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결혼기념일 편지가 판결문에 남기까지…”
“돈을 벌지 않은 안내에게 나눠줄 재산은 없다” 남편 측 주장이었다. 사건의 내용을 재구성한 AI 생성 이미지.“당신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어. 모든 재산은 내가 일궈낸 것이니 조금도 분할해 줄 수 없어.”
내가 맡은 이혼사건에서 남편이 내세운 주장이었다. 의뢰인은 25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동안 남편은 사업으로 재산을 모았다. 이제 헤어지려 하니, 돈을 벌지 않은 아내에게는 나눠줄 재산도 없다는 것이었다.
돈은 남편이 벌었지만 아내가 없었다면 안정적으로 벌 수 있었을까. 결코 남편 혼자 한 이룬 것은 아니다.
전업주부의 가사·양육, 재산분할 기여도는 어떻게 설명할까?
의뢰인의 결혼생활은 넉넉하게 시작됐다. 유명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며, 자상한 남편이 고마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편히 쉬도록 가사와 양육을 전적으로 도맡았다.
그러나 다툼이 잦아졌고, 결국 이혼소송에 이르렀다. 의뢰인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25년을 재판부에 어떻게 보여주느냐였다. 나는 의뢰인이 얼마나 억울한지 설명하는 데서 멈출 수 없었다.남편이 부인하는 기여를 찾아, 재산분할을 받을 근거로 제시해야 했다.
남편의 특유재산 아파트도 이혼할 때 재산분할 대상이 될까?
특히 남편은 지금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결혼 당시 모두 자신의 돈으로 구매했다는 것이 근거다. 그 말은 결혼 당시보다 10배 이상 가격이 오른 그 아파트를 재산분할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특유재산이라도 다른 배우자가 그 재산을 유지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해 가치의 증가에 협력했다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아파트 값을 누가 냈는지만 다투어서는 안된다. 의뢰인이 매입대금을 함께 부담했다고 주장할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아파트를 산 이후의 25년 혼인생활이었다. 의뢰인이 가사와 양육을 전담해온 일이 남편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했고, 그 역할이 아파트를 유지하는 데에도 이어졌다는 점을 설명해야 했다.
‘집안일을 열심히 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 일을 누구와 나누어 했는지 혹은 오로지 혼자 감당했는지, 남편은 그동안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이를 보여줄 자료가 있는지가 중요했다. 오래 살았다는 사실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그 세월 동안 의뢰인이 맡아온 역할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사건의 내용을 재구성한 AI 생성 이미지.재산분할 기여도의 증거가 된 남편의 결혼기념일 편지
나와의 오랜 회의 끝에 의뢰인은 남편, 자녀들과 나눈 과거 카카오톡 대화 및 편지 등을 다시 살피기로 했다. 그러다 결혼기념일 편지 한 장을 찾았다. 남편이 쓴 편지였다.
편지에는 ‘의뢰인이 양육과 집안일을 전적으로 맡아주어 자신은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남편은 아내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하고 있었다.
지금은 기여가 전혀 없다고 하는 사람이, 과거에는 아내 덕분에 일할 수 있었다고 쎴던 것이다. 내가 설명하려던 관계를 남편 자신이 먼저 정리해두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중요하게 본 것은 고맙다는 표현 자체보다, 무엇이 고마웠는지였다. 단순히 부부 사이가 좋았다는 편지가 아니었다. 아내가 집안일과 양육을 맡았고, 그 덕분에 남편이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중요했다. 의뢰인의 주장만으로 설명하던 역할을, 상대방이 직접 인정한 기록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그 대목을 남편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로 삼았다.
그렇다고 편지 한 장만 내고 결과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의뢰인이 가족들에게 요리해주었던 사진, 남편이 바쁜 동안 아이들과 외출했던 사진도 모았다. 편지에 적힌 말과 실제로 가족을 돌본 생활이 함께 드러나도록 자료를 정리했다.
자료가 모였다고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편지와 사진들을 통해 가사와 양육을 누가 맡았는지 보여주었고, 그 역할이 남편의 경제활동을 어떻게 뒷받침했는지 설득하는데 집중했다. 남편이 사업에 전념하는 동안 의뢰인이 가정을 맡았고, 아내의 협력이 아파트의 가격 상승분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었다. 즉, 아파트를 유지하면서 수억이 수십억이 된 것은 남편 혼자 이룬 것이 결코 아닌 것은 명확하다는 것이다.
재판부에 의뢰인이 좋은 아내였다고 칭찬해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의뢰인이 해온 일을 재산에 대한 기여로 인정해달라는 것이었다. 편지는 남편이 그 역할을 알고 있었다는 자료였고, 사진은 실제 생활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자료들을 하나의 설명으로 연결해 제출했다.
결국 혼인 당시 아파트를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법원은 의뢰인이 25년 동안 가사와 양육을 맡으며 그 아파트의 유지와 가치 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해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혼인생활 중 형성한 다른 재산도 분할 대상이 되었다. 아무것도 나눠줄 수 없다던 남편의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특히 우리가 제출한 결혼기념일 편지가 판결문에 기재됐다. 의뢰인의 기여도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준 증거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을 결혼기념일 편지 한 장으로 승소했다고만 말하면, 그 앞의 장시간 회의를 통한 작업은 빠진다. 편지를 찾은 의뢰인은 제 몫을 다했다. 그 편지의 어떤 대목을 재산분할의 근거로 삼고, 다른 자료와 어떻게 연결해 재판부에 설명할지는 편지를 받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좋은 증거가 있다는 것과 그 증거를 제대로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남편은 아내의 기여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남편이 남긴 편지로 아내의 25년을 설명했고 그 설명은 판결문에 남았다.
법률 포인트
특유재산 재산분할의 기준은 유지·증식에 대한 기여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만 다른 배우자가 그 재산의 유지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가치의 감소를 막았거나 가치의 증식에 협력한 경우에는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실무 포인트
전업주부의 재산분할 기여도, 어떤 증거를 준비해야 할까?
의뢰인은 남편과 자녀들의 과거 대화·편지를 검토했다. 남편이 가사와 양육에 대한 아내의 역할을 인정한 결혼기념일 편지, 가족에게 요리해준 사진, 남편이 바쁠 때 아이들과 외출한 사진을 모아 제출했다. 단순히 자료를 많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가 의뢰인의 역할과 재산 유지에 대한 기여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최가경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변호사(가사/상속팀).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자산가 이혼, 상속 사건 및 유명 연예인 사건 다수 수행. 서적 <가정법원 너머의 이혼상속 상담일지> 공저.
<최가경 변호사 | 법무법인(유) 로고스 가사·상속팀 파트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