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초 요셉의원 원장은 지난달 2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곳을 찾는 환자 중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같은 인지기능상 문제를 겪는 비율이 30% 이상 된다”며 “고 가 치료제를 쓰기 어려운 그들을 위해 저렴한 치매치료제 공급이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요셉의원 제공노숙인·외국인 난민 발길 늘어
치매·경도인지장애 환자가 30%
가격 문제로 치료제 선택 폭 좁아
병원 오기도 어려운 환자 찾아
거리로 직접 나서 ‘방문진료’도
“추석 연휴 다음이라 환자가 끊임없이 오네요.” 지난달 28일 고영초 요셉의원 원장이 진료 마감시간까지 줄을 잇는 환자들을 맞으며 말했다. 의료비를 내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무료 진료를 시행하는 이곳은 연휴가 지나면 그동안 탈이 났다가 병원 문이 다시 열리길 기다렸던 환자들로 북적인다.
앞서 자리 잡고 있던 서울 영등포역 쪽방촌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지난해 7월 현재 위치인 서울역 옆으로 옮긴 뒤 환자들의 수와 구성에도 다소 변화가 생겼다.
고 원장은 “노숙인들이 여기 많다 보니 그분들 숫자가 점점 늘고 있고, 또 여기 교통이 좀 더 편리해서 멀리서도 많이 온다”며 “최근에는 외국인 난민들이 많이 오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나라에서 온 환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1987년 요셉의원을 세운 고 선우경식 원장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진료를 시작한 이래 10년 만에 영등포 쪽방촌으로, 다시 28년 만에 현재 위치까지 자리를 옮겨오는 동안 이곳 의료진은 한결같이 가장 가난한 환자들만 받아왔다. 선우 원장이 2008년 선종한 뒤 의무원장을 이어받은 신완식 전 원장은 재직하던 의대 교수 자리에서 물러나 15년간 환자들을 돌봤다. 고 원장은 “나는 교수직 정년까지 다 한 뒤 추가로 5년을 더 하고 여기로 왔지만 신 원장은 정년퇴임도 하기 훨씬 전에 교수직을 내려놓고 왔으니까 나보다 훨씬 훌륭한 거지”라며 웃었다.
자신은 앞선 원장들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고 원장이지만 그의 의료봉사 경력은 50년이 넘는다. 그는 광주대단지(현 경기 성남시)로 이주한 청계천 철거민들을 비롯해 1973년부터 어려운 처지에 병마까지 겹친 환자들을 진료해왔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그가 현재 주로 진료하는 환자들 중에선 노화와 지속적인 음주 습관 등으로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이들의 비율이 30% 정도로 가장 많다.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며 수술을 주로 했던 당시와는 달리 지금 요셉의원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질환도, 그 배경도 매우 다양하다.
“여기 오는 환자들 중에,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말귀를 잘 못 알아들으니 엑스레이 찍으러 4층에 보냈는데 1층에 내려가서 기다리던 환자도 있고… 청력·시력 장애까지 같이 있어서 귀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줘야 하는 경우도 있죠. 술을 좀 먹지 말라고 해도 아예 들을 의지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고.” 인지기능이 떨어지는데도 의사의 권고는 잘 듣지 않는 환자를 보면 답답할 만도 하건만 고 원장은 그런 일은 이미 다반사라는 듯 오히려 “그럴수록 더 자세히 설명해줘야 한다”고 답한다.
다만 진료는 물론 치료에 필요한 약 비용까지 모두 후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지기능 관련 문제에 폭넓게 처방할 만한 치료제가 부족한 것은 안타깝다. 게다가 고 원장이 타계한 자신의 노모에게도 생전 30년 가까이 처방했을 정도로 효능에 문제가 없다고 본 치료제가 임상재평가를 앞두고 있는데, 이 약을 환자들에게 못 쓰게 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 효과를 입증한 최신 치료제도 있지만 아직 가격이 매우 높아 요셉의원을 찾는 환자는 물론 경제적 사정이 보다 나은 이들이라도 복용을 결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고 원장은 “효과가 인증된 약들이 몇천원, 몇만원 수준이 아니고 몇천만원 수준이니까 그런 걸 일반인들이 어떻게 쓰겠나”라면서 “가격이 낮은 약을 통해서도 생활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자가 있는데, 재평가 기준 때문에 도움을 못 받게 되면 전체적인 삶의 질이 떨어지는 환자가 많이 생길 것이므로 당연히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진료하는 의료현장에서는 치료제 선택의 폭이 더 좁다. 한국 사회 전반의 고령화로 인지기능에 문제가 생긴 환자들은 더 자주 만나지만 이들에게 큰 병원에서 정밀 영상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할 수는 없으니 부작용 위험이 낮고 신뢰성이 입증된 기존 치료제를 처방해주며 잘 챙겨 먹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고 원장은 “실제로 건망증과 경도인지장애, 치매를 구별하기 어려운 데다 그 경계에 걸쳐 있는 사람도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아예 병원을 찾기조차 어려운 환자들을 먼저 찾아내는 것이다. 고 원장이 요셉의원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일이 바로 방문진료 사업이다. 다른 보통의 환자들에게는 건강관리에 필요한 조언이라도, 가장 기초적인 생활도 영위하기 힘든 노숙인과 취약계층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으니 먼저 찾아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든 먹을 수만 있으면 양껏 먹는 사람들한테 ‘한꺼번에 너무 과식하지 말고 단백질도 좀 좋은 음식을 먹어라’ 이런 얘기를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자꾸 찾아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방문진료를 하죠. 여기 올 수 없는 환자들이 오히려 더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