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리다임도 美공장 검토…경쟁사와 생산능력 격차 확대
수십조원 재원 마련 관건…美 IPO 통한 외부자본 조달 주목
/그래픽=비즈워치▷관련기사: [솔리다임 딜레마]上 '미운 오리'가 '200조 백조'로…美상장에 복잡해진 SK하닉(2026년 10월11일)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저장장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솔리다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주문은 밀려드는데 생산능력 확대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중국에 집중된 생산거점을 미국으로 넓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지만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는 투자금 마련이 관건이다.
SK하이닉스도 돈 쓸 곳이 많다.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증산에 이어 용인·청주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까지 대규모 투자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여기에 솔리다임의 미국 증설까지 직접 지원하면 자금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기업공개(IPO)가 단순 기업가치 재평가를 넘어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AI 스토리지 특수 속 뜻밖의 병목
12일 업계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AI 데이터센터용 eSSD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AI 활용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넓어지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저장하고 불러오는 고용량 SSD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공급 부족까지 겹치면서 기업용 SSD 시장의 수급도 한층 빠듯해졌다.
솔리다임의 주력 제품은 쿼드레벨셀(QLC) 낸드를 활용한 고용량 eSSD다. QLC는 하나의 메모리 셀에 4비트의 데이터를 저장해 같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담을 수 있다. 주요 낸드 업체들이 차지트랩플래시(CTF) 방식으로 전환한 것과 달리 솔리다임은 플로팅게이트(FG) 구조를 유지해 왔다. 고단 적층에는 불리하지만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내구성과 신뢰성이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품 경쟁력은 갖췄지만 이를 뒷받침할 생산능력이 문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솔리다임의 올해 상반기 말 낸드 생산능력은 분기당 웨이퍼 24만장으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이다. 하반기에는 생산시설 효율화를 통해 25만5000장으로 소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급증하는 동안 생산능력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반면 경쟁사들은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양쯔메모리의 분기당 낸드 생산능력은 지난해 1분기 39만장에서 올해 2분기 48만장으로 늘었다. 내년 1분기에는 57만9000장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 키옥시아 역시 같은 기간 114만장에서 123만6000장으로 생산능력을 키웠다. 내년 1분기 예상치는 129만장이다.
솔리다임도 중국 다롄의 신규 공장 투자를 재개했지만 추가되는 생산능력은 월 웨이퍼 3만장 안팎으로 알려졌다.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로 첨단 장비 반입과 고단 낸드 공정 전환에도 제약이 있다.
특히 낸드는 적층 수가 높아질수록 수백개 층을 정밀하게 뚫는 식각 기술이 중요해진다. 최신 장비를 제때 도입하지 못하면 공정을 여러 단계로 나눠 진행해야 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제조 원가도 높아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솔리다임은 미국에 신규 낸드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 집중된 생산기반을 분산해 통상·공급망 변화에 대응하고 주요 고객인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지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구체적인 부지·생산규모·투자금액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은 풍년, 투자 부담은 산더미
미국 증설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첨단 낸드 공장 하나를 새로 구축하는 데만 수십조원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이나 중국보다 인건비와 공사비 부담도 커 실제 투자 규모가 더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SK하이닉스가 청주에 구축할 신규 낸드 생산시설 M17에 장기간 약 80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자금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솔리다임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해도 미국 공장 건설비를 자체적으로 모두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기존 생산시설의 공정 전환과 연구개발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솔리다임 관련 낸드 사업의 올해 상반기 말 자본총계는 8조2262억원으로 지난해 말 2조2730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도 452.4%에서 141.4%로 낮아졌다. 재무구조는 개선됐지만 신규 공장 건설에 필요한 투자금은 여전히 막대하다.
SK하이닉스가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있지만 자체 투자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청주 HBM·D램 생산시설, 첨단 패키징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갈 예정이다. 자체 낸드 사업의 증설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HBM은 웨이퍼 투입량이 많고 첨단 패키징 공정까지 필요해 생산능력 확충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기존 자금 지원과 주주환원도 감안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2022~2023년 솔리다임에 운영자금을 대여했다. 올해 AI컴퍼니로 전환된 해당 법인의 대여금 잔액은 지난 3월 말 22억달러에서 6월 말 14억달러로 줄었지만 여전히 상당한 규모다. 여기에 2025~2027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상을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방침까지 고려하면 안정적인 현금흐름 관리가 중요하다.
SK하이닉스로서는 늘어나는 투자 수요에 맞춰 자금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솔리다임 증설에 자체 자금을 투입하면 지분 희석을 피할 수 있지만 HBM과 서버용 D램 등 다른 사업에 쓸 재원은 줄어든다. 반면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직접적인 투자 부담을 낮추고 주력 사업에 자금을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이 자금조달 대안으로 거론된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최대 조달 규모는 약 150억달러(약 20조원)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으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한다면 미국 신규 공장과 연구개발에 필요한 투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 차입이나 현지 정부 지원도 가능하지만 차입에 따른 상환 부담 등을 고려하면 IPO가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외부자본 활용, 두 마리 토끼 잡을까
솔리다임의 모회사인 AI컴퍼니의 역할도 주목된다. SK하이닉스가 최대 100억달러를 출자하기로 한 데 이어 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들도 총 11억1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정했다. AI컴퍼니를 미국 내 AI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구상이다.
AI컴퍼니는 미국 유망 AI 기업 투자와 합작법인 설립 등을 통해 사업 영역을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솔리다임이 IPO로 성장 재원을 직접 확보하면 그룹 차원의 추가 지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AI컴퍼니가 솔리다임 지분 일부를 매각해 다른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안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 SK하이닉스의 간접 보유 지분은 줄어든다.
관건은 상장 방식이다. 신주를 발행하면 공모자금이 솔리다임에 직접 유입돼 공장 증설과 기술개발에 쓰인다. 반면 구주매출은 기존 주주인 AI컴퍼니가 자금을 확보하는 구조다. 두 방식을 병행하면 솔리다임은 성장 재원을 마련하고 AI컴퍼니는 투자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다만 구주매출 비중이 높을수록 솔리다임에 돌아가는 자금은 줄어드는 만큼 공모 규모 못지않게 자금의 귀속과 사용처가 중요하다.
미국 상장은 현지 사업 확대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 공모자금을 생산시설에 투자하면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고 고객사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상장주식을 활용한 주식보상 역시 글로벌 반도체·빅테크 기업들과의 인재 확보 경쟁에서 활용 가능할 수단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은 SK하이닉스의 투자 부담을 덜고 현지 생산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선택지"라며 "HBM과 D램, 첨단 패키징 등 투자할 곳이 많은 상황에서 모든 사업에 자체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반드시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외부 자본을 적절히 활용해 솔리다임의 성장 속도를 높이면서 SK하이닉스의 핵심 사업에도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