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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잡던 獨 수장, 스파이 되어 철창행… 12년간 최고급 기밀 2000건 매각

요약
  • 독일의 전 연방정보국(BND) 수장 아우구스트 하닝이 12년간 약 2,000건의 최고급 국가 기밀을 매각한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되었습니다.
  • 하닝은 비서실장과 공모해 이란 핵 개발 및 러시아군 관련 기밀을 사설 컨설팅 사업에 활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이번 사건으로 독일의 정보 역량과 동맹국과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獨 법원, 하닝 전 연방정보국장 구속
비서실장 포섭해 12년간 기밀 2000건 장사
이란 核·美 CIA 극비 브리핑도 섞여
‘첩보강국’ 獨 동맹국 신뢰 산산조각

독일 안보 최전선을 책임지던 최고 정보기관 전직 수장이 외국 정보기관에 국가 기밀을 팔아넘긴 혐의로 체포됐다. 동맹국들이 공유한 최고급 기밀마저 허술하게 유출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동안 국제 사회에서 굳건한 명성을 쌓아온 ‘첩보강국’ 독일 신뢰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국가 중추 세력이 도리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내부 적으로 돌변한 참담한 상황이다.

아우구스트 하닝 전 연방정보국(BND) 총재가 2015년 10월 1일 베를린 독일 국회 NSA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우구스트 하닝 전 연방정보국(BND) 총재가 2015년 10월 1일 베를린 독일 국회 NSA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9일(현지시각) 주요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아우구스트 하닝 전직 연방정보국(BND) 국장은 반역과 간첩 혐의로 6일 체포돼 7일 칼스루에 연방방정부 법원에서 사전 구속 처분을 받았다. 하닝은 과거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만프레드 D.와 공모해 12년에 걸쳐 2000여 건에 달하는 최고 등급 기밀문서를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하닝에게 반역적 간첩, 국가기밀 탐지, 반역 미수, 정보기관 간첩 행위 등 4개 혐의를 적용했다.

독일 형법은 반역죄에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게 규정했다. 검찰은 하닝이 수집한 기밀을 바탕으로 외국 정보기관 직원을 위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만프레드 D. 역시 반역 방조 혐의로 함께 구속됐다.

하닝은 벽돌공장 아들로 태어나 연방정보국 최고 수장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장 요원이 아니라 총리실 관료로 경력을 쌓았다. 독일 공영방송 ZDF에 따르면 하닝은 1981년 헬무트 슈미트 총리 시절 총리실에 들어갔다. 이후 1986년 동베를린 주재 서독 상주대표부로 옮겨 보안 담당관을 지냈다. 그는 1990년 헬무트 콜 총리 때 총리실로 돌아와 당시 정보기관 조정관 베른트 슈미트바우어 최측근으로 일하며 정보 분야 ‘실세(Macher)’로 불렸다. 독일 연방내각은 총리실 국장으로 BND 감독 업무를 맡던 하닝을 1998년 11월 BND 국장에 임명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실에서 국정원을 감독하던 고위 관료가 국정원장에 오른 것과 비슷하다.


ZDF는 무당파인 하닝이 차분하고 사무적인 태도 덕분에 영화 속 제임스 본드와 정반대 인물로 불렸다고 전했다. 하닝은 “좋은 요원은 눈에 띄지 않는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7년 동안 연방정보국을 이끌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이후 독일 정보기관 개혁을 전면적으로 주도하며 안보 체계 근간을 구축했다. 독일 일간 타츠는 하닝이 재임 중 공직 사회의 ‘유출 문화’를 비판했고, 미국 NSA 기밀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내부 범죄자’라고 불렀다고 전했다.

하닝은 2005년 내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후 2009년 공직을 떠났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행보는 자신이 비판하던 내부 범죄자 모습에 가까웠다. 공직 은퇴 후 그는 아내 루트와 컨설팅 회사 ‘하닝 컨설트’를 세우고 민간 부문에서 은밀한 자문 활동을 벌였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여러 기업 이사회에도 이름을 올렸다고 전했다. 독일 슈피겔은 하닝이 2019년 라트비아 은행 파산 사태에 관여했다가 연금 상당 부분을 잃었다고 했다.

검찰은 BND를 떠난 지 5년이 지난 2010년 봄 하닝이 연방정보국 내부 핵심 요직에 남아있던 부하 만프레드 D.와 ‘BND의 가치 있는 정보를 돈을 받고 하닝에게 계속 넘기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만프레트 D.는 이후 2022년 6월까지 12년 동안 문서 2000건가량을 넘겼다. 하닝과 공모한 만프레드 D.는 올해 3월 은퇴할 때까지 역대 연방정보국 국장들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며 최고급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했다.

독일 법원 차량이 아우구스트 하닝 전 연방정보국(BND) 사장의 미결 구금에 대한 심리를 앞두고 7일 독일 카를스루에 연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법원 차량이 아우구스트 하닝 전 연방정보국(BND) 사장의 미결 구금에 대한 심리를 앞두고 7일 독일 카를스루에 연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하닝이 넘겨받은 정보를 사설 컨설팅 사업에 활용해 이득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하닝은 넘겨받은 정보로 외국 정보기관 요원에게 줄 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빠져나간 문서 다수는 BND 내부용 기밀, 특히 총리실 정보 상황 회의에만 들어가는 극비 자료였다. 한국으로 치면 국가정보원이 대통령실에 올리는 정보 보고서 원본이 전직 원장 집에 유출돼 쌓여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발견된 문서 일부가 이란 핵 개발과 러시아군을 다루는 민감한 내용이었고, 동맹국 정보기관이 기밀로 분류한 자료도 상당수였다고 전했다.

독일 연방정보국은 2014년 미국 중앙정보국에 200여 건 문서를 넘긴 마르쿠스 R. 사건과 2022년 러시아에 기밀을 넘긴 카르스텐 L. 사건 등 끊임없는 간첩 스캔들로 몸살을 앓아왔다. 최근 독일 정부는 적대 세력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정보국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었다. 그러나 조직 수장이었던 인물이 범죄에 연루되면서 조직은 치명상을 입었다.

독일 공영방송 ARD 소속 플로리안 플라데 기자는 “연방정보국 겉모습과 이미지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연방정보국 내부에서 피해 규모를 평가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가 다른 국가로 넘어갔는지 알고 싶어 하는 파트너 국가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정보기관 고위직 출신이 퇴직 후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단체 로비컨트롤 소속 티모 랑게는 “정보기관이나 군 고위 관료가 공직을 떠난 후 해외 여러 고객, 심지어 신원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위해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이는 불법적인 외세 개입을 허용하는 명백한 통로이며 독일과 유럽연합 안보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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