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일시적 세수 증가로 장기 재정 확대는 위험"…확장 재정에 신중론
환율 급등 때마다 금리·외환보유액 동원 반대…"변동환율이 충격 흡수해야"
◆…유튜브 슈카월드와 인터뷰 중인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사진=슈카월드 방송 캡처)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에 경고음을 울렸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미·중 관계 변화에 따라 경쟁 구도가 급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확장 재정에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원·달러 환율을 인위적으로 방어하기보다 변동환율제의 충격 흡수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는 소신도 밝혔다.
이 전 총재는 10일 유튜브 채널 '슈카월드'에 출연해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장기간 이어지더라도 반도체 산업으로 자본과 수익이 쏠리면서 경제 전반의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부 수출 대기업의 실적 개선이 경제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현재 호황을 국내 기업의 기술 경쟁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짚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반도체 장비 조달이 제한되면서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향후 미·중 관계가 개선되거나 중국이 핵심 반도체 장비를 자체 개발하면 산업의 경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도체 기업들의 70%를 웃도는 높은 영업이익률이 계속될 것이라는 낙관론에 기대 국가 정책을 설계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도체 호황이 꺾일 가능성까지 고려해 경제 전반의 취약성을 점검하고,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반도체 호황 등으로 세수가 일시적으로 늘었다고 해서 장기간 지속될 투자사업의 예산을 10% 이상 확대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경기와 산업 여건에 따라 세수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일시적인 세입 증가를 지속적인 재정 여력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을 추가 투입해 성장률을 더 끌어올릴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그는 성장률을 단기적으로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보다 경기 변동에 따라 성장률이 급등락하지 않도록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반도체 호황기에 재정지출을 과도하게 늘리기보다 향후 경기 둔화와 세수 감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튜브 슈카월드와 인터뷰 중인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사진=슈카월드 방송 캡처)한국은행 총재 재임 당시 통화정책을 둘러싼 비판에도 반박했다. 이 전 총재는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않아 집값과 환율을 자극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취임 직후 8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2.0%포인트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임기 후반에는 물가상승률이 2%대로 안정된 반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돌았기 때문에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이론적 근거가 부족했다고 강조했다.
통화정책은 물가뿐 아니라 경기와 금융안정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만큼, 집값이나 환율의 움직임만으로 당시 금리 결정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급변동에 대해서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주가 상승과 외국인 투자자의 포트폴리오 조정을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이 전 총재는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보유 비중 한도를 넘어섰고, 이에 따라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환율이 단기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에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한국 경제의 기초 여건이 반영되면서 환율이 하락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이 과거 외환위기 당시와 달리 순채권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 충격에 따른 환율 변동을 무조건 위기로 받아들이기보다 변동환율제가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환율이 상승할 때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거나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인위적으로 방어하는 방식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과도한 시장 개입이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의 차익 실현을 돕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전 총재는 환율을 주가와 같은 금융자산 가격의 하나로 보고 시장의 조정 기능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율 수준 자체를 방어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경제의 기초 여건과 대외 건전성을 바탕으로 시장 변동을 감내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이 전 총재의 발언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성장률 상승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체질 개선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읽힌다. 반도체 산업의 초과이익이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미·중 관계 변화와 산업 양극화에 대비하고, 일시적인 세수 증가를 근거로 재정지출을 급격히 확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환율 정책에서도 단기적인 원화 가치 변동을 억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변동환율제의 충격 흡수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은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에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를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하려면 낙관론에 기대기보다 구조적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