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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열의 AI 시대 문화 오디세이] ⑪ '그것이 존재했다'는 신화의 종말… AI 시대, 사진의 진실을 묻다

요약
  • AI 이미지 생성 기술의 발달로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진의 오랜 신뢰와 본질이 흔들리고 있다.
  • 육안으로 진위 판별이 어려워지자 산업계는 디지털 서명(C2PA) 등 출처 정보를 기록하며 대응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 AI 시대, 사진의 진실을 묻다

2023년 4월, 소니 세계 사진상 시상식장. 크리에이티브 부문 우승작으로 흑백 인물 사진 한 점이 선정되었다. 두 여인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오래된 가족 앨범에서 빠져나온 듯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수상자 보리스 엘다크센은 상을 거부했다. 해당 이미지는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 아니라 AI 이미지 생성기 'DALL·E 2'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도, 관객도 감쪽같이 속은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이것은 사진이 아니다. AI 이미지가 진짜 사진과 같은 선상에서 겨뤄서는 안 된다."
보리스 엘다크센이 DALL·E 2로 생성한 〈Pseudomnesia: The Electrician〉. 2023년 소니 세계 사진상 우승작으로 선정되었으나, 작가는 "사진이 아니다"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사진=Bor 보리스 엘다크센이 DALL·E 2로 생성한 〈Pseudomnesia: The Electrician〉. 2023년 소니 세계 사진상 우승작으로 선정되었으나, 작가는 "사진이 아니다"라며 수상을 거부했다. (사진=Boris Eldagsen)
사진은 오랫동안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화가는 상상을 그려내지만 카메라렌즈는 눈앞에 실재하는 대상만을 담아낸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법정은 사진을 증거물로 채택했고, 언론은 사진 한 장으로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고발했으며, 우리는 여권 사진으로 자신의 신원을 입증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제는 이러한 신뢰의 결집이었다.

1917년 영국에서 두 소녀가 요정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이 발표되었을 때, 셜록 홈스의 창조자인 소설가 코넌 도일마저 진짜라고 믿었던 이유 역시 '사진에 찍혔다'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이 믿음의 본질에 가장 깊이 파고든 이는 비평가 롤랑 바르트다. 1980년 저서 『밝은 방』에서 그는 사진의 핵심을 단 한 문장으로 정의했다. "그것이 존재했다(That-has-been)." 셔터가 열리던 바로 그 순간, 카메라 앞에 무언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절대적인 확신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낡은 사진을 들여다볼 때 가슴 깊이 밀려오는 감정의 실체 역시 '이 사람이 이곳에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 그는 저서 『밝은 방』에서 사진의 본질을 '그것이 존재했다'는 확신으로 정의했다.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 그는 저서 『밝은 방』에서 사진의 본질을 '그것이 존재했다'는 확신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사진의 역사에서 조작은 늘 공존해 왔다. 1855년 크림전쟁 당시 종군사진가 로저 펜튼은 〈죽음의 그림자 계곡〉을 촬영하며 연출을 위해 연출용 포탄을 길 위에 늘어놓았다는 의심을 오래도록 받았다.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초상화 역시 다른 정치인의 몸에 링컨의 얼굴을 합성한 작업이었다. 스탈린은 정적을 숙청할 때마다 옛 사진에서 그들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증거'로서의 사진은 처음부터 손댈 수 있는 대상이었던 셈이다. 다만, 과거의 조작에는 숙련된 기술과 막대한 노력이 필요했고,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허점이 드러났다.

AI는 바로 그 마지막 문턱마저 없애버렸다.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정교한 장면이 단 몇 초 만에 생성된다. 바르트가 사진의 본질이라 칭했던 '존재했음'의 전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1937년 스탈린 곁을 걷던 비밀경찰 총수 니콜라이 예조프(왼쪽). 숙청된 후 그는 공식 사진에서 완벽히 삭제되었다(오른쪽). 디지털 이전 시대에도 사진의 증거 능력은 가공될 수 있었다. 1937년 스탈린 곁을 걷던 비밀경찰 총수 니콜라이 예조프(왼쪽). 숙청된 후 그는 공식 사진에서 완벽히 삭제되었다(오른쪽). 디지털 이전 시대에도 사진의 증거 능력은 가공될 수 있었다.
통계 수치는 변화의 속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된 선거 관련 딥페이크 영상 삭제 요청은 2024년 총선 당시 388건에서 2025년 대선 당시 1만 510건으로, 단 1년 만에 약 27배 급증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을 요구한 딥페이크 불법 영상 역시 2022년 3,574건에서 2024년 2만 3,107건으로 2년 만에 6배 이상 늘어났다. 제작 비용과 수고가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가짜 이미지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도적 대응은 늘 한발 늦다. 2026년 1월에야 시행된 AI 기본법은 AI 생성 콘텐츠에 해당 사실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하고, 딥페이크 이미지에는 식별 표시를 붙이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 표시가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AI 식별 표시를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39%에 불과했다. 나아가 응답자의 66%는 "실제 사진과 AI 이미지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고 답했다. 식별 표시는 화면 캡처나 재저장 과정에서 손쉽게 제거되며, 가짜를 판별하는 기술 역시 새 생성 모델이 나올 때마다 한계를 드러낸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사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다. 중고 거래 상품 사진, SNS 프로필, 재난 현장 포착 이미지 등 매일 이미지를 근거로 신뢰를 형성하고 거래를 진행한다. 그 신뢰의 기반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육안으로 진위를 가리기 어려워지자 산업계는 대응 방향을 전환했다. 이미지 자체에서 진위를 판별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미지 외부에 생성 출처의 정보(C2PA)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다.

라이카는 2023년 촬영 순간 파일에 위·변조 방지 디지털 서명을 새기는 카메라를 선보였고, 니콘과 캐논도 동참했다. 프랑스 AFP통신 역시 이 기술을 도입해 보도사진의 진위를 검증하는 시범 운영을 마쳤다. 진실의 기준을 '무엇이 찍혔는가'에서 '어디서 생성되었는가'로 옮겨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라이카 M11. 라이카는 파생 모델 M11-P에 촬영 순간 암호화된 위·변조 방지 서명을 기록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사진=Henry Soderlund) 라이카 M11. 라이카는 파생 모델 M11-P에 촬영 순간 암호화된 위·변조 방지 서명을 기록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사진=Henry Soderlund)
사진의 가치가 '현장의 증언'에 있었다면, 실재를 전제하지 않는 이미지는 과연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보리스 엘다크센이 수상 거부로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진이 두 갈래로 갈라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에 없던 정교한 가상 이미지가 하나의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면서, 이미지 생태계 전체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현장을 기록하는 보도사진과 상상을 구현하는 AI 이미지는 이제 각자의 영역과 역할을 다르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세계최대보도사진전(World Press Photo)이 2023년 말부터 생성형 AI 이미지의 출품을 전면 금지하고 원본 메타데이터(EXIF) 검증을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대를 증언하는 사진'이라는 고유한 영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경계선을 명확히 그은 셈이다.

오랫동안 사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자 '진실'이었다. 가끔 일어난 특수한 조작을 제외하면, 사진은 눈앞의 현장을 증언하는 가장 정직한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등장한 AI는 수십 년간 굳건했던 사진의 진실성을 단숨에 오염시키고 흔들어 놓았다. 사진이 가진 사실성이 위협받는 이 시점에서, 이미지는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무엇을 걸고 이것을 세상에 내놓았는가."

진실과 오염의 경계에 선 사진은, 이제 단순히 '찍힌 결과물'을 넘어 '출처와 맥락'을 증명해야 하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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