는 상황에서 국내 규제만 지속될 경우 글로벌 네트워크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고, 이는 곧 AI 서비스와 관련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법제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존 기간통신사업자 중심의 규제체계를 AI·디지털 시대에 맞게 손질하기 위해 오는 12월을 목표로 전기통신사업법 전면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전면 개정은 지난 30여년간 정부와 정치권,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얽히며 수차례 추진과 중단을 반복해왔다. 해외 주요국이 네트워크를 디지털 인프라로 재정의하고 ‘누가 투자하고,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중심으로 규제의 틀을 다시 짜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내에서도 달라진 산업구조를 반영한 법제 개편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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