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농지는 처분…2~3년 정비기간 부여
“농지 전수조사 취지 후퇴” 지적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농지 전수조사 후속 조치와 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브리핑하기 위해 발언대에 서고 있다. 정부는 특별조치법 제정을 통해 상속 농지와 고령농 보유 농지 등 5가지 유형을 현재 진행 중인 농지 전수 조사 처분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연합뉴스정부가 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않는 이른바 ‘농지법 위반’ 농지를 대대적으로 찾아내 처분하겠다던 계획을 5개월 만에 일부 수정했다. 상속받은 농지나 고령으로 농사를 짓기 어려워 다른 사람에게 맡긴 농지처럼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농지법을 위반했더라도 원칙적으로 처분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당초에는 이런 농지도 농지은행에 맡기면 일정 기간 처분을 유예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정부가 아예 처분 대상에서 빼는 쪽으로 한발 더 물러섰다.정부가 당초 조사 취지와 달리 파격적인 구제책을 낸 배경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가져야 한다’는 농지법의 원칙과 실제 농촌의 모습 사이에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따라 농지를 농업인이 농업경영에 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지 소유자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계속 보유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는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 정부가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찾아내려던 것도 바로 이런 농지였다.
문제는 농촌에서 이런 사례가 단순한 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령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농민이 다른 사람에게 농사를 맡기거나, 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지를 여러 상속인이 나눠 갖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종중이나 사찰처럼 소유관계가 복잡한 농지도 있고, 길이 없거나 경사가 심해 사실상 농사를 짓기 어려운 땅도 있다. 농업용 창고처럼 농지에 설치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허가를 받지 못한 사례도 누적돼 있다.
정부는 이런 현실까지 감안하지 않고 농지법 위반 여부만 따져 처분할 경우 농촌에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전수조사가 시작된 뒤 농가에서는 “수십 년간 관행대로 농사를 지어왔는데 갑자기 불법이라고 한다”, “농지를 처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졌다. 농촌에서는 정부가 농지를 빼앗으려 한다는 반발까지 나오면서 농지 거래 위축이나 가격 하락 등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농지 전수조사 후속 조치와 제도 개혁 방향’을 발표하며 이 같은 문제를 반영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투기가 아닌 일반적인 사안은 전수조사 결과에 따른 처분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특별조치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특별조치법에 따라 처분 대상에서 제외되는 농지는 △상속 농지 △고령농·관행 임대차 농지 △종중·사찰·미등기 상속 등 소유관계가 복잡한 농지 △맹지·영농 곤란 농지 △농업용 창고 등 미허가 시설이 있는 농지 등이다.
단순히 처분을 면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2~3년의 정비기간을 두고 그동안 위법 상태를 합법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구두로 이뤄진 관행 임대차는 땅 주인과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서면 계약을 체결하면 합법적인 임대차로 인정한다. 법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농업시설은 사후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농지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용도로 쓰이는 땅은 지목과 실제 이용 상태를 맞추는 절차도 마련한다.
그렇다고 모든 농지법 위반을 눈감아주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농지를 이용해 시세차익 등 부동산 수익을 얻으려 한 경우는 처분 대상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허위 영농계획서를 내 농지를 취득한 뒤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하거나 임대한 경우, 경매 등으로 농지 지분을 취득한 뒤 경작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임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농업법인이 농지를 쪼개 팔거나 임대해 부동산 수익을 올린 경우도 포함된다.
정부는 이 같은 명백한 투기 행위에 대해서는 충분한 소명 절차를 거쳐 현행 농지법에 따라 처분명령을 내릴 계획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약 15만㏊ 규모다. 송 장관은 “이런 사례는 개발 수요가 높은 지역에 집중돼 있으므로 대부분 농촌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부가 이 같은 농촌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이미 상당한 행정력과 예산을 투입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농지 전수조사를 위해 추경 등을 통해 총 1100억원을 투입하고 5000명 규모의 조사 인력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실제 7월 말까지 기본조사에만 공무원 5313명과 민간 조사원 2964명 등 8277명이 투입됐다.
조사 대상도 방대하다. 정부는 1996년 이후 취득한 농지 136만㏊를 대상으로 소유자가 누구인지,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지,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지 등을 조사한 뒤 불법이 의심되는 농지는 현장 확인까지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대규모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조사한 뒤 처분 대상은 크게 좁아지면서 당초 전수조사의 목적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처음에는 농지 투기를 찾아내 처분하겠다고 했다가 농민 반발이 커지자 사실상 구제 범위를 크게 넓힌 만큼,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하다.
특히 이미 농지 처분명령을 받고 실제 농지를 처분한 사람과 앞으로 특별조치법에 따라 처분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남는다. 송 장관 역시 “기존 처분명령 대상자에게도 이번 특례를 적용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며 “국회 단계에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전수조사를 단순한 ‘불법 농지 색출’로 끝내지 않고 농촌의 현실에 맞게 제도를 고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 중 농지법을 개정해 임대차와 휴경 인정 범위를 넓히고 실경작자를 보호하는 한편 농지 정보를 통합해 관리체계도 손질할 계획이다.
농지은행의 역할도 확대한다. 농사를 더 이상 짓기 어려워 농지를 팔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어도 농지은행의 매입 물량이 부족하다는 현장 지적을 반영해 내년도 예산 증액을 국회와 협의하고, 매입 대상도 진흥지역 농지 중심에서 농업 활용이 가능한 비진흥지역 농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농식품부는 이미 내년 농지은행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25% 증액해 국회에 제출했다.
송 장관은 “농사를 더 이상 짓기 어려워서 임차인을 찾고 싶은 분, 장기간 임대를 원하는 분, 농지를 팔고 싶은 분에게는 농지은행이 실질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농지 조사에 활용하던 중국산 항공 무인기(드론)의 촬영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송 장관은 “0.1%의 우려라도 있을 수 있어 일단 중국산 드론 촬영은 일시 중단시켰다”며 “보안 조치를 철저히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