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개 드는 'R의 공포'
"진짜 문제는 성장 둔화 우려로 장기금리 하락할 때"
2022년 장단기 금리 역전…S&P500, 9개월간 24% 급락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6.8.5/뉴스1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5%를 넘어서면서 주식투자자가 긴장하고 있지만, 증권가에선 오히려 장기 금리의 하락이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왔다. 성장 전망이 꺾이면서 금리가 하락하면 자칫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물가 압력으로 단기금리는 오르는데 경기 둔화로 장기금리가 떨어지는 상황이 나타날 경우 채권시장이 다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를 가격에 반영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진행한 국채 10년물 입찰의 낙찰금리는 연 5.300%였다. 2000년 11월 이후 최고 낙찰 금리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 역시 지난달 23일 종가 기준으로 연 5% 선을 넘어선 뒤 상승세를 이어가 최근에는 연 5.3% 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김준영 iM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리 상승의 배경이 성장 기대에 따른 실질 금리 상승이라고 분석했다. 주가지수가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지난 6일 7818.93으로 마감돼 종가 기준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장중 기준으로도 7844.52로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주가지수는 대표적인 경제의 선행지표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장기금리가 상승을 멈추고 하락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게 김 연구원의 판단이다. 그는 “금리 상승은 호황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성장의 자리에는 금리 상승이 따라갈 뿐”이라며 “성장이 꺾여 내려오는 금리는 호재가 아닌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둔화가 금리를 끌어내리기 시작하면 부진한 경제지표가 더 이상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완화 기대가 아니라 기업 실적 하향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석은 장단기 금리를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장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보통 단기금리를 향후 통화정책 전망, 장기금리를 중장기 성장 전망을 읽는 지표로 활용해왔다. 물가 때문에 Fed의 긴축 전망이 강해져 단기금리가 오르는 동시에 경기 둔화 우려로 장기금리가 떨어지면 장단기 금리차가 빠르게 축소된다.
실제 최근 물가 지표가 심상찮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 가격지수는 77.9로 시장 예상치 72.9를 크게 웃돌았고 서비스업 가격지수도 전월 72.6에서 74.0으로 상승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추세적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시장은 Fed의 긴축을 반영하기 시작한다”며 “이때는 단기국채 금리가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지난달 한 달 동안 12.34% 상승했다. 상승폭이 10년물(11.24%)보다 크다.
여기에 경기 둔화 가능성까지 나타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이 연구원은 “(단기금리 상승과) 동시에 AI 투자 둔화나 경기둔화 우려가 커진다면 장기 성장 기대는 약해진다”며 “그렇게 되면 장기금리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오히려 하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기금리 상승과 장기금리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는 순간이 중요한 위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통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낮다. 돈을 빌려주는 기간이 길어지는 데 따른 위험에 대한 비용을 더 청구하기 때문이다. 예금자들에게 단기로 빌린 돈을 기업들에게 장기로 대출해주는 과정에서의 금리차이(예대마진)는 은행업의 대표적인 수익모델이다.
문제는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질 때다. 수익모델이 망가진 은행이 보수적으로 변하게 되면 돈이 원활하게 돌지 않게 되고, 이는 경제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 등을 통해 강력한 성장동력이 새롭게 나타나야 한다.
2022년을 떠올리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만든 호황의 막바지인 상황에서, 호황을 만든 완화적 통화정책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뒤늦게 치솟은 때다. 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 Fed는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렸지만, 성장 기대가 이에 따르지 못하면서 주식시장이 크게 휘청였다. S&P500지수는 2022년 1~3분기에 24.77% 급락했다. 이후 2022년 11월30일 챗GPT의 공개를 계기로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 기대감이 되살아나며 주식시장이 반등할 수 있었다.
다만 아직까지 장단기금리 역전과 이에 따른 ‘R의 공포’를 우려할 때는 아니라고 이은택 연구원은 분석했다. 그는 “현재는 오히려 반대”라며 “장기금리는 계속 상승하고 있지만 단기금리는 최근 반락했다”고 설명했다.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이달 들어 지난 7일까지 0.11%포인트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