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7일(현지시간) 김일응 주에스토니아 한국대사(오른쪽)와 이삼식 코트라 헬싱키 무역관장이 탈린에서 열린 제1회 한·에스토니아 방산 포럼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photo 에스토니아 공동취재단"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건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초소형 유도미사일 '마크 원(Mark I)'의 실물 모형입니다."
저가 정밀유도 대드론 미사일 전문기업 프랑켄버그 테크놀러지스(Frankenburg Technologies)의 쿠스티 살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사람 팔뚝보다 조금 큰 크기의 검은색 원통형 미사일 모형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길이 66㎝, 지름 6㎝, 무게 약 2㎏의 초소형 미사일은 기자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는 크기였다.
가격은 1발당 1만~5만유로(약 1537만~7685만원) 수준. 기존 서방 방공 미사일이 수십만~수백만 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30~50배 저렴하다. 대량 양산 체제가 갖춰지면 이란산 자폭드론 샤헤드(대당 약 5만달러) 한 대보다도 싸질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살름 CEO가 말하는 이 무기의 존재 이유는 단순한 계산이었다. "1달러짜리 드론을 막기 위해 수백~수천 배 비싼 요격 자산을 써야 한다면, 그 전쟁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에게 '너희가 100유로짜리 드론을 날려봤자, 우리는 더 싼 비용으로 다 떨어뜨릴 것'이라는 확신을 미리 심어주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양산 속도도 파격적이다. "기존 스팅어 미사일의 1년치 생산량을, 우리는 단 3일 만에 찍어낼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실사격 시험을 진행해왔고, 올여름 첫 출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K9 자주포, K2 전차 수출 등은 'K방산 신화의 상징'으로 치켜세워졌다. 분명 괄목할 성과였지만, 정작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유럽 방산 생태계의 무게중심은 이미 장갑차에서 드론·대드론·사이버전으로 넘어가 있었다. 지난 9월 14일부터 24일까지 주간조선이 '에스토니아 디펜스 위크 2026(Estonian Defence Week 2026)'을 취재하며 거듭 마주친 키워드는 크게 '대드론'과 '협력'이었다.
최근 에스토니아는 한화의 신형 보병전투장갑차(IFV) 도입 계획을 전격 접었다. 레네 에하살루 에스토니아 방위산업협회 클러스터 매니저는 "최근 1~2년 사이 안보 정세와 전장 양상이 너무나 급격히 변했다. 과거에 입안된 장갑차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묶어두기보다, 대드론과 방공 자산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 생존에 훨씬 타당하다는 게 군의 판단"이라며 "한화의 투자안은 IFV 사업 수주와 직접 연계된 패키지였던 만큼, 신규 조달이 중단되면서 투자도 함께 멈췄다"고 밝혔다. 그 여파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추진하던 1억유로(약 1585억원) 직접투자를 포함한 총 2억6000만유로(약 4119억원) 규모의 방산 협력 패키지도 추진 동력을 잃었다. 에하살루 매니저는 "정치적 이유나 단순한 예산 부족이 아니라, 철저히 전장 환경 변화에 따른 순수한 군사적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방산이 시시각각 기술을 바꿔나가는 사이, 한국이 트렌드를 읽지 못한다면 K방산 신화는 반짝 효과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이 꼽은 K방산의 장벽은 크게 세 가지다.
프랑켄버그 테크놀러지스의 쿠스티 살름 CEO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생산되는 초소형 유도미사일 ‘마크 원’의 실물 모형을 들고 있다. photo 에스토니아 공동취재단❶ 느린 속도, 낮은 현지 방문율
우크라이나 아조우여단 슈니첼 하사가 지난 9월 22일(현지시간) 디펜스위크에서 말한 전장의 기술 주기는 '3개월'이다. 슈니첼 하사는 "서류가 끝나고 부품이 도착할 즈음엔 이미 기술이 구식이 돼 있고, 군인이 실전 경험을 마치고 나오면 또 다른 문법이 등장한다"고 강조했다. 몇 년 단위의 전통적 방위사업 계획으로는, 몇 달마다 바뀌는 전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비나토국인 한국의 대응은 한발 뒤처진 상태다. 이삼식 코트라 헬싱키무역관 관장은 "북유럽·발트 시장은 지리적 거리감 탓에 국내 기업의 방문 빈도가 서유럽 대비 낮다"고 꼬집었다. "작더라도 현지 전시회에 직접 참가하거나 사절단으로 방문해 현지 파트너와 스킨십을 쌓아야 실제 판로가 열린다"는 것이다.
❷ 국내 규제와 외교 원칙이라는 이중 족쇄
오래된 외교 원칙도 발목을 잡는다. 한국은 분쟁국에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해왔다. 대외무역법에 근거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는 '해당 물품이 평화적 목적에 사용되는 경우에 한해 허가한다'고 규정하는데, 분쟁 중인 국가로 수출하면 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다만 이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단일 법 조항은 없어, 정부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원칙'에 가깝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무기 기술 공유와 협력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한국의 이 같은 조항을 장벽으로 보고 있었다.
현지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거리가 먼 한국과의 거래에서도 동맹국 수준의 안정적 공급망을 보여줄 신뢰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❸ 집안싸움과 거버넌스 공백
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는 "K방산 수출은 나라마다 계약 구조가 달라질 때마다 협상력도 가격도 함께 흔들린다"며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일례로 천궁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할 때 레이더는 한화, 나머지는 LIG와 계약을 분리했는데, 다음 수출국인 사우디·이라크는 계약 상대를 하나로 통일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LIG 한 곳만 계약했고, LIG는 레이더를 다시 한화에서 사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두 회사 사이 납품 금액도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한 나라 안에서 기업들 간 경쟁이 너무 과열되고 있다"고도 지적하며 내부 경쟁 대신 서로 영역을 조율해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유럽 방산기업은 대부분 정부가 대주주인데도 다양한 선제적인 글로벌 경영을 시도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 정부는 수출 시장만 뚫어줄 뿐, 업체 간의 계약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일응 주에스토니아 한국대사 또한 "대기업 하나만 잘나간다고 시장 전체를 끌고 갈 수는 없다. 대기업과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 하나의 '패키지'로 함께 들어와야 지속 가능하다"고 짚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디플로마-AI시대의 디지털 안보' 과정에 참가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