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사주는 손, 변동성이 튀면 먼저 파는 손
미 국채의 9%를 쥔 헤지펀드…7월에 이미 한 번 예고편을 봤다
◆…(사진=GPT5.6 제작)헤지펀드는 '무자비한 공격자'라는 이미지도 있지만 남들이 팔 때 사고, 가격이 어긋난 곳에 돈을 넣어 시장을 매끄럽게 만드는 '유동성 공급자'의 역할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6일(현지시간) 공개한 10월 글로벌금융안정보고서(GFSR)의 분석 챕터 '헤지펀드와 금융안정'도 이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다만 변동성이 튀는 시기에는 헤지펀드가 스트레스를 키우는 쪽으로 돌아선다는 것을 IMF는 숫자로 보여줬다.
13조달러가 40조달러를 움직인다
IMF 블로그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총운용자산은 13조달러로 2013년의 세 배가 됐다. 로이터는 2013년 규모를 약 4조달러로 전했다. 온·오프 밸런스시트 포지션을 모두 합친 총명목익스포저는 약 40조달러다. 들고 있는 돈의 세 배가 넘는 포지션을 굴린다는 뜻이다.
IMF는 이 성장이 주로 레버리지, 그중에서도 파생상품을 통한 '합성 레버리지'로 이뤄졌다고 했다. 미국 악시오스가 IMF 자료로 계산한 바로는 운용자산 가운데 약 7조7000억달러가 차입에서 나왔다. 분석 대상은 1990년 이후 78개국 2만5000여 개 펀드다.
헤지펀드의 국채 익스포저는 최근 3년간 두 배가 됐고, 늘어난 몫의 약 3분의 2가 미 국채였다. 미 국채 시장에서 헤지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약 4%에서 2025년 9%로 올라섰다.
평소엔 사주는 손, 흔들리면 파는 손
IMF는 변동성지수(VIX)가 급등한 국면을 골라 종목별 움직임을 비교했다. 헤지펀드들이 가장 많이 겹쳐 들고 있는 종목은 가장 덜 쏠린 종목보다 변동성이 10%포인트 높았고, 고점에서 저점까지 손실은 4%포인트 깊었다. 같은 종목을 든 펀드들에 동시에 환매가 몰리면 그 차이는 더 벌어졌고, 헤지펀드의 레버리지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헤지펀드는 레포(환매조건부채권)와 프라임브로커 신용, 파생상품으로 돈을 빌린다. 변동성이 커지거나 자금줄이 조이면 증거금 요구가 들어오고, 보유 자산을 팔아서 메운다. 여럿이 같은 종목을 들고 있으면 같은 날 같은 물건을 판다. 유동성 공급자가 하루아침에 유동성 수요자가 되는 셈이다. IMF는 VIX가 오를 때 헤지펀드 비중이 큰 시장일수록 더 많이 떨어졌고, 유동성이 얕은 시장일수록 취약했다고 분석했다.
7월에 이미 예고편을 봤다
올해 7월 인공지능(AI) 인프라 종목에 레버리지로 베팅했던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가 이 경로를 그대로 밟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 보도를 종합하면 이 펀드는 7월 초 운용자산이 450억달러에 이르렀고 레버리지를 최대 400%까지 썼다.
롱 포지션에는 SK하이닉스와 코어위브, 네비우스, 샌디스크, 마이크론이 들어 있었다. AI 인프라주가 급락하자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골드만삭스, JP모건 등 프라임브로커의 증거금 요구가 이어졌다. 운용자산은 한 달 새 약 100억달러로 쪼그라들었고, 상장주식 포트폴리오는 7월 30일 개장 전 시타델에 통째로 넘어갔다. 헤지위크는 할인율이 10% 안팎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달 코스피는 3분의 1가량 빠졌다. 국내 하락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같은 국내 요인이 컸던 만큼 이 펀드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쏠린 포지션과 레버리지, 국경 간 전이라는 IMF의 경로가 한국 반도체 대형주를 거쳐 지나갔다는 점은 분명하다. 당시에는 시타델이라는 매수자가 나타나 위기로 번지지 않았다. IMF가 주목하는 것은 다음에도 그런 매수자가 있느냐다.
1998년과 2020년, 그리고 국채
미 연방준비제도 역사 자료에 따르면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는 1997년 말 자본 1달러당 약 30달러를 빌려 쓰고 있었다. 1998년 8월 한 달에만 자산가치의 44%를 잃었고, 그해 9월 23일 뉴욕연은 중재로 14개 금융사가 36억2500만달러를 넣어 살려냈다. 2020년 3월에는 국채 현물과 선물의 가격 차를 노린 '베이시스 트레이드'가 한꺼번에 풀리면서 국채 시장이 뒤틀렸고, 연준이 직접 시장에 들어와야 했다.
연준이 지난 6월 낸 연구노트를 보면 2025년 9월 기준 헤지펀드의 미 국채 베이시스 포지션은 약 8300억달러로 2020년 초 고점의 두 배다. 민간 보유 국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5%에서 3.5%로 올랐다. 같은 시점 헤지펀드의 레포 차입은 3조달러, 미 국채 총익스포저는 4조달러였고, 상위 50개 펀드가 그 90%를 쥐고 있었다. 2020년보다 크고 더 소수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성급히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헤지펀드가 시장을 매끄럽게 만든다는 평가도 같은 보고서에 있고, 2020년 이후 감독 장치도 늘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국채 중앙청산 의무화는 현물 거래가 올해 12월 31일, 레포 거래가 내년 6월 30일부터 적용된다. 레버리지 국채 포지션이 청산소의 증거금 관리 안으로 들어오는 첫 관문이다.
IMF는 헤지펀드를 "본질적으로 불투명하다"고 했다. 레버리지와 프라임브로커 연결, 국경 간 노출 등 펀드의 세세한 부분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시장 전반의 취약성 평가에서 헤지펀드 레버리지와 국채 시장이 어떤 비중으로 다뤄지는지, 그리고 연말 청산 의무화가 일정대로 시행되는지가 다음 확인점이다. 헤지펀드가 시장을 받치는 손으로 남을지는 평소가 아니라 다음 변동성 국면에서 판가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