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시 질의에 "여러 의견 들었다"
국힘, 김용범 증인 채택 거듭 요구"누군가는 감옥 갈 사안이다."
"국민 자산 수십조가 그냥 약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악의 정책 실패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증시 변동성을 확대시킨 주범으로 꼽혀온 단일종목 레버리지(단종레) 상품을 두고 책임 공방이 펼쳐졌다. 청와대 개입설을 주장해온 야당은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증인 채택을 재차 요구하는 한편, 금융당국 수장인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반면 여당은 정책 설계와 시행 과정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청와대 개입설은 다소' 음모론'적이라고 선 그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8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억원 "위험성 점검했다...52조 손실 정확하지 않아"
이 위원장은 8일 금융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 출석해 청와대의 지시로 단종레 상품이 도입됐느냐는 의원들의 질의에 "그렇지 않다. 여러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도입 근거는 시행령 개정이고, 시행령 개정은 금융위 소관"이라며 "예전부터 해외에서는 투자할 수 있는데 국내에선 왜 막느냐며 (도입)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시작부터 단종레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둘러싼 공방이 오갔다. 앞서 정부는 해외에서는 투자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 불가능한 비대칭적 규제를 해소한다는 취지로 이른바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상장을 허용했지만, 사실상 국내 증시를 베팅판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초 종목의 하루 등락률을 두배 추종하는 해당 상품 출시 후, 증시 변동성이 급격히 커지면서 개인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이 확인된 탓이다.
이 위원장은 야당 의원들의 대국민 사과 요구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책 필요성 등 여러 가지를 보면서 (단종레 상품을) 도입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들어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쳐 드린 부분에 대해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진심으로 송구하다"고 고개 숙였다.
단종레 ETF 도입 절차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으면 금융위원장으로서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위법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져야한다"고 답변했다. 도입 전 스트레스테스트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스트레스테스트라는 용어를 어떻게 따지느냐의 문제"라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도입할 때 투자자 위험성, 시장 영향 등"을 살폈다고 반박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상장 심사는 평균 62일이 걸리는 반면, 단종레 ETF는 심사까지 평균 29일 걸린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지수 ETF는 구조가 단순해서 상장까지 걸리는 기간이 다른 부분이 있고, 리밸런싱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하는 등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개인투자자가 약 54조원 손실을 입었다고 분석한 한 해외IB 보고서에 관해선 "(보고서를 낸) 자기들이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트레이딩 부서에서 낸 비공식 시장논평(이라고 했고), 실제 내용도 정확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개인투자자 손실 규모에 대해서는 "실제론 2조3000억~2조4000억이라는 분석도 있고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최은석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국은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상품이 출시된 올해 5월 27일부터 8월 14일까지 10개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서 개인이 확정한 매매손실을 총 2조3242억원으로 집계했다.
다만 최은석 의원은 이러한 수치가 매도로 인한 확정 손실인만큼 실제 피해 규모보다는 축소된 것이라며 "(간접손실까지) 이걸 다 따지면 수십조의 우리나라 개인, 기관의 자산이 허공으로 증발했다. 국민 자산 수십조가 그냥 약탈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다시 돌아가도 단종레를 도입할 것이냐는 질타에는 "당시 외환시장이 굉장히 어려웠다. 환율이 1500원을 뚫느니 일부 언론에서는 제3의 외환위기 이야기도 나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위에서 단종레가 외환시장에 끼칠 영향 등을 분석한 자료는 없었고 출시 자체가 성급했기에 정치적 의도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추가 지적이 나오자 "정책 도입 필요성 외에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은지 그런 부분을 유념하겠다"고 답했다.
사퇴한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야당 "백이면 백 김용범 지목, 증인 채택해야"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억원 위원장은 단종레 ETF 도입의 결정주체가 누구였는지와 관련한 질문에 "금융위원회 시행령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는 답변으로 내내 일관했다. 다만 야당의원을 중심으로 청와대 개입설, 김용범 전 실장 증인 채택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이 위원장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사과해주는 용기에 감사하다. 그 용기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이 자리에 설 분이 과연 금융위원장인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께서 '누군가 결정했겠죠'라고 하셨는데 이 사태가 금융위원장이 잘못된 정책 판단을 해서 벌어진 일인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누가 있느냐는 것"이라며 "무거운 짐을 위원장 혼자 지고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방선거 일주일 전 졸속 출시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로 국민 피해가 54조원에 달했다"며 "고위험 금융상품 출시에 청와대가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왜 당시 김 전 실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는 건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측 해명과 달리 지난 1월 대통령실 주재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한 금융유관기관들이 단종레 도입을 제안하지 않았다는 주장 등이 잇따른 만큼, 김 전 실장 등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 세세한 정책 결정 경위를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 또한 "백이면 백 다 김용범 전 실장을 지목한다"며 "그러면 그분이 (증인으로) 여기(국감장) 나와서 깔끔하게 왜 했다고 정리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도 이러한 정황들을 언급하면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범이고 금융투자협회 그리고 금융위원회가 공범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조사든, 수사든, 특검이든 해서 누군가는 감옥 갈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에서는 현재 김 전 실장 외에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의 증인 채택도 요구하고 있다.
여당 "청와대 개입설, 음모론적" 반박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시장 감시 실패 등의 단종레 ETF를 둘러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제도 도입이 불필요한 측면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박홍배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에서 도입하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며 (야당에서) 음모론적으로 몰고 가는 측면이 있다"며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1년 전에는 홍콩에서 국내 주식을 기반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나왔고) 국내 투자자들에 의해 거래됐기 때문에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 역시 "야당의 지적은 본질이 아니다"라며 "그때 도입이 불가피했다"고 편들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이 문제는 상품 출시에 대한 승인이 아니라,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 소위 HFT(초단타매매) 전략을 사용하는 세력과 이를 관리할 책임이 있는 한국거래소의 관리 실패에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1~5월 월평균 HFT 거래대금은 약 2700조원이었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이후인 6~8월에는 4200조원으로 52% 증가했다. 이에 따라 ETF 리밸런싱 연계 거래에 대한 전수조사는 물론, 거래소의 시장감시 기능을 별도 독립기구로 분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거래소가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위법행위가 발견될 경우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더욱 엄격하게 점검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해외 사례 등을 살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여당은 야당에서 주장하는 피해액 산정이 부정확하다고도 반박했다. 박홍배 의원은 "기초 자산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가 내려간 것이고 그것이 레버리지로 돼 있으니 (피해액을) 절반 정도로 보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에서 도입 배경으로 언급하는 환율 효과가 전혀 없었다는 야당의원들의 지적도 일축했다. 이강일 민주당 의원은 "레버리지 ETF가 도입되고 나서 환율은 꺾였다"며 "환율이 1500원대 중반에서 꺾이기 시작한 게 공교롭게 시기가 약간 겹친다. 그래서 효과가 있었다고 얘기하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