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석학 직접 영입해 창의 교육에 베팅…학교 현장으로 확산
3D프린터 숨긴 퓨처랩…“놀이 속에서 ‘행복한 창의성’ 키운다”
권혁빈(오른쪽 첫번째)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가 최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에서 열린 퓨처랩 행사에서 초등학생들이 만든 코딩 프로젝트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지분 100%를 보유한 권 CVO의 순자산 규모는 지분 가치를 합쳐 7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공=스마일게이트“코딩 아저씨, 이건 어떻게 해결해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글로벌 게임사 스마일게이트 본사 지하 1층. 이곳 200평 남짓의 공간에서 어린이·청소년 창의 교육 프로그램인 ‘퓨처랩’ 행사가 열릴 때면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이른바 ‘코딩 아저씨’가 있다.
편안한 운동화와 캐주얼 차림으로 등장하는 그는 초등학생들이 코딩 학습에 몰두할 때면 기둥 뒤에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관찰하다가 슬며시 다가간다. “아저씨 누구예요? 개발자예요?”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그는 그저 코딩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아이들이 만든 결과물 앞에 눈높이를 맞춰 앉아 모니터 구석구석을 살피며 조목조목 피드백을 건넨다.
이 ‘코딩 아저씨’의 정체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4조 4281억원 규모의 글로벌 게임사 ‘스마일게이트’를 일군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다.
스마일게이트 창업자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 2026.9.9 연합뉴스5000만원 창업 신화…‘비상장 뚝심’으로 창의 인재 키운다1974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권 CVO는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몰두하며 엔지니어로서 역량을 키웠다.
이후 2005년 4월 초기 자본금 5000만원으로 스마일게이트를 설립했다. 1인칭 슈팅(FPS)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발굴해 중국의 ‘국민 게임’ 반열에 올린 것을 시작으로, 대작 ‘로스트아크’, ‘에픽세븐’까지 잇따라 성공시키며 스마일게이트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스마일게이트는 수조원대 자산 가치에도 불구하고 기업공개(IPO)를 추진하지 않고 권 CVO 중심의 지배구조를 고수하는 ‘비상장 뚝심 기업’으로 유명하다.
단기적인 분기 실적과 주주들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경영 환경을 갖춘 덕분에, 게임 하나를 개발하는 데 7년 이상을 투입하는 장기 투자와 수익성이 없는 사회공헌·창의 교육 사업에 억 단위 예산을 쏟아부을 수 있는 독보적인 동력을 얻었다.
그런 그가 현재 공을 들이는 영역은 다름 아닌 ‘사회공헌과 창의 교육’이다. 스마일게이트는 퓨처랩과 희망스튜디오, 오렌지플래닛 등 3개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퓨처랩은 다음 세대의 창의력을 길러내는 핵심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스마일게이트 본사 지하 1층에 자리한 퓨처랩 내부. 전국에서 구해 온 가로등을 조명으로 달고, 벽면은 물을 대 키우는 살아 있는 식물로 꾸몄다. 제공=스마일게이트특히 퓨처랩은 권 CVO가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교육학자이자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첼 레스닉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를 퓨처랩 부이사장이자 등기이사로 직접 영입한 주역도 바로 권 CVO다.
그는 세계적 거장에게 진정성 하나로 다가가 ‘수익이 아닌 미래 인재의 창의성 발현’이라는 비전을 설득해 내며 퓨처랩의 글로벌 인프라를 구축했다. 현재 퓨처랩은 단순한 기술 전수를 넘어 아이들의 순수한 창의성이 마음껏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단기 성과 연연 안 해…AI 시대, 행복한 인재 길러낼 것”성공한 게임회사 창업자가 왜 단기 성과가 나지 않는 어린이 창의성 교육에 이토록 정성을 쏟는 걸까. 퓨처랩 측은 이를 ‘스마일게이트 특유의 문화’와 ‘호기심에 대한 가치’로 설명한다.
오숙현 퓨처랩 실장은 “어린이 시절 품은 순수한 호기심과 애정은 시행착오를 이겨내는 힘이 되고, 이는 곧 회복탄력성과 사회적 창의성으로 이어져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화력이 된다”며 “스마일게이트가 단기 성과에 목매지 않는 문화를 지닌 만큼, 교육 역시 요행을 바라기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문화를 바꾸는 정도를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퓨처랩이 지향하는 미래 인재상의 핵심은 ‘행복’이다. 성취감에서 오는 인지적 만족감과 정서적 유희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충만한 행복이 완성된다는 관점이다.
급격히 발전하는 AI 기술을 단순히 쫓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위에서 상위의 가치를 창출하고 리드할 수 있을 때 인간이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다.
퓨처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대화를 나누며 작품활동을 하는 모습. 제공=스마일게이트3D 프린터 숨긴 200평 공간…“단순 체험 아닌 ‘진짜 경험’ 준다”지난 2016년 권 CVO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막을 올린 퓨처랩의 창의 교육은 레스닉 MIT 교수, 예술가, 과학자들과 함께 ‘정답이 없는 세계를 탐험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목재 팔레트와 우유 박스로 책상과 미로, 섬을 만들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200평 규모의 공간을 조성했다. 8세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누구나 찾아와 창작을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퓨처랩 공간에 3D 프린터 같은 최첨단 장비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장비를 뒤로 숨긴 이유는 기술 자체를 다루는 법보다 기술 위에서 판을 조망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화려한 첨단 기술을 단순히 ‘체험’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진짜 경험’의 씨앗을 심어주겠다는 의도다.
오숙현 퓨처랩 실장. 제공=스마일게이트교사 지원 체계 구축…공교육 현장으로 퍼지는 변화의 바람퓨처랩의 영향력은 오프라인 공간을 넘어 공교육 현장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퓨처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천 명의 교사 네트워크 중 70~80%가 공교육 교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퓨처랩에 참여한 김포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유리창에 새들이 충돌해 목숨을 잃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AI를 활용해 전 세계적인 철새 이동 경로와 대응 플랫폼을 조사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생명과의 공존 가치를 깨달았고 해당 교사의 주도하에 이 프로젝트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활동으로 확대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오 실장은 “단순히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스스로 호기심을 발굴하고 세상에 가치를 더하는 건강한 인재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 퓨처랩의 목표”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교육자와 아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교육 경험을 전달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퓨처랩 참여 학생들이 출석 확인에 쓰는 장난감. 출석할 때마다 부품을 하나씩 받아 장난감을 완성해 나가도록 했다. 제공=스마일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