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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은 내 인생의 베이스캠프" [화제인물 박문식 육군 예비역 소장]

요약
  • 육군 제72보병사단장을 지낸 박문식 예비역 소장은 전역 후 공방을 베이스캠프 삼아 목수이자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 그는 엄홍길휴먼재단과 함께 네팔 오지 학교를 찾아 목공 봉사를 하고 책걸상을 만드는 등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 또한, 카일라스산 순례와 군 시절부터 이어진 소통과 배려의 철학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고 있다.
2023년 마르디 히말 정상 등정 후 하산길에 박문식 에비역 장군. 2023년 마르디 히말 정상 등정 후 하산길에 박문식 에비역 장군.강원도 동해와 삼척의 푸른 바다, 그리고 백두대간의 산세를 품고 자란 소년은 훗날 육군 제72보병사단장(육사 43기)이 돼 대한민국 국방의 일선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박문식 예비역 장군. 현역 시절 손수 커피를 내리며 장병과 마음을 나누던 부드러운 지휘관이었던 그는, 전역 후 개인 공방을 '인생의 베이스캠프' 삼아 목수로, 바리스타로, 그리고 나눔의 봉사자로 제2의 인생을 조각해 나가고 있다.

산과의 끊임없는 인연, 그리고 엄홍길휴먼재단

박 장군은 동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육군사관학교(43기)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군에 몸담으며, 국방부 국회협력단장을 거쳐 육군 제72보병사단장(소장)에 이르기까지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헌신해 온 군인이다. 그에게 산과의 인연은 끝이 없는 '인생 캠프'다. 전역 후 그는 엄홍길휴먼재단과 인연을 맺고 봉사의 삶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이 연결해 준 재단과의 인연을 통해 그는 국내를 넘어 지구촌의 가장 낮은 곳으로 찾아가 나눔의 지평을 넓혀갔다.

"군 생활하며 백두대간 어지간한 산과, 100대 명산은 거의 다 오른 것 같아요. 군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준 산악인이 됐지요."

작년 9월 둘리켈 오지학교 도서관 작업 모습. 작년 9월 둘리켈 오지학교 도서관 작업 모습.네팔 히말라야와 휴먼스쿨 봉사

박 장군은 엄홍길휴먼재단, 그리고 재단후원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봉사단과 함께 네팔을 네 차례 방문했다. 한 번 찾을 때마다 함께 갔던 봉사자들이 귀국한 뒤에도 2~4주씩 현지에 홀로 머물며, 엄홍길휴먼재단이 설립한 네팔 오지 휴먼스쿨의 아이들을 위해 책걸상을 만들고 수선하는 목공 봉사에 땀방울을 흘렸다.

교육환경이 열악한 오지 마을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눈망울을 보며, 그는 "나눔이 주는 진정한 희열과 보람을 가슴 깊이 배웠다"고 했다. 그는 봉사현장에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아이들에게 희망과 도전의 의미를 전파했다.

"네팔 오지 아이들의 순수함과 맑은 눈망울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매번 휴가 대신 네팔 오지를 찾아가는 이유다.

지난 6월 다딩 휴먼스쿨 도서실 책꽂이 작업에 한창인 모습.  지난 6월 다딩 휴먼스쿨 도서실 책꽂이 작업에 한창인 모습. 카일라스 순례에서 얻은 깨달음, 경외심

올해는 그가 의미와 충격을 동시에 경험한 해였다. 전환점은 지난 5월 티베트 카일라스산 순례(코라)였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본교 등 4대 종교의 성지와 성산인 카일라스산을 찾아가 3일간 52km를 완주하는 코라(순례)를 혹독한 고산증 속에서 완주했다.

그는 "순례 중에 먼저 떠나보낸 장교 1명과 병사 1명이 계속 떠올랐다"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극한 상황을 극복했다"고 했다. 박 장군은 "이 과정에서 망자들을 재차 추모했고, 극한 고통을 삶의 버팀돌로 승화시키는 법을 깨달았다"고 했다.

박 장군은 "한국의 산과 네팔 히말라야의 산은 비교 정도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하루 만에 오르내릴 수 있는 한국의 산과 달리, 히말라야의 산은 며칠을 두고 씨름해야 한다"며 "네팔을 수차례 방문하며 히말라야처럼 인생 역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가치를 품을 때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그토록 아끼고 경탄해 마지않던 아름다운 히말라야와 네팔 일대가 최근 거대한 빙하 붕괴와 대홍수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인간이 신을 존중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순례를 위해 재난 발생 3개월 전 현장을 다녀왔던 터라 누구보다 충격이 컸다.

목수이자 바리스타, 나누고 어울리는 그만의 철학

박 장군의 나눔철학은 사단장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는 군의 상명하복 문화를 깨기 위해 노력했다. 독학으로 바리스타 기술을 배워 직접 커피를 내려 부대원들과 소통했고, 관사 후임자를 위해 목공 기술을 익혔던 것도 그런 계기에서 시작했다. 야전 부대 장교 근무 시절, 인사이동 때마다 입주한 관사의 열악한 상태를 보고 후임자에게 절대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목공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됐다. 부대 주변의 통나무로 목공 기술을 배워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다. 박 장군이 거처한 관사는 나무향기가 가득한 목조주택 분위기가 나서 그가 떠난 뒤에 입주하는 후임자들이 아주 만족해했다. 이후 사단 내 장교들 사이에 이사할 때 집을 깨끗이 정리하고 떠나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전역 후 공방을 차려 전우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직접 만든 도마와 의자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물한 도마가 어느덧 400개가 넘었다.

그는 "나무를 깎아 네팔 아이들에게 선물할 연필과 책상, 도서관을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의 꿈을 다듬는 일과 같다"며 "거창한 것이 아니고 서로 배려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소프트 파워 애국'이자 진정한 봉사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하며 직접 만든 선물을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카일라스 순례(코라)를 마치고 힌두교 성지 마나사로바르 호수를 배경으로 한 컷.  카일라스 순례(코라)를 마치고 힌두교 성지 마나사로바르 호수를 배경으로 한 컷. 은사님과 친구들, 그리고 군 동료와의 우정과 나눔

그의 나눔 여정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늘 함께했다. 특히 학창 시절 은사의 기부금으로 네팔 현지 학교 두 곳에 도서관을 기증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현지에 직접 실천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소대·중대·대대 병사들과 친구들, 예비역 군 동료는 그의 공방을 찾아 봉사를 응원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우정의 동반자들이다.

박 장군에게 산은 전역 전과 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현역 시절의 산은 군 작전과 전술의 대상이자 성패를 가르는 냉정한 토대이자 보호막이었다"며 "버티고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현장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역 후 찾는 산은 타인을 포용하고 겸손을 가르쳐 주는 '휴머니즘 실천의 스승'이다.

박문식 예비역 장군에게 공방은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다. 타인과 온기를 나누고 세상의 낮은 곳으로 향하는 '인생의 베이스캠프'이자 나눔 철학의 장이다. 계급장은 내려놓았지만, 깎아낸 나무 향기와 갓 내린 커피 향 속에서 피어나는 그의 제2의 인생은 나눔을 실천하는 전진 기지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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