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규제·‘3조 자금세탁 스캔들’로
자금 출처 규정 강화되면서 부유층에 외면
홍콩이 싱가포르 패밀리오피스 수 추월해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전경. AFP연합뉴스중국 정부가 자산의 해외 이전을 단속하고 역외 신탁 관련 세제 개편을 진행하면서 오랜 기간 중국 부유층 자산을 유치해온 싱가포르에 불똥이 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7일 닛케이아시아는 중국·싱가포르 정부의 제도 개편으로 싱가포르가 앞으로도 중국 부유층의 자산을 계속 유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고액자산가와 그 가족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산관리 조직 ‘패밀리오피스’를 설립하는 중국 부유층에게 인기 있는 거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올 5월 중국 정부가 해외 증권 플랫폼을 통한 불법 주식거래 차단 조치에 나서는 등 해외 자산 이전을 어렵게 하면서 싱가포르의 위상에도 타격을 입혔다. 중국 당국은 올 7월에는 역외 신탁에 대한 세제를 개편했다. 규정대로라면 부유층은 역외신탁에 대해 거래 단계마다 20%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닛케이아시아는 “해외에서 자산을 관리하려는 중국 고액자산가들에게 역외 신탁의 활용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면서 “싱가포르처럼 중국 밖에 있는 관할권에 신탁을 설립하는 전략에도 의문이 제기됐다”고 풀이했다.
여기에 자유로움이 강점이던 싱가포르의 자금 출처 검증 규정도 강화됐다. 2023년 8월 당국의 급습으로 중국 국적의 불법 도박 조직 10명이 30억 싱가포르달러(약 3조 1380억 원)의 자금을 세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싱가포르가 적극적으로 유치해 온 해외 부유층의 자금이 범죄에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관련 절차가 엄격해진 것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당국은 돈세탁 사건 피고인 중 일부가 세금 혜택을 받은 패밀리오피스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규정 강화 이후 패밀리오피스 인가 기간은 1년 이상이 소요되며 불만을 샀다.
싱가포르의 성장세가 주춤한 사이 홍콩의 패밀리 오피스 설립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공식 집계상 싱가포르의 단일 가문을 위한 패밀리오피스인 ‘싱글패밀리오피스(SFO)’는 2020년 400곳에서 2021년 700곳, 2022년 1100곳, 2023년 1400곳으로 빠르게 늘어나 2024년에는 2000곳을 넘어섰다. 싱가포르 정부가 8월 공개한 자료에서도 지난해 말 SFO 수는 ‘2000곳 이상’으로 나타났다.
반면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홍콩에는 3384개의 SFO가 있던 것으로 나타나 싱가포르 통계를 추월했다. 두 지역의 SFO 관련 규정은 서로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다만 대략적인 추이를 비교하면 홍콩의 가파른 추격이 확인된 셈이다.
씨티 프라이빗뱅크 홍콩 사업부를 이끄는 호레이스 입은 지난달 150개 패밀리오피스 관계자를 초청해 투자자 행사를 연 뒤 “홍콩이 패밀리오피스 거점으로서 입지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면서 “아시아 최대 억만장자 인구를 보유한 홍콩의 위상은 부의 창출과 투자의 중심지로서 홍콩의 매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다만 올해 중국 정부의 역외 신탁 개정이 홍콩에도 적용되는 만큼 부유층은 중국 본토의 정책 방향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중국 부유층은 자산관리 전략을 바꾸고 있다.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한 컨설턴트는 닛케이아시아에 중국 정부의 세제 규제 강화 발표 이후 싱가포르 현지 파트너와 합작회사를 설립하거나 상품을 싱가포르로 옮겨 현지 법인 명의로 판매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하면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거래가 이론적으로 중국 당국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싱가포르 당국도 고객 유치에 다시 사활을 걸고 있다. 은행 계좌 개설 지연과 관련해 싱가포르 당국은 올해 초 프라이빗뱅크들과 협력해 계좌 개설 기간을 기존 6주 이상에서 한 달 이내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홍콩에서도 귀금속과 사모대출, 디지털자산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오는 2028년까지 최소 220개의 패밀리오피스가 새로 진출하거나 사업을 확대하도록 지원한다는 목표도 구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