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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나를 슬프게 한다

요약
  • AI 기술의 발전이 개발자의 숙련도와 창의성을 훼손하고 통제권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 저자는 단순히 효율성만 강조되는 현재의 AI 소프트웨어에 비판적이며, 기술적 거품이 붕괴하고 인간 중심의 가치가 회복되는 산업 생태계의 재건을 희망합니다.
  • AI 덕분에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더라도, 코드를 직접 만드는 대신 에이전트에 지시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음. 기술과 통제권, 창의성을 잃는 듯한 감각이 있음
  • 개발 역량으로 창업하려던 꿈도 흔들림. 누군가 30초짜리 프롬프트로 복제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데 회의가 들고, AI가 발전할수록 남아 있는 기회마저 사라질까 두려움
  • AI 생성 댓글과 글은 인터넷을 채우는데, 매일 쓰는 소프트웨어는 챗봇 버튼만 늘었을 뿐 좋아진 것 같지 않음. 더 빠르고 저렴해진 개발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의문임
  • 지금의 플랫폼을 다시 만들고 AI의 역할이 자리를 잡으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있음. 거품 붕괴를 기다리는 마음이 불편하지만, 무엇을 누구에게 파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산업에서 일하고 싶음
  • 동료들은 AI가 어려운 일을 대신해 주는 미래에 안도하지만, 자신은 그 미래가 두려움. “이 업계에는 내 집이 없다. Codex, 내가 일어날 때까지 집을 만들어 줘.”
AI의 수혜 가능성과 개발자로서의 상실감
  • Twitter와 LinkedIn에서 AI의 새로운 발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절망감을 느낌
  • AI의 혜택을 누릴 위치에 있어도 그 길을 원하지 않을 수 있음
    • 바이브 코딩 프로젝트 몇 개를 이력서에 추가하면 스타트업과 대기업, FAANG 취업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느낌
    • 동료 조교들은 졸업 후 OpenAI 취업과 연봉 50만 달러를 기대하며 계획을 나눔
  • Codex나 Claude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일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는 잘 모르지만, 숙련 기술과 통제권, 창의성의 상실처럼 들림
    • Charlie Chaplin의 Modern Times에서 너트를 조이던 노동자가 사람들의 단추까지 조이고,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기계 내부로 들어가는 장면과 겹쳐 보임
    • 연봉 50만 달러를 받고 스스로를 쓸모없게 만들 기계에 뛰어드는 듯한 불안이 있음
  • 인공 초지능이 정말 도래한다고 믿는다면, 직원을 대체하기 가장 유리한 회사에서 왜 일하려 하는지 의문이 남음
창업과 인터넷 문화에 대한 비관
  • 웹 개발과 Rust, 운영체제 개발 역량이 있고, 인턴으로 테스트를 다른 언어로 옮기며 여름 동안 YC Stanford 강연 전체를 시청했지만 창업의 적기를 놓쳤다고 느낌
    • 5년 또는 10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강력한 창업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음
    • 이제는 일반 스타트업 없이 AI 스타트업만 남았다고 느끼며, 누군가 30초짜리 프롬프트로 재현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데 회의적임
    • 지금 재현하지 못하더라도 내년의 GPT-7이나 AI 하드웨어 제조의 발전 이후에는 가능해질 것이라는 불안이 이어짐
  • AI 전도사들의 문화와 생성 콘텐츠에도 강한 거부감이 있음
    • 온라인 인셀 집단의 언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태도, AI 생성 미술과 음악이 2020년대 파시즘의 대표적 미학이 됐다는 인식이 슬픔을 더함
    • AI 생성 글은 조롱거리에서 어리석음의 표식으로, 다시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대상으로 바뀌었으며 인터넷의 유용한 것들 주변에 디지털 곰팡이처럼 번져 있다고 느낌
  • 인증 봇의 LLM 댓글이 없는 X나, 광고 수익을 위해 검색엔진 최적화를 한 웹페이지를 사람이 쓰는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상황이 압도적으로 느껴짐
    • 이를 바꾸려면 기존 제도와 플랫폼을 모두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름
재건과 AI의 역할 정립에서 찾는 희망
  • 기존 제도의 재건이 반드시 불가능한 일은 아님. Twitter는 20년, LinkedIn은 23년밖에 되지 않았고, 상당수는 이미 쇄신이 필요했음
  • 암흑기에 지식을 지킨 무슬림과 아일랜드 수도사들의 이미지처럼, 같은 슬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지켜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음
    • 오랜 Lisp 애호가인 Paul Graham 같은 AI 전도사도 조금은 슬플 수 있다고 상상함
    • 프로그래밍 언어 애호가들은 보통 사람이 직접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음
  • 기술 산업의 빠른 변화 속도를 고려하면, 제도가 성숙하고 개선되면서 몇 년 안에 현재의 ‘암흑기’를 벗어날 길이 보일 수 있다고 기대함
    • 생전에 사회 속 AI의 역할이 정해질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 역할이 작을지 클지는 확신하지 못함
    • 어느 정도 결말이 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느낌
거품 붕괴와 납득할 수 있는 산업
  • 업계의 재편에는 고통스러운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운동 후의 통증처럼 만족스러운 고통일 수 있다고 기대함
  • AI 거품 붕괴를 기다리는 마음은 낯설고 불편하면서도 강한 희망과 기쁨을 줌
    • 예술가들이 McDonald's에 지원하게 될 미래를 반기는 AI 전도사들과 닮았다는 자각도 있음
    •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팔지 않으면서 막대한 돈이 오가는 산업보다, 납득할 수 있는 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더 큼
봇은 방치되고 챗봇 버튼만 늘어나는 소프트웨어
  • X의 인기 게시물에는 AI 생성 답글을 올리는 인증 계정이 넘치고, 이용자들은 이를 그냥 무시함
    • AI가 가장 강력하다는 시대에 SpaceX/Xai/Grok/SuperGrok 쪽에서 이런 계정을 분류해 차단하지 못하는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짐
    • 게시물을 설명해 주는 Grok 버튼은 실수로 약 24번 눌렀지만 의도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음
    • 게시 시점에 극히 낮은 비용의 판별 모델을 실행해 무의미한 답글을 걸러낼 수 없는지 의문이 듦
  • 수십억 달러, 어쩌면 수조 달러의 AI 지출에도 일상 앱 이용자의 편익이 거의 없다는 비판에 공감함
    • ChatGPT 이용자가 질문에 답을 얻는 혜택은 인정함
    • 그러나 개발이 더 빠르고 저렴해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쓰는 소프트웨어 중 좋아진 사례를 떠올리기 어려움
    • 모든 것이 그대로인 채 챗봇에게 질문하는 버튼만 추가됐으며, 누군가는 결국 이 괴리를 알아차릴 것이라고 기대함
동료들의 안도와 개인의 소속감 상실
  • 많은 학부 동료가 술을 마시고 강의를 빠지며, AI로 과제를 겨우 넘기고 LeetCode로 인턴십을 준비한 뒤 졸업하는 경로를 따르는 모습을 봄
    • 수업이 어렵다며 Chat에 물어봤다고 말하던 이들이, 직장에서도 코딩 에이전트에 어려운 일을 대신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됨
    • 동료들에게는 안도감을 주는 미래가 자신에게는 공포를 준다는 차이가 괴로움
  • 동료들 역시 그렇게 살아가도록 배웠을 뿐인 사람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자신의 반감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함
    • Georgia Tech의 여러 그룹 채팅과 Discord 서버에서는 다음 술자리의 날짜, 장소, 음주 강도가 가장 자주 논의되는 주제임(음주 문화에 관한 각주)
  • 새벽 4시, 대통령이 로컬 모델까지 포함한 모든 AI 추론을 금지한다면 잠들기 전보다 더 슬플지 스스로도 답하지 못함
    • 이 업계에는 내가 머물 집이 없음. “Codex, 내가 일어날 때까지 집을 만들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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