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당시 카메라 설정값. NIKON N7-2, 초점거리 24mm, 6매 촬영 후 포토샵 파노라마 합성, 측광모드 패턴, 노출 바이어스 0.3, 조리개 값 F11, 셔터스피드 1/250초, ISO 400, 화이트밸런스 자동, 플래시 미사용, 삼각대 미사용.설악산의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도 깊다. 특히 봉정암을 거쳐 대청봉으로 가는 길이 그렇다. 가을 용아장성을 담기 위해 봉정암에 올랐다. 뒤편 사리탑에 올라서면 내설악의 깊은 골짜기 너머로 웅장하게 펼쳐지는 용아장성을 마주할 수 있다. 용아장성은 이름 그대로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고 거친 암봉들이 연이어 솟아 있는 능선이다. 수직으로 치솟은 바위와 깊게 패인 골짜기, 그리고 그 사이를 가득 메운 숲이 어우러져 설악에서도 손꼽히는 장관을 이룬다.
산행은 백담사 입구에서 시작한다. 백담계곡을 따라 영시암을 지나고 수렴동 일대를 거쳐 봉정암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길다. 처음에는 비교적 완만하지만,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오르막이 잦아지고 마지막에는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고도를 높일수록 나뭇잎의 색깔은 조금씩 달라진다. 초록이던 숲 사이로 노란색과 주황색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붉은 단풍이 군데군데 산자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긴 산길 끝에 마침내 봉정암에 닿았다. 그리고 사리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마주한 용아장성은 온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산 아래와 능선 사이에 운해가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거대한 흰 구름의 바다가 산허리를 덮고 있어 암릉의 윤곽조차 희미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허리를 감싸고 있던 운해가 조금씩 움직였다.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바위 봉우리의 윤곽이 나타났다. 회색빛으로 솟은 암릉 사이로 단풍이 스며들어 마치 붓으로 그린 듯한 색의 대비를 만들었다. 멀리 있는 산봉우리는 운해에 반쯤 잠겨 있었고, 가까운 암봉들은 구름 사이에서 날카로운 윤곽을 드러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붙잡는 일인지도 모른다. 구름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빛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희미하던 암봉이 어느 순간 선명해지고, 그 아래 단풍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산 전체가 잠시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이 찾아왔다. 오르고 또 오르며 봉정암을 찾아온 시간도, 가파른 산길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순간도, '과연 오늘 용아장성을 볼 수 있을까' 마음 졸이던 시간도 모두 이 한 장의 풍경으로 이어졌다.
운해가 걷힌 자리에 드러난 암릉은 가을 단풍을 품고 있었다. 거칠고 날카로운 바위는 붉고 노란 숲과 어우러져 한층 부드러워졌고, 산허리를 흐르는 운해는 그 풍경에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운해가 산을 감싸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암봉들이 하나둘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설악이 다시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것 같았다. 사진 한 장에 그날의 산행과 기다림, 그리고 운해가 걷히던 짧은 순간의 감동을 모두 담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한순간만큼은 남길 수 있어 감사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