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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딜레마… 중장년 명퇴 ‘칼바람’, 청년고용 ‘찬바람’ [심층기획-직무급 도입 지체의 그늘]

요약
  • 한국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중장년층의 조기 퇴직과 청년층의 고용 위축을 불러일으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 단순한 정년연장은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해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므로, 실효성 있는 고용 안정을 위해 직무급 전환 등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공서열형 유지 땐 고용불안 심화 우려
韓, 근속 30년·1년 임금 격차 3배 달해
고임금 장기 재직자 조기 퇴직 압박 커져
대기업 정규직 중심 수혜… 이중구조 고착
단순 정년연장 땐 신입 채용 위축 불가피
“직무급 전환으로 정년연장 실효성 높여야”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서 직무급 전환 논의가 중요한 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간의 임금체계를 인위적으로 바꾸기 힘든 만큼 공공부문에서 임금체계 개편 모델이 성공적으로 안착될 경우 민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것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기본급이 정해지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중장년층의 조기 명예퇴직은 물론 청년층 일자리 위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현재 정년연장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의 연금제도’(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직장에서 근속연수가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날 때 한국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15.1% 상승한다. 이는 같은 기간 OECD 평균(5.9%)을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근속 30년 이상 근로자의 월 임금총액(초과급여 제외) 평균은 근속 1년 미만 근로자 월 임금총액 평균의 2.95배로 유럽연합 15개국 평균(1.65배)과 격차가 컸다.
 
문제는 근속 증가에 따른 임금 증가 혜택을 일부 대기업 정규직만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대기업 정규직 대비 중소기업·비정규직 등 여타 부문의 평균 근속연수는 46.8%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중소기업·비정규직에 다니는 근로자들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57.9%에 그쳤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대기업 정규직이 11.9%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강한 정규직 고용보호와 함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한국의 건강한 노화와 노동시장 참여’)에서 한국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고용시장의 구조적 경직성’(Structural labor market rigidities)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두 가지 경로로 고용시장에 타격을 준다.
 
우선 장기재직자의 조기퇴직 압력을 높여 한창 일할 나이인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을 높인다. 생산성과 상관없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다 보니 비용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조기퇴직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주된 일자리를 떠난 중장년층은 단기 계약직 등 이전 업무 대비 한층 열악한 직무로 내몰린다. 한국의 55∼64세 임시고용 근로자 비중(2022년 기준)은 남성 33.2%, 여성 35.9%로 OECD 주요국 중 가장 높고, 2위인 일본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OECD 평균은 남성 8.2%, 여성 9.0%였다.

지난해 말 한 중견기업에서 퇴직한 A(53)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업직과 경영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며 27년 동안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말 회사를 나가게 됐다. 수년간 고과평가를 낮게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조기퇴직 대상이 된 것이다. 아직 창창한 나이지만 그는 비슷한 직종으로의 재취업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경쟁이 치열해 창업하기도 힘들고, 규모가 작은 도매업종에 재취업하자니 월급이 절반 정도에 불과해 막막하다”면서 “자녀 결혼 등 앞으로 돈 나갈 곳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생산가능인구가 2025년 3591만명에서 2040년 2903만명으로 급감하는 상황에서 고학력 중장년층이 단기 계약직 등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는 건 잠재성장률 반등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한 학생이 채용정보 게시판 앞에 앉아 있다. 뉴시스
극심한 취업난을 겪고 있는 청년층도 현행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는 달갑지 않다. 경총이 지난해 실시한 ‘정년연장 및 근로 가치관에 대한 세대별 인식조사 결과’(20∼34세 구직자 500명, 45∼59세 재직자 500명 대상)에 따르면 미취업 청년의 82.2%는 기업의 연공급 임금체계(호봉제)에 대해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정년연장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임금체계 개편은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KDI가 2024년 발표한 ‘인구감소 시대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한 종합연구’에 따르면 다수의 선행연구는 100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직 비중이 낮은 점을 들어 단순한 정년연장은 “연공서열적 임금체계의 정규직 고용보호의 연장을 의미한다”면서 “기업 측의 조기퇴직 유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OECD 역시 ‘2024년 한국경제 보고서’를 통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개혁하지 않고 법정 정년을 폐지하는 것은 근로자 임금과 노동생산성 간의 격차만 키울 것”이라면서 “이는 기업들이 명예퇴직을 활용할 가능성을 키운다”고 짚었다. 한 청년 구직자는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늘어나게 됐을 때 기업이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우려가 된다”면서 “AI 도입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청년 고용시장이 더욱 위축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무급 전환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달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한다. 김민섭 KDI 연구위원은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평생직장에서의 근속을 장려하는 장치로서 연공급이 기능했다”면서 “하지만 고용조정이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에서 (연공급 탓에) 노동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니 기업 입장에서 고용을 꺼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하는 등 각종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간기업이 개별적으로 직무급 체계를 만들어 도입하기 쉽지 않은 만큼 공공에서 선도적으로 성공사례를 만들면 민간으로 제도 확산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정착을 위해 일단 직무 간 임금 비교가 가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직무급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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