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자체 태양광 발전해 프로펠러 돌려
낮 짧은 고위도 비행 곤란…잦은 착륙 불가피
지상서 무선으로 전기 쏘는 기술 개발 계획
지구 어디서든 공중 감시탑·기지국 역할 가능
‘페이사-35’ 무인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해 공중을 비행하고 있다. 지상에서 전기를 무선 전송 받을 수 있는 새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BAE 시스템스 제공
영국 방위산업체 BAE 시스템스가 개발한 무인기 ‘페이사-35’가 성층권을 비행하는 상상도. 동력 생성용 전기를 지상에서 무선으로 전송받는 기술이 들어갈 예정이다. BAE 시스템스 제공여명을 뚫고 무인기 한 대가 활주로를 빠르게 달린다. 이내 기수를 들어 하늘을 향해 사뿐히 이륙한다. 프로펠러를 돌려 조금씩 속도와 고도를 높인 무인기 이름은 ‘페이사-35’다.
페이사-35는 모양이 이상하다. 날개 길이가 35m인데, 동체 길이는 10m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여객기는 날개와 동체 비율이 1:1인데, 페이사-35는 날개가 너무 길다.
긴 날개 위에는 태양 전지판이 잔뜩 깔렸다. 페이사-35는 여기서 전기를 자체 생산해 프로펠러를 돌린다. 필요한 모든 동력을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반영구적으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신개념 무인기는 극지방에 가까운 고위도에서는 맥을 못 춘다. 전기를 생성할 환경, 즉 낮이 짧아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최근 페이사-35 제작사인 BAE 시스템스가 내놨다. 공상과학(SF) 영화에 등장할 만한 방법이다. 대체 무엇일까.
‘페이사-35’ 무인기가 활주로에서 대기하고 있다. BAE 시스템스 제공일조량 적은 고위도서 장기 비행 곤란
새 기술 체계를 이해하려면 우선 페이사-35의 면면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페이사-35는 2020년 첫 비행한 신생 기종이다. 기체 중량은 150㎏이며, 전기 모터를 이용해 시속 90㎞로 날 수 있다. 프로펠러는 양 날개에 하나씩, 총 2개가 달렸다.
글라이더를 연상케 하는 길쭉한 날개(35m)는 공기가 희박한 높은 하늘에서 동체를 띄우는 힘을 극대화한다. 페이사-35가 목표로 하는 비행 고도는 20㎞인데, 2023년 달성했다. 국제선 여객기 비행 고도(약 10㎞)의 두 배다.
그런데 기다란 날개에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페이사-35가 쓸 전기를 만드는 자체 태양광 발전소다. 날개가 길다 보니 자연스럽게 태양 전지판을 깔 면적이 넓어졌다.
일반적인 무인기는 화석연료나 배터리에서 프로펠러를 돌릴 동력을 얻는다. 연료 재보급이나 충전을 위해 반드시 착륙해야 한다는 뜻이다. 짧으면 수시간, 길어도 수일 이상은 연속 비행하기 어렵다.
페이사-35는 다르다. 낮에는 날개의 태양 전지판으로 만든 전기로 페이사-35 프로펠러를 돌린다. 밤에는 낮에 만든 전기 일부를 저장한 동체 내 배터리로 같은 일을 한다. 낮이든 밤이든 동력을 생성하기 위한 외부 도움은 필요 없다.
여기까지 보면, 부품 고장이라는 변수를 제외할 경우 페이사-35는 원하는 기간 만큼 공중을 마음대로 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을 포함한 북유럽 등 고위도 지역에서는 겨울철에 태양광 발전을 충분히 할 수 없다. 낮이 짧다는 얘기다. 아침 8시 넘어서 해가 뜬 뒤 오후 2~3시면 어둑해진다.
햇빛이 귀한 이런 환경에서는 페이사-35가 낮에 비행하는 일조차 빠듯하다. 밤에 나는 일은 당연히 더 어렵다. 낮에 동체 내 배터리에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꽉 채워 놓아야 하지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기를 공급받기 위해 착륙을 자주 해야 한다. 페이사-35의 본래 개발 취지가 망가진다.
물총처럼 전기 쏘는 기술 개발 계획
이 문제에 대한 BAE 시스템스의 기술적 해법은 독특하다. 영국 첨단연구발명청(ARIA)과 1570만파운드(약 280억원) 규모의 계약을 지난달 맺었는데, 핵심은 ‘무선 충전’이다. 전기를 전파로 바꿔서 페이사-35를 향해 물총처럼 쏴 주려는 것이다. 전파의 종류는 ‘마이크로파’다. 전자레인지에서 음식을 데울 때 사용된다. 위성 통신이나 레이더 탐지에도 쓰인다.
전파 전달은 지상에 설치된 발사 장치를 이용한다. 페이사-35 날개에 부착된 수신기를 겨냥해 쏘는 방식이다. BAE 시스템스는 “연중무휴로 비행할 수 있는 시연기를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BAE 시스템스는 이번 발표에서 무선 전력 전송 기술의 자세한 작동 구조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력을 전파로 바꿔 쏜다는 개념은 최근 과학계에서 추진 중인 ‘우주 태양광 발전’ 기술을 떠올리게 한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지구 궤도를 도는 대형 인공위성에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대량 생산한 뒤 이를 전파로 바꿔 무선으로 지상에 공급하는 개념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페이사-35는 이 기술에 담긴 전력 전송 개념을 지구 대기권 내에서 구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력 전송의 방향은 반대다. 우주 태양광 발전은 공중에서 지상으로, 페이사-35에 적용될 기술은 지상에서 공중으로 전파를 쏜다. 이 기술이 실현되려면 고도 20㎞에서 이동하는 페이사-35에 전파를 오차 없이 쏘는 솜씨가 필요하다. 정밀 조준 장비의 개발 등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BAE 시스템스의 신기술이 구현돼 고위도 하늘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게 되면 페이사-35는 지구 어디에서든 ‘공중 감시탑’으로 쓸 수 있다. 일반적인 비행기는 접근도 하지 못하는 고도 20㎞에서 착륙 없이 원하는 곳을 상시적으로 내려다보는 능력은 안보 목적의 정찰·감시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재난이 발생한 세계 어디에서든 공중 이동통신 기지국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폭풍이나 지진 등이 발생해 지상 통신 기반시설이 파괴된 지역 상공에 띄우면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복구 작업을 기다리지 않아도 긴급 통신 연결이 가능하다.
BAE 시스템스는 “이번 프로젝트 기간은 3년 6개월”이라며 “새 기술이 적용되면 페이사-35 동체에 지금보다 작고 가벼운 배터리를 장착해도 되는 만큼 현재 15㎏인 탑재 가능 중량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