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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수미 테리 배후는 국정원 최고위층” 美검찰, 韓요원 신상도 깠다

요약
  • 미국 연방 검찰은 수미 테리 전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며, 그녀에 대한 자금 지원에 국정원 최고위층이 관여했다고 밝혔습니다.
  • 검찰은 테리가 국정원 자금의 출처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주장하며 이번 사건을 국가안보 문제로 규정했습니다.
  • 법원은 자금 출처 은폐 관련 증거는 인정했으나 재판 중 '간첩' 등 수사적 표현 사용은 제한했습니다.
적법한 등록 없이 한국 정부를 위해 정보 수집 등 활동을 한 혐의로 수미 테리 전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기소한 미국 연방 검찰이 테리에 대한 자금 지원에 “국정원 최고위층”이 관여했다고 지목했다. 최근 한·미 간 정보 협력이 원활하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미 검찰은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이번 사건을 기소했다”고도 밝혔다. 다만 법원은 “간첩 행위”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재판 중 쓰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10일(현지시간) 중앙일보가 입수한 테리 측의 증거 배제 신청에 대한 검찰의 답변서에 따르면 검찰은 테리의 진술과 국정원 직원과의 만남 녹취 등을 근거로 “피고인은 국정원의 자금 지원이 자신의 급여에 직접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했고, 해당 자금이 국정원 최고위층(the highest levels)에서 나온 자금임을 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은 이런 점을 알고선 해당 자금의 출처를 (당시 재직 중이던)우드로윌슨 센터에 숨겼으며, 이는 고의성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청사. 뉴스1 국정원 청사. 뉴스1 앞서 검찰은 지난 2024년 7월 테리를 미국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FARA는 외국 정부 등을 대리해 활동할 경우 법무부 장관에게 반드시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테리는 이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신고를 누락했다는 주장이었다.

사전 심리 과정에서 테리 측은 국정원이 윌슨 센터에 한국 관련 공공정책 프로그램 명목으로 최소 3만7000달러를 지원했다는 증거 등을 재판에서 배제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이에 반박하는 답변서를 사건 심리 중인 뉴욕 남부 연방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5월(1만1000달러)과 2023년 4월(2만6035달러) 등 두 차례에 걸쳐 주미 한국 대사관 명의의 수표로 윌슨 센터 기부금 계좌에 입금된 자금을 실제로는 국정원이 지원한 것이라고 봤다. 또 이는 테리가 관리하는 용도 제한 없는 계좌였고, 테리의 급여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를 “실제 출처를 숨기고 싱크탱크 프로그램을 통해 사실상 돈세탁”을 한 것으로 규정했다.

검찰은 근거로 테리와 당시 주미 한국 대사관 소속 국정원 직원 A가 2023년 3월 한 카페에서 만나 나눈 대화 녹취록을 제시했다. 검찰이 첨부한 녹취록은 16쪽 분량으로, 한글과 영어가 모두 병기됐다.

이에 따르면 A는 “서울에서 저더러 여쭤보라는 게 혹시 뭘 specific하게(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수표만 지급하는 게…윌슨 센터가 감사하거나 할 때나 이럴 때 문제가 없을지 확인하라고 (서울이)물어보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계좌를 많이 안 쓰기 때문에, 갑자기 돈이 많이 나가면, 은행에서 전화가 와요. 그래서 split(나눠서 지급)를 하든지…그건 서울이 알아서 할 거에요”라고 말했다. 검찰은 ‘서울’에 대해 “A의 국정원 지휘체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전에 이뤄진 1만1000달러 지원과 관련해 테리가 A에게 “대사님은 사인 안 하셨어요?”라고 묻자 A는 “아뇨”라고 답했다. 이에 테리가 “그쪽(대사관)에서 이상하게 볼까 봐. (대사관이)이왕이면 모르는 게 낫죠? 그런데 수표는 누가 사인해요?”고 하자 A는 “수표는 그냥 행정직원이 하면 돼요”라고 했다. A가 “외교부에 일단 사인하라고 하면 이게 다 알아버리니까”라고 하자 테리는 “모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검찰은 “A에 대해 ‘하급 정보요원이 제멋대로 행동하며 자금을 제공했다’고 피고인 측이 전제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에 가깝다”고 했다. 검찰은 미국이 한국에 매우 중요한 동맹이라는 점도 들며 “전직 중앙정보국(CIA) 관료인 피고인은 연방수사국(FBI) 수사에서 A가 국정원의 미국 지부장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시인했다”고 설명했다.

2017년 6월 19일 미국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수미 테리.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6월 19일 미국 뉴욕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수미 테리. 로이터=연합뉴스 피고인의 증거 배제 신청에 반박하려는 목적이지만, 미 연방 검찰이 국정원 지도부의 관여를 주장하고 사건을 국가안보 문제로 규정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 정보 당국에 대한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특히 답변서에는 FBI가 2014년 테리에게 이미 국정원의 포섭 가능성을 경고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 수사당국이 오래전부터 국정원의 행태를 주시했다는 뜻일 수 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사실상 테리와 공모했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공소장에서는 익명으로만 표기했던 직원 3명의 실명과 소속, 이들이 썼던 직위 등까지 공개했다. 외교관 직함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화이트 요원’의 신상 정보를 노출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국정원이 미 본토에서 벌인 첩보 활동의 부적절성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법원은 지난 7일 테리 측의 윌슨 센터 기부 증거 배제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의 명령서에 따르면 검찰이 주장한 자금 출처 은폐 노력과 테리에게 직접 돌아갔다는 재정적 이익을 고려할 때 증거로서 살펴볼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검찰의 증거 제시는 기부와 국정원 관리들이 피고인에게 요청한 행위 사이 직접 연결도 보여준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재판에서 A의 발언을 ‘공모자 발언’으로 증거에 넣으려면 그 전에 공모 관계를 먼저 입증해야 한다고 제한을 뒀다. 검찰이 특정한 국정원 직원 3명은 “대한민국 국적자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반대신문도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다. 관계를 숨기려 했다는 정황만으로는 테리와 국정원 관계자들이 법적 등록 의무를 알면서 이를 회피하기로 합의했다고 보기는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검찰이 간첩과 관련한 수사적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해 달라”는 테리 측의 신청도 인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정보원’, 국정원 관리들을 ‘담당 요원(handler)’, 정보요원들의 외교 직함 사용을 ‘외교관 신분 위장’, 인맥 구축 노력을 ‘모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런 표현을 쓰는 건 배심원에게 편견을 유발해 피고인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테리가 FBI 조사에서 유도 없이 스스로 사용한 표현은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테리 측은 자금 외에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고가의 선물과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제공받은 것 역시 증거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테리에게 2845달러짜리 돌체앤가바나 코트, 2950달러짜리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 3450달러짜리 루이비통 핸드백 등을 선물했고, 오마카세 스타일의 고급 일식당 등에서 반복적으로 만나 식사하며 비용을 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국정원 담당자들은 피고인과 최소 18차례에 걸쳐 식사하며 최소 8000달러를 썼다. 공모 기간의 일관된 양상은 국정원이 비용을 부담한 관계, 고급 식당이라는 만남 장소, 거의 매달 대면한 빈도, 자주 단둘이 만난 패턴을 보여준다”고 답변서에서 강조했다.

법원은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피고인이 한국을 이롭게 했다는 혐의의 행위를 한 지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국정원 관리들이 고가의 물품을 사줬으므로, 피고인이 이들의 요청과 지시에 따라 행동했음을 시사해 이를 입증할 가치가 있다”며 “선물의 브랜드·가격과 식당의 명성 등은 증거의 입증 가치를 높인다”고 했다.

테리의 배심원 재판은 오는 27일 뉴욕 남부 연방법원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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