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불온(不穩)'. 온당하지 않다는 뜻으로 사상이나 태도가 기득권 내지는 통치 권력, 고정관념,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격을 가리킬 때 쓰인다. 이러한 성질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으나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불쏘시개가 된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프레시안>은 그러한 '불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불온'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재명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AI데이터센터·피지컬AI)를 추진 중이다. 사실상 AI 산업으로 집약된다. 지역 불균형, 청년 일자리 창출, 그리고 중국과의 AI 경쟁 등에서 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 메가프로젝트(AI데이터센터) 진행 지역에서의 용수, 전기 공급 관련해서 정부는 공급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다.
3년 안에 8.4GW라는 거대한 센터를 전국에 짓는 데 온갖 화석연료 전력이 동원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여기에 화석연료가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럴 경우 RE100 달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럼에도 정부는 메가프로젝트 관련해서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메가특구특별법'을 연내 제정하기로 했다.
정부가 이렇게 AI에 올인하는 건, 자칫 다른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AI 산업에만 국가 차원의 일명 '몰빵'을 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을 사실상 책임진 제조업이 몰락하고, 미래 핵심 산업인 녹색 산업의 잠재력이 사라질 수도 있다.
메가프로젝트의 사업 방식에도 의문이 나온다. 정부가 산업 인프라와 제도 공간을 직접 만든 뒤, 다양한 기업들이 경쟁하게 만드는 기존 산업정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사실상 기업에 모든 것을 일임하는 식이다. 이럴 경우 특구 내에서 환경 문제나 노동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구나 현재 정부는 노동 특례를 이곳에 도입하려 한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AI 거품이 사라지면 우리나라처럼 이 산업에 올인한 곳은 큰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장기 침체의 길을 가야 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김 소장은 기후위기 대응과정에서 인공지능의 영향과 복지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2023), <AI와 기후의 미래>(2025년) 등의 저서를 썼다.
김 소장은 6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현재 진행 중인 메가프로젝트의 문제가 무엇인지, 현재 AI 산업에서 제기되는 거품론, 중국발로 발생한 한국 제조업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아래 그와의 일문일답.
(관련기사 바로가기 ☞ : 김병권 녹색정책연구소 소장 上 - "'삼전닉스' 거품 빠지면 제조업 타격받은 독일 양상 전면 부상할 수있다")
▲ 박병권 소장. ⓒ프레시안(허환주) "디지털TV로 한국이 일본 이겼듯 전기차로 중국이 승자가 될 것이다"
▲ 제조업이 타격받으면 일자리 문제부터 시작해서 내수 부진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시급히 경쟁력을 갖추는 게 필요할 듯하다. 다만 이쪽 제조업, 즉 철강이나 석유화학, 자동차 등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이다. RE100 등으로 사실상 이들 업종의 수출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기업으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포스코다. 여기서 전체의 10%가 넘는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뒤집어 말하면, 철강 부분에서 온실가스를 없앤 기술을 상용화하고 그에 따른 제품을 만들어 낸다면 앞으로 장기간 철강 업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AI와는 상관없다. 철강에 AI를 집어 넣는다고 이런 경쟁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의 생산공정을 만들어 낸다면 매우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다만, 그것을 위한 과정이 어렵지 않나.
"중국은 녹색산업이 전체 GDP의 11.4%까지 올라갔다. 최근 몇 년간 경제성장률 기여도의 30~40%는 여기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원료부터 최종재 판매까지 모든 것을 다룬다. AI가 아니라 탄탄한 녹색산업의 지원을 받으면 기존 탄소집약적 산업도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다."
▲ 최근에 중국 자동차가 수출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것도 녹색산업과 연관이 있는가.
"2년 전에 전 세계 자동차 수출 물량 1위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5년 안에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은 중국이 제패하리라 본다. 중국은 자동차 미래산업으로 전기차를 선택했고, 이는 우리보다 더 빠르다. 이는 마치 90년대 한국-일본과 비슷하다. 당시 일본은 아날로그 TV에 매진했고, 우리는 거기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니 디지털 TV에 매진했다. 그 결과가 어땠나. 우리가 일본을 이겼다. 자동차도 그렇게 되고 있고 이번에는 승자가 중국이 될 것이다."
"중국의 핵심전략은 녹색 데이터센터 만드는 것"
▲ 그래도 배터리 분야는 우리가 앞서고 있지 않나.
"그것도 5년 전이나 그랬다. 당시엔 한국 배터리 3사가 전 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했다. 이제는 아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 점유율이 37.9%에서 1년 만에 26.8% 하락했을 정도로 빠르게 밀리고 있고, 이를 중국이 대체하는 중이다."
▲ 왜 그렇게 됐나.
"우리는 MCM(니켈, 코발트, 망간) 배터리가 강점이다. 비싼 대신 가볍고 밀도가 높다. 우리가 이것을 세계 최고 배터리라고 자랑할 때, 중국에서는 LFP(리튬, 인산, 철) 배터리를 생산했다. 가격이 저렴한 반면 처음에는 무겁고 에너지 밀도도 낮았다. 한마디로 질이 낮다는 이야기다. 그런 배터리가 이제는 MCM 배터리와 성능이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치고 올라왔고, 세계 시장에서 주류가 되면서 한국의 경쟁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즘 ESS(에너지저장장치)가 뜨면서 LFP 배터리 시장이 더 커지고 있다.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하는 한편 AI 데이터센터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기에 더해 나트륨 베터리도 성공했다. 리튬이 아닌 나트륨, 즉 소금이 들어가는 배터리다. 더 싼 가격에 시장에 나온다."
▲ 바람이 불 때는 풍력으로, 낮에는 태양에너지로 전기를 만들어 저장한 뒤, 저녁이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전력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ESS가 활용되는데, 여기에 값싼 중국 배터리가 활용되는 듯하다.
"중국은 그렇게 태양광-배터리', '풍력-배터리' 식으로 세팅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은 내몽골 쪽에 대규모로 태양광을 깔았는데, 송전선도 모자라고 생산한 전기가 소비도 안 되니, 그쪽에 데이터센터 건립을 독려하고 있다. 딥시크가 기가급 데이터센터를 만들겠다고 올해 8월 공표했는데, 거기가 내몽골이다. 그렇게 기본적으로 녹색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게 핵심 전략이다.
▲ 일론 머스크. ⓒNBC 화면 갈무리 "빅테크 CEO들은 장사꾼, 그들 말을 과학자 말처럼 들으면 안 된다"
▲ 결국 중국은 전력이 있는 곳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식이고 우리는 거꾸로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한 뒤에야 전기를 어떻게 끌어올지를 고민한다. 선후 관계가 거꾸로 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급박하게 메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를 두고 중국에서 이렇게 AI 산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AI는 중요 미래 산업이고 여기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거대한 데이터센터가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번역 AI를 쓰는데 기가와트급 데이터센터를 돌려야 하는가. 자동차를 생각해 보면 가장 빠른 차가 제일 좋은 차인가. 제일 안전한 차가, 경제적으로 저렴한 차가 제일 좋은 차일 수 있다. 지금 AI 경쟁구도를 보면, 가장 빠른 차만이 제일 좋은 차라며 가장 빠른 엔진을 만들기 위해 전방위적인 투자를 하는 양상이다. 저쪽에서 시속 300km를 달리는 차를 만들면, 우리는 400km 차를 만드는 식이다. 실리콘 밸리가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를 따라가려 하고 있다. 이게 맞는지 의문이다."
▲ 대규모 개발이 아닌 효율성을 발휘하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그에 맞춰서 운영하면 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지금은 새로운 지식이나 첨단의 뭔가를 집어넣어 프런티어 AI를 진화시키기 보다는, 규모의 법칙(Scaling raws)이라고, 규모를 키우면 성능이 좋아지니까 계속 모델을 키우고 이를 돌리는 데이터센터를 키우는 식이다. 그렇게 양적인 규모를 키운다고 초지능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보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우리는 샘 올트먼, 다리오 아모데이, 일론 머스크 등 빅테크 CEO들 말만 믿고 그 길만이 유일한 AI 진화의 길인양 착각하고 있다. 그들이 예전에는 과학자나 엔지니어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CEO, 즉 장사꾼이다. 장사꾼이 하는 말을 과학자가 하는 말처럼 들으면 안 된다."
"K-GX, AI 올인정책의 위험성을 완화하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 마지막 질문일 듯하다.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지금 제일 고용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 분야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데 AI에 가려 제대로 정책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미래의 싹일 수 있는 녹색 산업 역시 잘 키우면 미래 핵심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데 AI 그늘에서 방치하고 있고 빠르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처럼 AI에 '몰빵'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제조업 분야를 녹색 산업과 결합해 잘 살리는 방향을 나가야 한다. AI 산업만큼이나 녹색 산업이 미래 산업의 큰 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 한국의 경우, 화석연료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RE100, 그리고 제조업에서의 수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에서의 녹색 산업에 대한 지원과 정책이 필요할 듯하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 즉 녹색산업 육성법을 만들었다. 이는 사실상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 녹색산업을 보조해 주는 법이다. 미국 내 태양광 기업이 워낙 없으니 다른 나라의 태양광 기업이 와도 보조금을 줄 정도로 과감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한화큐셀 등이 국내 공장 문 닫고 미국으로 갔다. 그때가 2022년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녹색산업을 키우기 위해 법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되레 국회의원들은 미국으로 가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짐 싸들고 나간 기업이 잘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말하자면 미국이나 전 세계는 자국의 녹색 산업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녹색 산업 정책을 고민했다면 한국은 이를 통상 정책으로 본 것이다. 지금도 한국은 녹색 산업법이 없다. 탄소 중립법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아직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뒤집어서 보면 한국이 AI에 올인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많이 미흡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0월 7일 뒤늦게 정부가 K-GX라는 이름으로 녹색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이를 잘 살려나가고 보완해나가는 것이 AI 올인정책의 위험성을 완화하는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