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웹 망원경으로 원시별 관측
폭발 후 결정질 규산염 생성 확인
‘원반 바람’ 통한 이동경로 제시도
초기 태양계 유사과정 경험 가능성
李 교수 주도하에 국제 공동 연구
이정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사진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지구와 행성을 이루는 물질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히는 것은 천문학계의 오랜 숙원이다. 과학자들은 약 46억 년 전 태양계가 만들어질 당시 행성의 재료가 된 먼지와 광물이 어디에서 형성되고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추적하며 그 답을 찾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당시 태양계의 모습을 직접 되돌아볼 수 없는 데다 그 시기를 대신 보여주는 어린 별 역시 두꺼운 가스와 먼지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진이 지금 막 태어나고 있는 어린 별의 성장 전후를 비교 관측해 행성의 재료가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10월 수상자로 선정된 이정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어린 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행성의 재료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약 46억 년 전 태양계 형성 당시 지구와 행성을 이루는 물질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해할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가 단서로 삼은 것은 혜성 속 광물이다. 혜성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진 차가운 곳에서 만들어지지만 그 안에서는 높은 온도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결정질 규산염’이 발견된다. 쉽게 말해 냉동실에서 만들어진 물체 안에서 용광로에서나 생길 법한 물질이 나오는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뜨거운 곳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이 물질이 어떻게 차가운 혜성에 들어가게 됐는지를 오랫동안 풀지 못했다.
이 교수 연구팀은 원시별 ‘EC 53’을 관측해 이 난제를 풀고자 했다. 원시별은 별이 막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의 천체다. EC 53은 밝아지는 시점이 약 1.5년 주기로 비교적 규칙적이어서 다음 폭발 시기를 미리 예측하기에 유리하다. 이를 통해 폭발 전후의 변화를 같은 조건에서 비교 관측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 교수는 “폭발 시점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폭발 전후의 모습을 같은 망원경으로 계획적으로 관측할 수 있다”며 “자연이 반복해서 실험을 해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으로 EC 53이 폭발하기 전과 폭발 중을 각각 관측했다. 그 결과 폭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결정질 규산염의 분광 신호가 별이 밝아진 뒤 새롭게 나타났다. 같은 별의 전후를 비교해 결정질 규산염이 실제로 형성되는 변화를 확인한 것이다. 별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원반 안쪽의 온도가 올라가자 먼지의 구조가 바뀌며 고온에서 만들어지는 광물이 생성된 것으로 연구팀은 해석했다. 이 교수는 “중요한 것은 결정질 물질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변화를 직접 관측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어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ALMA) 전파망원경 관측을 결합해 별 가까이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도 제시했다. 어린 별 주변 원반에서 일부 물질이 바깥으로 불려나가는 흐름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원반 바람’이 뜨거운 곳에서 만들어진 작은 결정 알갱이를 차가운 혜성 형성 영역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고 봤다. 결정질 규산염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뿐 아니라 왜 차가운 혜성에서 발견되는지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혜성의 성분 하나를 설명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약 46억 년 전 어린 태양을 직접 관측할 수 없는 만큼 천문학자들은 현재 태어나고 있는 비슷한 단계의 별을 통해 당시 모습을 추정한다. 연구팀은 이번에 어린 별에서 고온의 광물이 만들어지고 바깥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확인하면서 초기 태양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당시 태양 가까이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멀리 이동해 혜성과 행성의 재료에 섞였다면 오늘날 지구와 행성을 이루는 물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정은(앞줄 오른쪽)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2025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스피어(SPHERE)x 관측지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 교수의 궁극적인 관심은 개별 별이나 혜성을 넘어 ‘우리를 이루는 물질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닿아 있다. 그는 현재 JWST와 ALMA뿐 아니라 하늘 전체를 관측하는 우주망원경 스피어엑스(SPHEREx)까지 활용해 차가운 우주 구름에서 만들어진 먼지와 얼음·분자가 어린 별의 원반으로 들어가 가열되고 뒤섞인 뒤 행성과 혜성의 재료가 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이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만든 물질의 생성은 우주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떤 여정을 거쳐 우리에게 왔는가’를 알고 싶다”며 “우리 태양계가 얼마나 보편적인지, 생명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우주에 얼마나 흔한지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이정은(가운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사진 제공=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번 연구는 국내 연구진이 국제 공동 연구를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 교수는 연구책임자(PI)로 연구를 기획해 JWST와 ALMA의 관측 시간을 확보하고 각국 연구자들과 협업을 이끌었다. 그는 “천문학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학문”이라며 “한국 기초과학이 한 단계 더 성장하려면 해외의 좋은 연구에 참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질문을 먼저 제안하고 국제 공동 연구를 이끄는 연구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