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기업, 올해 초까지 343대 확보”
7나노급 로직칩 제조 활용 가능
구형 모델 통해 장비 국산화도
“2035년까지 수출 전면봉쇄 시급
공급망 동맹 삼전닉스에도 혜택”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4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중국이 미국의 수출규제 허점을 틈타 수입한 ASML의 노광 장비 340여 대를 반도체 국산화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수출을 차단한 최첨단 노광 장비보다 기술 수준은 낮지만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작은 가능한 중간 사양의 대체재로 미국을 위협하고 있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중 AI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강력한 수출통제를 퍼붓고 있지만 중국이 허점을 파고들면서 규제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4일(현지 시간)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 안보·기술 전문 싱크탱크인 기술국가안보센터(CTS)는 지난달 말 중국 본토 소유 반도체 공장들이 올해 초까지 총 343대에 달하는 액침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를 확보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공장들이 확보한 343대의 액침 DUV 장비 가운데 약 270대가 ASML의 ‘트윈스캔 NXT:1980i’ 모델이다. 중국은 2024년 NXT:1980i 장비 90대, 2025년 89대를 추가로 구매하기 위해 130억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은 전 세계 첨단 노광 장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노광 장비는 자외선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반도체 제조 핵심 장비로서 자외선 파장이 짧을수록 더 미세한 회로를 만들 수 있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파장이 DUV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초미세공정이 가능하지만 개발 난도가 높고 그만큼 장비도 비싸다. DUV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최첨단 AI 칩 제작에는 한계가 있다.
DUV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물을 채워 만든 것이 액침 DUV다. 물을 넣지 않은 건식 DUV보다 빛의 굴절률이 높기 때문에 회로를 더 정밀하게 그릴 수 있다. 기술적으로 EUV에 뒤처지지만 7㎚(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로직 칩과 고급 메모리를 제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트럼프 1기 시절인 2019년 미국의 요청에 따라 ASML의 최첨단 EUV 노광 장비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다만 구형 모델의 경우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 내 반발로 다시 통제권을 가져오면서 개별 승인하에 NXT:1980i 수출을 하기 시작했다. CTS는 이 때문에 중국 내 많은 지역에서 수출이 허가됐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러한 수출규제의 맹점을 이용했다. NXT:1980i 모델을 집중적으로 사들인 뒤 회로를 여러 번 겹쳐 그리는 다중 패터닝(Multi-patterning) 기술을 적용해 화웨이 ‘어센드(Ascend)’ AI 가속기와 첨단 메모리를 양산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현재 확보한 노광 장비로 장기적으로 AI 칩 생산능력을 통제 불능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해마다 NXT:1980i를 90대씩 들여올 경우 2035년에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H100’에 상응하는 고성능 AI 칩을 연간 4억 3400만 개까지 쏟아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처럼 중국은 ASML 구형 모델을 들여오면서 장비 국산화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디인포메이션은 올해 7월 중국 기업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DUV 자체 생산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EUV 시제품을 개발했다는 보도에 이어 DUV 양산에 들어간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당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주가가 급락했다. ASML 독점 구도가 깨지고 반도체 가격 하락이 예상됐기 때문이다.중국이 장비 국산화를 서두르는 것은 노광 장비 수출통제를 더 강화하려는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 때문이다. 미 의회는 올해 4월 네덜란드·일본 등 동맹국이 150일 이내에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 동참하도록 의무화하는 매치법(MATCH ACT)을 발의했다. EUV뿐 아니라 DUV 노광 장비와 극저온 식각 장비까지 통제하려는 초당적인 법안이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니컬러스 브라운 전 미 상무부 수출통제관과 사이프 칸 전 백악관 기술정책 고문은 DUV 전면 봉쇄 조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27년을 기점으로 모든 신규 수입을 완전히 차단할 경우 중국의 H100급 반도체 연간 생산량이 4억 3400만 개에서 1억 5300만 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이들은 “중국 CMXT와 YXMT의 위협을 받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 수출제한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