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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킨다며 배우의 집 앞에 선 사람들

요약
  •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출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 시위 등 개인에 대한 압박으로 번지고 있다.
  •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사생활과 주거 평온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선 안 되며, 영화에 대한 비판과 개인에 대한 위협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주장] <암살자(들)> 둘러싼 논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정당화할 수 없다
▲  4일 오후 서울 성북구 배우 유해진씨 자택 부근에서 극우보수 성향의 신자유연대 김상진 대표와 벨라도 안정권 대표, ‘윤어게인’ 홍보물을 든 윤석열 지지자들이 영화 <암살자(들)> 상영 중단, 제작진 및 배우들의 대국민사과, ‘탄흔 굿즈’ 제작 판매한 메가박스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육영수 피습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이 ‘정치 선전선동물이며, 제작자와 배우들은 평소 좌편향된 소재의 영화를 만들거나 출연했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지난 10월 3일 오전, 영화 <암살자(들)> 관련 뉴스를 보다가 출연 배우의 집 앞에서 시위를 예고하는 소식을 접했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점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이 열린 국립극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당시 정부의 공식 발표와는 다른 가능성을 제기한다. 때문에 개봉 이후 역사 왜곡 논란이 불붙었고 영화 상영 금지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어느 순간 비판의 대상이 '영화'에서 '사람'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출연 배우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항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배우가 출연한 광고에도 불매운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 후 댓글창이 닫히고 광고 종료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 후 출연 배우들의 공개 활동이 취소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 배우들의 다른 활동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논란은 배우의 집 앞까지 다다랐다. 한 단체는 <암살자(들)>에 출연한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했고, 집회 참가자들은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진·배우들의 사과를 요구했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그들은 영화를 비판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압박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관 앞에서 "이 영화는 역사 왜곡이다"라고 외치는 것과 배우의 사적인 공간을 찾아가 "당신이 출연한 영화가 잘못됐다"라고 외치는 것은 결코 같은 행위가 아니다. 영화 논란이 배우의 사생활 공간으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집회·시위의 자유와 개인의 주거 평온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표현의 자유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한 국회의원은 배우의 외모를 두고 '북한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뒤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자택 앞 시위자들도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권리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신체와 사생활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행사되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집'이라는 공간은 다른 장소와 다르다. 집은 개인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공간까지 비판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집회 신고 과정에서 배우의 주택으로 추정되는 사진과 도로명 번호가 온라인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특정인의 주거지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가 온라인에 퍼진다면 그 파장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과 안전 역시 함께 지켜져야 한다.

이번 논란이 우려되는 이유는 정치권까지 갈등에 뛰어들면서 영화 한 편이 거대한 정치적 전선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등 정치권에서 영화 상영 중단과 불매를 요구하고, 해외 영화제의 개막작 선정 철회까지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 문화산업을 둘러싼 정치권의 개입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묻게 된다.

역사는 목소리 크기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정치적 구호로 결정되지 않는다. <암살자(들)>이 정말 역사 왜곡이라면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하면 된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언론의 검증을 통해 논쟁을 확장할 수도 있다. 역사는 목소리 크기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배우의 집 앞을 찾아가 압박한다고 역사를 지키고 진실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비판받을 수 있다. 감독도 비판받을 수 있다. 배우의 선택 역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관객이 영화를 보지 않거나 불매를 선택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모든 자유와 권리에는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경계가 있다.

영화를 비판하는 것과 배우의 집 앞까지 찾아가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작품의 역사관을 반박하는 것과 배우의 사생활을 건드리는 것 사이에도 선이 있다. 불매를 선택하는 것과 특정 개인의 생업을 압박하는 것 사이에도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비판과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개인에 대한 위협으로 넘어서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민주주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주장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권리와 자유도 함께 인정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더구나 역사적 진실을 지키겠다는 명분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그 사람의 일상까지 위협한다면 과연 우리가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 현재의 민주적 질서를 훼손한다면 그것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다만 그 토론의 장소가 배우의 집 앞이어서는 안 된다. 언론과 역사학자들의 토론장이 되어야 한다. 자료와 기록이 맞부딪히고 서로 다른 주장이 검증받는 공간이어야 한다. 감정과 구호, 욕설이 아니라 근거와 논리가 역사적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의 역사관만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의견을 견딜 수 있는지, 비판과 압박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 표현의 자유와 타인의 사생활을 어떻게 함께 보호할 것인지도 시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남기고 싶다. 내가 지키려는 역사의 진실을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사생활까지 침해해야 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영화 한 편이 우리 사회의 역사관을 시험하고 있다면, 지금 더 근본적으로 시험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민주주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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