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재판소 기관 자체에 제재…유엔 등 국제사회 반발
나비 필라이가 2022년 10월 27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2022.10.27 ⓒ 로이터=뉴스1(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나비 필라이(85)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이 미국의 ICC 제재를 "전례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10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필라이는 이날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센터에서 열린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를 비롯한 국제 법정의 존속을 둘러싼 긴장과 불안이 매우 크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국가가 재판관들이 내린 사법적 명령을 이유로 그들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는 점"이라며 "이는 전례 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전날(9일) 필라이를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평화와 국제법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선정 이유로 밝혔다.
또한 필라이에 대해 "탁월한 용기와 청렴함으로 더 포괄적인 세계 법질서를 향한 길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집단학살에 책임을 묻는 국제 사법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필라이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데즈먼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 등에 이은 남아공의 5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다.
유엔인권최고대표를 지내며 르완다·미얀마·가자지구 인권 침해 의혹 검토 작업에 참여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반(反)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 변호로 경력을 시작했다.
발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치스럽고 당혹스러운" 일이자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는 친(親)트럼프 성향 인사가 필라이와 노벨위원회를 비난한 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8개의 전쟁을 해결했다고 주장하며 노벨 평화상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몇 시간 뒤 트럼프 행정부는 ICC의 미국 내 재산을 동결하고 운영과 IT, 연금 관련 거래를 제한하는 제재를 발표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ICC가 미국인들을 기소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불량 재판소와의 거래를 금지하고, 자원을 차단하며, 운영 능력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ICC 재판관과 관계자 17명을 제재한 바 있으나, 이번에는 재판소 자체를 기관으로서 제재했다.
다만 일부 제재에는 6개월의 유예 기간을 둬 회원국들이 운영 분담금을 계속 납부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측은 각국에 미국의 우려를 "해소할 해법"을 협상할 시간을 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ICC가 미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소가 이후 종결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행위에 대한 과거 수사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당국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이 반발의 배경이다.
다만 이번 제재에는 제재 해제 조건으로 해당 영장 철회가 명시되지 않았다.
ICC는 이번 조치가 법치와 국제 법질서의 근간에 대한 공격이라고 반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ICC가 핵심 기둥을 이루는 국제 형사사법 정의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라고 밝혔다.
영국과 캐나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역시 "유감을 표하며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