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를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지금, 트럼프 행정부가 유권자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현금성 지원을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직접 지급액만 23억 5천만 달러(우리 돈 약 3조 1천억 원)입니다.
백악관은 의료비 부담을 덜고 과도하게 걷힌 수수료를 돌려주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선거 직전이라는 시점과 지급 대상 때문에 정치적 효과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 노인 2천만 명에 90달러…'접전' 주에는 500달러
가장 규모가 큰 건 메디케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메디케어 파트B 가입자 가운데 2천80만 명에게 이번 달 1인당 90달러를 지급합니다.
병원 밖 진료와 검사 등에 쓰이는 파트B의 표준 월 보험료가 202달러 90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한 달 보험료의 절반 가까운 금액입니다.
재원은 2008년 의회가 만든 20억 달러 규모의 '메디케어 개선 기금'에서 나옵니다.
오바마케어 가입자 일부에게는 금액이 더 큽니다.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HealthCare.gov에서 보험을 산 사람 가운데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보험료 전액을 부담한 약 95만 명에게 500달러씩 돌려주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코로나 시기에 확대된 보험료 보조금의 연장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올해 보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난 계층입니다.
백악관은 바이든 정부 시절 과도하게 부과된 수수료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지급 지역을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습니다. 500달러 수표는 HealthCare.gov를 사용하는 30개 주에 지급되는데, 전체 4억 7천500만 달러 가운데 71%, 3억 3천900만 달러가 상원이나 주지사 선거가 치열한 13개 주로 향합니다.
로이터가 선거 분석기관들이 가장 경쟁적으로 보는 선거와 대조해 보니, 올해 가장 치열한 상원 선거 9곳 가운데 8곳, 주지사 선거 12곳 가운데 10곳이 이 13개 주에서 치러집니다.
■ "공화당 이기면 5천 달러"…접전지 정부 지원도
더 큰 약속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지키면 미국의 모든 성인 시민에게 5천 달러씩, 이른바 '트럼프 배당금'을 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접전 지역에 대한 정부 지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래스카에서는 JD 밴스 부통령이 공화당 댄 설리번 상원의원 지원 유세에 나선 바로 그날, 연방정부가 1억 5천만 달러 규모의 송전선 지원을 발표했습니다.
정부 정책의 목적과 별개로, 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두고 유권자가 체감할 수 있는 돈과 사업이 집중되고 있는 겁니다.
■ 2018년엔 농민 지원금, 2020년엔 '트럼프 수표'
트럼프 1기였던 2018년에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 120억 달러 규모의 농업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핵심은 농민들에게 현금을 직접 보전해 주는 '시장촉진프로그램'으로, 중간선거를 두 달 앞두고 첫 지급이 시작됐습니다.
이후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이번에는 별도의 코로나 농가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대규모 지원금이 지급됐습니다.
일반 유권자에게는 코로나 경기부양금도 지급됐습니다. 성인 한 명당 최대 1천200달러를 우편으로 받은 종이 수표에는 메모란에 'President Donald J. Trump'라는 이름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이 IRS 지급 수표에 들어간 건 이때가 처음입니다.
■ '표 바꾸기'보다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그렇다면 실제 효과는 어땠을까요.
우선 2018년 농민 지원금입니다. 최근 미국정치학회 학술지에 실린 연구진은 지원받은 농민 등 16만 5천 명 이상의 실제 투표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농가마다 피해와 지원금 규모가 달랐는데, 손실을 더 많이 보전받았다고 해서 공화당 성향 농민들의 2018년 중간선거 투표율이나 정치후원금이 뚜렷하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지원금을 많이 받은 농민일수록 정책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은 나타났지만, 그것이 곧바로 투표 참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2020년 대선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농가 지원금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두 지원 프로그램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 67만 7천 표를 추가로 가져다준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특히 늘어난 표의 대부분은 다른 당 지지자가 트럼프로 돌아선 게 아니라, 기존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 많이 투표장에 나온 데서 발생했습니다.
정부 지원과 투표의 관계를 분석한 다른 연구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푸드스탬프 제도가 지역별로 도입되던 시기를 분석했더니 제도 시행 이후 민주당 득표가 늘었습니다. 이 경우에도 상대 당 지지자를 민주당으로 바꾼 효과보다는 새롭게 혜택을 받은 민주당 성향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 다급한 트럼프의 '현금카드'…이번에도 통할까?
이번 중간선거의 최대 쟁점은 생활비입니다. 물가 부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데다, 8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은 기름값과 각종 에너지 비용까지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최근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최근 32%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의 핵심 과제는 지지층을 실제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겁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유세에서 유권자들에게 "내가 출마한다고 생각하고 투표하라"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현금 카드'가 생활비와 전쟁에 흔들린 표심을 얼마나 되돌릴지, 또 기존 지지층을 얼마나 투표장으로 끌어낼지가 이번 선거의 또 다른 관전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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