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땐 역래깅·재고손실…장기화 땐 최고가격제·수출제한 부담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2026.10.4 ⓒ 뉴스1 이종수 기자(서울=뉴스1) 김진희 기자 = 정유 업계가 고유가와 정제마진 강세에 힘입어 올해 3분기에도 호실적을 이어갈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 에쓰오일(010950),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주요 정유 4사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단순 합산하면 5조 원을 웃돈다. 지난해 3분기 1조 7642억 원 대비 약 3.1배 늘어난 규모다.
문제는 4분기다. 중동 전쟁이 끝나 국제유가가 급락하면 재고평가손실과 역래깅 효과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반대로 전쟁이 장기화하면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와 수출 제한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부담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전쟁이 끝나도, 계속돼도 실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셈이다.정유 4사, 3분기도 정제마진 강세·윤활유 사업 호조 효과7일 금융정보업체 와이즈리포트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의 올해 3분기 매출은 26조 4369억 원, 영업이익은 2조 18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8.875%, 252.02%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에쓰오일은 3분기 매출 11조 4159억 원, 영업이익 1조 125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5.66%, 390.89%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DB증권은 최근 발간한 GS 기업분석 보고서에서 GS칼텍스의 3분기 영업이익을 1조 2000억 원으로 내다봤다. 이중 정유 사업의 영업이익이 9500억 원 수준이다.
흥국증권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 3분기 매출은 8조 3930억 원, 영업이익 1조 112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52%, 482.20%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4개 회사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단순 합산하면 5조4559억 원이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정유뿐 아니라 배터리·화학·윤활유 등 다른 사업을 포함한 연결 기준 실적이어서 정유 4사의 실적을 직접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3분기 호실적의 일등 공신은 정제마진이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석유제품 공급 차질 우려가 커졌고 제품 가격과 정제마진이 강세를 보였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원유와 석유제품의 가치가 높아지는 재고 관련 이익도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전유진 아이엠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중동에서 발생한 두 차례 전쟁으로 완전히 얽히고설킨 정제품 수급은 좀처럼 정상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고유가와 정제마진 강세 흐름이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활 사업 특수도 호재다. 글로벌 공급 차질로 윤활유의 원료가 되는 윤활기유 수요가 급등하면서다. 중동 전쟁으로 중동 지역의 고성능 윤활기유 공급 차질이 발생함에 따라 국내 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윤활기유 수출액은 6억 6287만 달러(약 8924억 원)로 전년 동월 2억 6371만 달러(3552억 원) 대비 151.36% 증가했다.
다만 전년 동기 대비 큰 폭의 실적 개선에도 상반기와 비교하면 이익 증가세는 한풀 꺾일 전망이다. 4개 회사의 영업이익을 같은 방식으로 단순 합산하면 올해 1분기 5조9635억 원, 2분기 8조8271억 원이었다. 종전 땐 역래깅·재고손실…장기화하면 가격·수출 통제정유 업계가 3분기 호실적에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는 4분기 이후 국제유가와 정부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이다.
우선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국제유가가 빠르게 하락할 경우 그동안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요인이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
정유사는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뒤 석유제품으로 판매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유가가 급등하는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 오른 가격에 판매하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유가가 빠르게 떨어지면 높은 가격에 들여온 원유가 생산에 투입되는 동안 제품 가격이 먼저 하락하는 '역래깅' 효과가 발생해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보유한 원유와 석유제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2022년 국내 정유 업계는 2분기 고유가와 정제마진 강세에 힘입어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거뒀지만 이후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하락하면서 4분기에는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했다.
그렇다고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는 것이 정유사에 마냥 유리한 것도 아니다. 정부가 시행 중인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장기화할 수 있어서다. 가격 통제로 인한 정유 업계의 내수 부문 손실은 수조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정부의 손실보전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최근 가격 담합 혐의와 관련한 재판도 앞두고 있어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수출 제한도 부담이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적용하는 동시에 국내 정유사의 석유제품 수출 물량을 지난해 수준으로 제한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수출 물량 제한이 장기화하면 정제마진 상승에 따른 수익성 개선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주요 정유사의 수출 비중은 HD현대오일뱅크 85%, GS칼텍스 71%, 에쓰오일(S-OIL) 56%, SK에너지 51% 등이다.
결국 정유 업계는 중동 전쟁의 향방에 따라 상반된 위험에 노출된 상황이다. 종전으로 국제유가가 급락하면 역래깅과 재고평가손실을 걱정해야 하고, 전쟁이 장기화하면 최고가격제와 수출 제한 등 정부 규제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유가와 정제마진 효과로 깜짝 실적을 내고 있지만 말 그대로 전쟁으로 인한 '깜짝' 실적에 불과하다"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변동성이나 리스크가 확대돼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글로벌 정세를 예의주시하며 종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