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모든 생명체에게 이득인 세상, 그러니까 지속가능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환경보호운동가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다소 어렵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뜯어보면 간단하다. 주변을 더럽히지 말자는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살피고 챙기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말이 누군가에겐 이상주의자들의 잔소리로 들릴 수 있는데, 그렇다면 상상해 보자. 지구에서 이들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안 가 온 동네를 비롯해 세상 전체가 황폐해질 것이라 여긴다. 충청남도 홍성과 청양, 경상남도 통영을 거쳐 제주도까지 찾아가 5명의 환경보호운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쓰레기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자원 봉사자 300명과 제주 해안가 폐기물 정화 활동
디프다제주 변수빈 대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 그 이면에는 끝없이 밀려오는 쓰레기라는 불청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제주에 사는 이모부 댁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던 변수빈 대표는 부모님이 노후를 위해 제주로 이주하고, 자신도 제주대학교에 진학하면서 2009년 자연스럽게 제주에 정착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환경운동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소 낭비하는 것을 싫어해 쓰지 않는 코드를 뽑고 불을 끄는 소소한 실천을 좋아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바다와 오름, 숲을 매일 마주하는 제주의 일상은 그녀에게 깊은 '환경감수성'을 심어 주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훼손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왔고, 제주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다.
결심을 굳히고 해안가 폐기물을 줍기 시작했을 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녹록하지 않았다. 치워도 치워도 매시간 어김없이 밀려오는 쓰레기 더미 앞에서 '과연 내 행동이 진짜 도움이 되는 걸까?' 하는 막막함과 허탈함에 빠져 활동을 잠시 멈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더 괴롭게 만들었기에, 그녀는 무한한 쓰레기를 단숨에 이기려 하기보다 '오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하게, 그리고 오래 활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매 활동마다 50~100kg, 쓰레기가 유독 많이 밀려오는 겨울철에는 5명이 500kg 이상의 쓰레기를 거뜬히 주워 담는 끈질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녀가 이끄는 단체 '디프다제주'는 작은 규모지만 아주 강력하고 따뜻한 연대를 자랑한다. 기획과 실무를 전담하며 1인 기업처럼 뛰고 있는 변수빈 대표를 비롯해 6명의 핵심 멤버가 있고, 바닷속 쓰레기를 줍는 그린다이버 26명, 다이빙 커뮤니티 40명, 해안 쓰레기를 줍는 봉그깅 클럽에는 무려 300명이 든든하게 함께하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는 제주 바다의 오염과 변화를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목격자이자 피해 당사자인 '해녀 삼춘'들과도 정화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8년째 고된 활동을 이어오며 변수빈 대표가 자주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 있다. 바로 "쓰레기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다든 산이든 심지어 집 안이든 어디를 가나 쓰레기는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이 씁쓸한 농담은, 인간의 삶과 쓰레기가 아직 뗄 수 없는 지독한 관계임을 꼬집는다. 전년도보다 매년 더 많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지만 쓰레기가 줄기는커녕 늘어나는 현실 앞에서는 그녀도 어쩔 수 없이 지친다고 고백한다. 주워도 끝이 없고 작년에 치운 곳을 올해 가도 또 쓰레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함께 땀 흘려주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일어선다. 쓰레기 때문에 지치지만, 결국 사람들 덕분에 다시 툴툴 털고 활동을 이어가는 셈이다. 그녀는 누군가를 억지로 바꾸려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며, 환경 보호는 결국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지키고 싶어질 때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성의 환경운동가라기보다는 환경에 관심 없는 사람들과 환경운동가 사이를 이어주는 다정한 '실천가'라고 부른다.
최근 그녀는 3년 넘게 해양 생태계와 사람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유해성 해양폐기물, 특히 '의료폐기물' 조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해양쓰레기는 오랜 시간 바닷물에 노출되어 염분과 이물질이 묻기 때문에 일반 쓰레기처럼 처리하거나 재활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마대에 주워 담아 지정된 장소에 놓고 안전신문고 앱 등으로 지자체에 수거를 요청해도, 결국 이 쓰레기들은 제주 중산간 지역에 적치되거나 육지로 반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쓰레기를 줍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해양보호구역을 대폭 확대해 실질적인 관리를 해야 하며, 무분별한 투기와 훼손을 막기 위해 교육이 동반된 '낚시 면허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거 '플로깅'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사람들의 환경 인식이 놀라울 만큼 성장했다. 이제 그녀의 시선은 제주를 넘어 전 세계로 향하고 있다. 바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쓰레기에는 국경이 없기에, 올해부터 인도네시아 롬복과 길리섬의 활동가들과 유해 폐기물 공동 조사를 시작했고 내년에는 일본까지 연대를 확장할 계획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쓰레기와 씨름하고 싶어 활동 기한조차 정해두지 않았다는 변수빈 대표. 그녀가 꿈꾸는 최종 목표는 모두가 평범한 '환경실천가'가 되는 세상이다. 환경을 위한 행동이 특별한 소수만 하는 유별난 일이 아니라 누구나 밥을 먹듯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되기를, 그녀는 바라고 있다.
교사에서 '흙' 배우는 농부로 "자연은 풍부하게, 일은 단순하게" 지구와 농부를 살리는 농사꾼
재생유기농장 '채소생활' 박건오 대표
학교 선생님이었던 한 남자가 교편을 내려놓고 흙을 만지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라는 질문은 그를 자연과 함께하는 생태적인 삶으로 이끌었고, 그 고민의 끝에서 그는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왜 하필 농부였을까? 그는 처음부터 세상을 구하겠다는 큰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자연 곁에서, 자연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되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스스로를 '변방'에 서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농업의 중심은 '더 많이, 더 균일하게, 더 싸게' 생산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이 방식만으로는 기후위기나 농부의 고된 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면적에서 다양한 채소를 기르는 '다품종 적정생산'을 농장의 운영 방식으로 선택하고, 토양과 생태계의 회복을 지향하는 재생유기농업을 실천해 왔다.
"변방에 있다고 해서 대충 농사짓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과 방향은 주류에서 벗어나 새롭게 던지되, 농장을 운영하는 방식은 그 누구보다 치밀하고 전문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새로운 실험이 살아남아 널리 퍼질 수 있으니까요." 그가 추구하는 농업의 핵심은 단순하다. '지구를 살리는 농업이자, 농부도 살리는 농업'이다. 아무리 땅에 좋은 농사라도 농부가 너무 힘들거나 생계를 이어가지 못해 농사를 포기하게 된다면, 그 농업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켓가든'과 '포레스트가든(먹거리 숲)'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합쳤다. 마켓가든은 작은 밭에서 다양한 채소를 빠르게 키워내어 농부에게 당장의 수입(경제)을 만들어준다. 반면 포레스트가든은 나무와 여러해살이풀을 심어 오랜 시간에 걸쳐 땅과 물, 생태계를 비옥하게(생태) 가꾸는 역할을 한다.
농사를 지을 때 흔히 겪는 어려움은 자연의 '복잡성' 때문이다. 날씨, 벌레, 미생물 등 통제하기 힘든 변수가 너무 많다. 현대 농업은 농약과 기계를 써서 이 복잡함을 억지로 없애려 했다. 그는 반대로 생각한다. 자연의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는 농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충해를 막아주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생태는 복잡하고 풍부하게 내버려 둬야 합니다. 대신 제가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농부의 일'입니다. 밭 안의 이랑을 일정한 크기의 작업 단위로 만들고, 도구와 작업 순서를 단순화해 농부의 노동을 줄이는 것이죠. 즉, '생태는 풍부하게, 운영은 단순하게'가 제 농사의 비결입니다."
요즘 흔히 쓰이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에 대해 그는 뼈 있는 비유를 들려주었다.
"농업을 비행기라고 상상해 보세요. '생태계 보호'는 비행기가 올바른 곳으로 가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꼬리날개입니다. 하지만 꼬리날개만 있다고 비행기가 날 수 있나요? 비행기를 하늘로 띄우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은 바로 농부의 '경제적 소득'과 '건강한 사회적 관계'입니다."
생태계를 돌보더라도 농부가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면 그 농업은 지속되기 어렵다. 반대로 충분한 소득을 내더라도 토양과 생태계의 건강을 훼손한다면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 할 수 없다. 나아가 그는 지금 시대의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현상 유지'가 아니라 '회복과 재생'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너무 많이 망가진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농사를 지을수록 땅이 비옥해지고, 농부의 지갑과 건강도 좋아져야 진짜 지속 가능한 농업이다. 그는 유기농업의 진짜 목적은 '농약 안 친 안전한 먹거리 생산'을 넘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대상으로만 보던 태도를 버리고 다시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회복하는 것, 그리고 소비자가 농부의 수고를 이해하고 가치 있는 소비로 연결되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밭은 '숲'을 닮았다. 밭을 온통 나무로 뒤덮겠다는 뜻이 아니다. 낙엽이 덮여 있고, 굳이 땅을 뒤집어엎지 않아도 벌레와 미생물이 스스로 영양분을 돌게 하는 숲속 흙의 생명력을 밭에도 그대로 구현하겠다는 뜻이다.
"제가 기후위기를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농부라는 제 자리에서, 매일 흙을 덮어주고 유기물을 땅으로 돌려보내는 작은 행동들이 생태계를 살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더 나아가 그 경험이 한 농장과 한 농부의 노력에 머물지 않도록 기록하고 체계화해 다른 농부들과 나누고, 새로운 농부들이 각자의 땅에서 재생유기농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론이나 책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자신이 딛고 선 '땅'이 들려주는 대답을 가장 믿는다는 그. 그의 밭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생명과 농부가 함께 어우러져 가장 따뜻하고 단단한 세상을 키워내고 있다.
송악산 고대로 물려줘사주마씀(송악산 온전히 물려줘야죠) 개발 압력 받던 송악산, 머리띠 대신 축제로 살려내
30년 농민운동가 김정임씨
제주에서 친환경 감귤 농사를 짓는 그녀의 일상은 소박하고 따뜻하다. 정성껏 키운 귤을 맛본 사람들이 "정말 맛있다"며 그 가치를 알아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요즘 그녀를 더욱 설레게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송악산에서 열리는 '달마실(달빛 산책)'과 '생태평화축제' 준비다.
"처음엔 몇 명 안 올 줄 알았는데, 작년에 300명이 훌쩍 넘게 왔어요. 올해는 1,000 명 이상 오지 않을까 싶어요. 당근마켓에 올린 지 3일 만에 조회수가 1,200을 넘겼다니까요."
그녀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뒤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다. 즐겁고 평화로운 이 동네 축제는, 사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사장에서 쓰는 중장비와 자본에 맞서 송악산을 지켜내야 했던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귤 농부이자 30년 차 농민운동가인 그녀가 머리에 띠를 두르는 대신, 사람들을 송악산으로 불러 모아 축제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2019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부터 호시탐탐 송악산을 노리던 거대 개발 사업이 마침내 행정 관문의 9부 능선이라 불리는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해 버렸다. 사실상 거대 호텔과 위락시설 개발을 막을 마지막 법적 방어선이 무너진 셈이었다. 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회장직을 막 내려놓고 쉬려던 그녀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며칠을 앓아누웠다. "정말 이렇게 송악산이 파헤쳐지는 건가."
절망에 빠진 그녀를 깨운 건 딸의 묵직한 한마디였다.
"엄마, 그렇게 누워만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봐."
그날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사업자 측은 이미 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며 축제 분위기였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지역 후배들을 찾아가 "바위에 계란 치기라지만, 이 싸움은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며 다독였다.
자신이 몸담았던 여성농민회를 비롯해 핫핑크돌핀스, 정의당 대정분회, 진보당 서부지역 모임, 한살림 등 6개 단체를 설득해 즉각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단 보름 만에 상모리 지역 주민 1,096명의 서명을 받아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어 강우일 주교를 찾아가 천주교 본당 차원의 서명 운동을 이끌어냈고,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든든한 지지까지 얻어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내내 송악산으로 소풍을 오며 쌓아온 애정, 그리고 30여 년간 농민운동을 이끌어온 연륜은 도민 1만2,000여 명의 반대 서명이라는 거대한 파도로 변했다. 결국 2020년 4월, 도의회에서 제주 역사상 최초로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이 내려지며 송악산 개발은 극적인 백지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녀는 안심하지 않는다. 현재 송악산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긴 했지만, 단체장의 의지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개발 논리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근 알뜨르 비행장 일대에 대기업의 우주센터 건립이 검토되는 상황 역시 강정 해군기지에 이은 또 다른 난개발의 단초가 될까 그녀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곳은 3,800년 전 제주 수중 화산 폭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엄청난 곳입니다. 진정으로 송악산을 지키려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거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단단한 방패를 만들어야 해요."
그녀가 투쟁의 방식을 '축제'로 바꾼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직접 송악산을 걷고 밤하늘의 달을 보며 이곳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 주민과 관광객이 이 땅의 생태적 가치에 흠뻑 빠지게 하는 것만이 자연을 지키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과 자연을 지키는 일은 결국 하나입니다. 자연이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도 자연에게 기댈 수 있어야죠. 화려한 리조트를 짓는다고 도민들이 행복해질까요? 천만 관광객이 제주를 찾은 건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 아니라 세계자연유산 지정으로 '제주다움'을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친환경 귤을 키워내는 정성으로 송악산과 알뜨르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있는 그녀, 날 선 굉음이 멈춘 자리에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자연의 숨결을 채워 넣고 있는 '달마실' 초대는, 그래서 여러 사람에게 더욱 따뜻하고 묵직한 울림을 주고 있다.
주민 힘 모아 화력발전소 막다 통영의 환경운동가 지욱철씨
경남 통영의 한 작은 바닷가 마을. 휠체어를 탄 마을 이장은 매일같이 바다의 안부를 묻는다. 거창한 환경 정책이나 수조 원대 개발 사업보다, 내 집 앞바다 쓰레기를 줍는 행동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고 굳게 믿는 사람. 10여 년간 통영 화력발전소 건립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막아내고, 끝내 통영 바다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게 만든 집념의 환경운동가다.
그의 삶이 처음부터 환경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향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대학교 졸업식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그를 품어준 곳은 고향 통영이었다. 가족과 이웃, 익숙한 바다 덕분에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후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거제 대우조선소 등지에 지역 농산물을 직거래로 납품하며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2002년, 거제로 납품을 가던 중 또 한 번의 교통사고를 당하며 그는 완전히 휠체어에 의지하게 되었다. 경제적 부를 좇던 그의 삶은 마흔 살을 기점으로 180도 달라졌다. "돈벌이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는 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고, 신학자 송기득 선생을 만나며 새로운 눈을 떴다. 거창한 종교적 수사 대신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진짜 신앙이자 목회라는 가르침이었다. 이후 그는 통영에서 인문학 강좌 모임 '한길 아카데미'를 열고 시민들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의 인문학적 고민이 현실의 치열한 투쟁으로 번진 것은 2012년 통영 화력발전소 건립 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바닷일을 하며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터에 온배수가 쏟아지면 굴과 치어들이 다 죽고 바다는 황폐해집니다. 수도권의 전기를 위해 지역 주민들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은 결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아니었죠."
그는 14개 단체를 모아 화력발전소 대책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역 갈라치기와 경제적 보상을 앞세운 개발 논리에 맞서, 그는 학계와 연대해 철저한 경제성 분석으로 발전소 건립보다 '수산업 유지가 훨씬 이득'이라는 논리를 증명해 냈다.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반대운동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결국 통영화력발전소 건립 계획은 취소됐다. 화력발전소 백지화 이후, 그는 난개발로부터 바다를 영구히 지킬 무기로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눈을 돌렸다. 핵심은 바다의 숲이라 불리는 해양 식물 '잘피(진질)'였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150여 종의 해양 생물에게 보금자리를 내어주는 잘피가 살기 위해선, 가장 먼저 바다 쓰레기를 치워야만 했다.
처음엔 고등학교 1학년인 그의 아들과 함께 단 둘이 바다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1명이 10명이 되고 300명이 되면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매주 쓰레기를 줍던 아이들이, 다시 바다를 더럽히는 어른들을 향해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참여와 행동'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땀 흘려 치운 곳이 훼손되는 걸 견디지 못하게 된 거죠."
그는 이 공식을 어른들에게도 적용했다. 대기업의 후원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환경복지'라는 이름으로 어르신들에게 일당을 주고 쓰레기를 줍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처음엔 돈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스스로 바다를 치우며 애착을 갖게 된 80대 어르신들은 더 이상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이들의 헌신과 끈질긴 설득 끝에 반대하던 어민들도 마음을 돌렸고, 선진지 견학을 통해 확신을 얻은 주민 100%의 찬성으로 마침내 2020년 2월 이 지역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가 꼽는 환경운동가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따로 있다. 통영 강구안 바다 밑의 심각한 오염물질을 준설하는 사업을 투쟁 끝에 이끌어냈을 때였다. 12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바닥을 긁어내자, 그 속에서 20년 전 실종된 이의 유골이 든 자동차가 인양됐다.
"가족을 잃고 평생 고통받았을 부모님에게 유골이나마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 그분들의 찢어진 가슴에 작은 마침표를 찍어 주었다는 것이 제겐 가장 큰 위안이었습니다."
결국 그에게 환경을 지키는 일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돌보는 일이기도 했다.
세계장애인사격선수권대회 집행위원장,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의장 등 무거운 직함을 차례로 내려놓고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자리는 작은 마을의 '이장'이다.
"거대한 정책보다 중요한 건 각자 자기가 선 자리를 깨끗하게 치우는 일입니다. 해양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오? 안 버리는 게 먼저고, 자기 책임은 자기가 지는 겁니다. 내가 먼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행동, 그것이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갈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뀝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바라본 휠체어 뒤편으로, 마을 앞바다에 푸른 잘피 숲이 조용히 물결치고 있었다.
청양 토박이의 1급수 지키기 "댐 건설로 생태1등급 지역을 수몰시킬 순 없죠"
지역 공동체 운동 김명숙씨
김명숙 활동가만큼 청양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녀는 청양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토박이다. 청양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고, 20대 후반부터 지역신문인 <청양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15년간 청양 구석구석을 다녔다. 이때 그녀가 얻은 별명은 '논두렁 기자'다. 그녀가 필요한 곳이면 논이든 밭이든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녀에게 청양의 자연과 생태계는 당연히 아끼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중 금강의 제1지류라고 불리며 청양을 관통하는 지천芝川과 지천이 칠갑산 자락을 휘감아 돌면서 만들어내는 절경 지천구곡芝川九曲과 까치내는 청양의 보물같은 자연자원 중 김명숙 활동가가 가장 아끼는 곳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천과 관련한 추억이 많다. 최근 이곳은 개발 광풍에 휘말렸다. 한동안 잠잠했던 '댐 건설'로 다시 시끄러워진 것이다. 김명숙 활동가에겐 괴로운 일이었다.
인터뷰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녀의 휴대전화 너머로 충남도와의 날 선 대화가 오갔다. 환경부가 선정한 6명의 공론화위원회가 지천댐 건설을 논의하는 것을 결코 주민의 뜻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센 항의였다. 당초 행정 절차(주민 설명회 등)를 이행하지 못해 댐 최종 후보지에서조차 제외되었던 청양 지천댐이, 돌연 '공론화'라는 명목하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주민들의 삶터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역 공동체 활동가의 절박하고도 단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부와 충남도는 지천댐을 지으면 출렁다리나 전망대 같은 관광 시설을 만들어 지역을 발전시켜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활동가의 시선은 차갑다. "다목적 댐이 들어서면 수질 보호를 위해 반경 7km까지 첩첩산중 규제로 묶입니다. 주민들이 식당이나 펜션을 운영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길 자체가 막혀버려요. 10~20년 뒤에나 지어질 거창한 구조물보다는, 주민들의 당장의 생계가 훨씬 중요합니다."
청양은 분지 지형을 가진 전형적인 농업 군이다. 댐이 들어서면 안개가 끼는 날이 60% 이상 늘어난다. 특히 농작물이 결실을 맺고 익어가는 4~5월과 9~10월의 일조량 부족은 농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삶의 터전이 영영 물에 잠긴다는 사실이다. 댐 건설로 부여와 청양 일대 6개 마을, 약 300세대가 수몰 위기에 처한다.
현재 지천은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1급인 미호종개, 흰수마자 등 46종의 민물고기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주민들이 발을 담그고 농업용수를 끌어 쓰는 모두의 '공유재'다. 하지만 댐이 세워지는 순간, 이 모든 생태적 자산과 물길은 국가의 소유로 넘어가 주민들은 그저 철조망 밖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청양군은 충남 15개 시·군 중 '생태 1등급' 지역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곳이다. 그녀는 댐 건설로 인한 이득보다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청양에 더 큰 이득이라고 말했다.
"이 맑은 자연 생태를 적극 활용해 주민들이 잘살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을 펼쳐야죠. 그런데 반대로 공장이 많은 다른 지역의 공업용수를 대주기 위해 청양의 허파인 지천을 파괴하겠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청양도 보령댐 물을 가져다 쓰면서 왜 댐 건설을 반대하느냐'며 비난하기도 하는데요, 제가 조사한 게 있습니다. 청양이 쓰는 보령댐 물은 전체의 1.72%에 불과하고, 대청댐 물은 0.12%뿐입니다. 오직 먹고 마시는 최소한의 생활용수로만 쓸 뿐이죠. 댐 물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공장을 돌리는 지역들은 따로 있는데, 왜 댐 건설의 막대한 희생과 고통은 청양 주민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입니까?"
활동가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이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가 세금을 내고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는, 주민들이 쓸데없는 걱정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동네 배 불리느라 짊어지게 된 이 무거운 짐이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묵묵히 제 일을 하며 즐겁게 어울려 사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하천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오순도순 부대끼며 살아온 마을의 이웃이자, 농민들의 밥줄이었고, 억울하게 희생당하지 않을 지역 공동체의 긍지였다. 청양의 맑은 물길이 누군가의 공장 파이프라인이 아닌, 모두가 쉴 수 있는 생명의 강으로 오래도록 흐르기를 김명숙 활동가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