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공대 프랠린 생의학연구소 연구팀이 식품의 가공 정도에 따라 신체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제공한 초가공식 식단(오른쪽)과 비초가공식 식단. 사진=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 캡처#식단 1. 삶은 달걀에 바나나, 말린 크랜베리와 치즈.
#식단 2. 가공된 칠면조고기와 인스턴트 으깬 감자, 초콜릿칩 쿠키에 시리얼과 채소칩.
두 개의 다른 식단은 탄수화물·지방·단백질 함량이 비슷했다. 열량도 각각 300.3㎉와 304.3㎉로 거의 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초가공식품과 그렇지 않은 식품이라는 점이었다.
이 차이는 몸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초가공식품으로 구성된 식사를 했을 때 혈당의 전체 반응량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인슐린은 더 많이 분비됐다. 몸이 탄수화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반응도 상대적으로 둔화됐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프랠린 생의학연구소 연구팀이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식품의 가공 정도에 따른 식후 대사와 뇌 반응을 비교한 결과다. 연구 결과는 5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발표됐다.
열량·탄수화물·지방까지 맞췄다⋯차이는 '가공정도'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 57명을 모집했고 이 가운데 32명이 서로 다른 날 약 300㎉의 초가공식과 비초가공식을 각각 먹는 무작위 교차 대사시험을 완료했다. 두 식사는 무게와 열량뿐 아니라 탄수화물·지방·단백질, 이용 가능한 탄수화물, 혈당지수(GI), 혈당부하지수(GL), 식이섬유, 나트륨, 수분까지 차이가 1.6% 이내가 되도록 설계했다.
비초가공식은 삶은 달걀 30g, 바나나 68g, 말린 크랜베리 29g, 치즈 28.25g과 소금으로 구성됐다. 초가공식은 가공 칠면조고기 45g과 인스턴트 으깬 감자 48.8g을 중심으로 초콜릿칩 쿠키, 시리얼, 채소칩, 흰빵, 땅콩버터와 젤리 등이 포함됐다. 두 식사의 탄수화물은 각각 40.2g과 39.9g, 지방은 12.2g과 12.3g, 단백질은 11.2g과 11.1g으로 거의 같았다.
참가자들은 밤새 금식한 뒤 식사했고 연구팀은 이후 3시간 동안 혈액을 여러 차례 채취했다. 동시에 간접열량측정법을 이용해 에너지 소비와 탄수화물·지방 산화량을 측정했다.
실험 전 혈당과 인슐린, 대사율 등에서는 두 조건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혈당은 비슷했는데 인슐린은 더 나왔다
결과는 예상과 달리 '초가공식을 먹으면 혈당이 더 오른다'는 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식후 3시간 동안 혈당 반응을 합산한 곡선하면적(AUC)은 두 식사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식후 20분에는 오히려 비초가공식을 먹었을 때 혈당이 더 높았다. 다만 이후에는 초가공식 섭취군에서 혈당이 상대적으로 오래 높은 상태를 유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차이가 뚜렷했던 건 인슐린이었다. 초가공식을 먹은 뒤 인슐린의 전체 반응량은 비초가공식보다 유의하게 컸다. 특히 식후 40·60·90·120분에 인슐린 농도가 더 높았다. 전체적인 혈당 반응은 비슷했지만, 이를 처리하기 위해 몸이 보인 인슐린 반응에는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도 달랐다. 초가공식을 먹은 뒤 에너지 소비 반응은 더 컸지만, 비초가공식과 비교하면 식후 탄수화물 산화로 전환되는 반응은 둔화됐다. 연구팀은 열량과 주요 영양소를 거의 같게 맞춘 상황에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뇌도 다르게 반응했다⋯"장-뇌 신호 연관 가능성"
뇌 반응에서도 차이가 포착됐다. 참가자 52명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검사를 받으며 초가공식과 비초가공식 사진을 보고 각 음식에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평가했다.
실제 지불 의향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지만 음식의 보상과 가치를 판단하는 뇌 영역인 선조체와 시각적으로 음식의 형태를 인식하는 뇌 영역의 활동은 식품의 가공 정도에 따라 달랐다.
연구팀은 소화·흡수된 영양소에 대한 신호와 뇌의 음식 보상·가치 판단 체계가 연결되는 '장-뇌 신호'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번 연구만으로 초가공식품이 이러한 뇌 반응을 직접 일으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