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EPA=연합뉴스. DB 및 재판매 금지]
(뉴욕=연합뉴스) 임수정 특파원 = 지난주 미국 금융시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 이어졌다.
나스닥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지난 6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은 기술주 강세로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7일에는 세계 금융시장의 자금조달 비용을 좌우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장중 5.36%를 돌파하며 24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시장은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5% 돌파' 시기를 저울질해 왔으나, 금리는 지난달 중순 심리적 저항선을 기어코 뚫은 뒤에도 거침없이 고점을 높이고 있다.
[그래픽] 미국 국채금리 추이(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30일(현지시간) 5.3%를 돌파하며 2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zeroground@yna.co.kr X(트위터) @yonhap_graphics 인스타그램 @yonhapgraphics
월가 출신의 세계적인 금융시장 분석가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최근 이를 "주식·채권시장의 역사적인 괴리"라고 표현했다.
국채금리가 급등(국채 가격 급락)하는 가운데 미국 증시가 오히려 강세인 현상에 주목한 것이다.
높은 금리는 통상 주식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이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의 투자 매력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월가는 급격히 높아진 자본의 비용보다 AI가 만들어낼 미래의 수익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은 일견 합리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의 높은 이익 증가세가 이런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3분기 S&P500 기업들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증가분의 약 3분의 2를 AI 관련 대형 기술기업들이 차지할 것으로 분석됐다. 미 반도체 업종의 순이익 증가율은 136%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증시를 밀어 올린 AI 붐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긴장시킨 국채금리 급등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도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거대 기술기업들의 자금조달 확대를 거론하며 자본 확보 경쟁이 장기 국채금리 상승을 부분적으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AI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빅테크들이 앞다퉈 막대한 규모의 회사채를 찍어내면서 채권 시장의 블랙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의 국채금리 급등에는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AI 투자 확대만으로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AI가 주식시장에는 강력한 상승 동력으로, 채권시장에는 금리 급등 압력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시장이 얼마나 'AI 중심의 성장'에 쏠려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AI 반도체 (PG)[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이 뜨거운 AI 열풍이 시장 곳곳의 취약성을 가리는 착시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지표들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 지수는 지난 9일까지 5주 연속 하락하며 이 기간 5.7% 떨어졌다. 2022년 5월 이후 가장 긴 하락세다. 외부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소기업들이 금리 상승에 고전하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가계 역시 AI가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보다는 당장 청구서로 날아드는 이자 부담을 더 체감하고 있다.
미국의 30년 만기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 8일 기준 연 7.40%로 7주 연속 상승했다.
주택 중간 가격을 기준으로 집값의 20%를 선납하고 나머지를 대출받는 경우 월 원리금 상환액은 연초 대비 300∼400달러(약 40만3천원∼53만7천원)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금리 상승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생애 첫 주택 구매자와 중산층의 내 집 마련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국채금리 상승세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AI에 대한 기대가 언제까지 그 부담을 압도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주식과 채권시장이 동시에 기록을 갈아치우는 이례적인 흐름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만큼,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비용을 치르게 될지도 아직 미지수다.
지금은 그 부담이 일부 기업과 가계에서 두드러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들만의 문제로 남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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