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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속도전, AI는 협력전…최태원의 글로벌 승부수

요약
  •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생산시설 확충과 AI 기술 협력을 강조했다.
  • 국내에서는 용인과 더불어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서두르고, 해외에서는 AI 연구개발센터 설립 등 미래 성장 기반을 강화한다.
  • 또한 사회적 가치 경영을 국제적으로 확대하며 새로운 자본주의를 실현할 계획이다.
美·中 메모리 증설 경쟁에 생산능력 확충 강조
광주 400조 투자 속도…용인과 동시 건설도 검토
상하이 AI 연구센터 추진…사회적 가치 경영도 세계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시설 확충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발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미국 마이크론과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추격까지 거세지자 선제적인 투자로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에서는 용인에 이어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서두르고 해외에서는 AI 연구개발(R&D) 협력을 넓히며 미래 성장 기반 확보에 나섰다.

"가만히 있으면 따라잡힌다"

최 회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38회 상하이시 시장 국제기업가 자문회의' 행사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중국이나 미국 마이크론이 더 빠른 속도로 증설해버리면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든다"며 "빨리 확장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거센 추격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D램의 창신메모리(CXMT)와 낸드플래시의 양쯔메모리(YMTC)는 막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빠르게 키우며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최 회장은 "가만히 놔두면 다 추격된다"며 "중국 시장에서 우리는 증설이 어려워 제대로 경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요는 엄청나게 있는데 공장을 못 늘리면 그게 문제"라며 광주를 비롯한 국내 생산거점의 추가 확충 필요성을 역설했다. 일본 등 해외 생산시설 신설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위기감은 국내 투자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상하이 방문에 앞서 지난 9일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광주 군공항 일대의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 부지를 찾았다.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 준비 상황을 살펴보고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력해 사업을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호남권에 400조원 규모의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이후 주요 경영진이 10여 차례 현장을 방문하며 부지 확보와 기반시설 구축 방안을 협의해 왔다.

최 회장은 현장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체 건설 일정을 12년 앞당겼지만 이마저도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는 용인과 전남광주에서 공장을 병행 건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광주 클러스터 규모도 수요에 따라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구상은 용인의 3분의 2 수준이지만 부지와 수요가 뒷받침된다면 더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력·용수 공급시설이 완공되기 전이라도 기초공사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착공을 서두르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기반시설 조성 계획 등을 검토한 뒤 확정할 방침이다.

최 회장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투자 규제 움직임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시설이 미국 반도체 공급망의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중국의 반도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별로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중국 내 생산활동을 제한하더라도 현지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저지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이와 별개로 SK는 중국과의 첨단 기술 협력도 확대한다. 상하이에 인공지능(AI)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해 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바이오의약 등 미래 산업 분야의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SK가 지난 35년간 중국의 반도체·배터리·석유화학 분야에 약 600억달러(약 80조6000억원)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하이가 AI 혁신 거점으로 도약하려면 규제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기술 동맹에서 사회적 가치까지…성장 전략 다변화

최 회장이 10여년간 공들여 온 사회적 가치 경영도 국제무대로 확장되고 있다. SK가 설립한 사회적가치연구원은 12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서울에서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과 공동으로 첫 '생태계 리더십 교류(ELE)' 프로그램을 개최한다. 15개국 19개 기관이 참여해 한국의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과 금융·투자 시스템을 살펴보고 각국에 적용할 방안을 논의한다.

최 회장은 이날 개막 연설에서 "기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이 예산 투입과 홍보에 치중해 정작 사회문제를 얼마나 해결했는지 측정하는 데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밀한 가치 측정에 드는 높은 거래 비용은 최근 AI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성과 측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핵심은 사회공헌을 기업의 선의에만 맡기지 않고 경제적 보상과 연결하는 것이다. 최 회장은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사회문제 해결 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해 보상하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구상을 처음 내놨다. SK는 2015년부터 국내 사회적 기업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운영해 왔다.

최 회장은 이번 연설에서도 "이타심에만 의존해서는 팽창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규모를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회적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 체계를 갖춰야 더 많은 기업과 자본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윤 추구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창출도 보상받는 '새로운 자본주의(New Capitalism)'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이러한 구상은 국제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지난 8일 WEF 슈왑재단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이 공동 발간한 보고서는 SK의 사회성과인센티브를 주요 사례로 소개했다. 보고서는 사회·환경적 성과가 시장과 금융 시스템에서 경제적 가치로 인정받는 구조를 '임팩트 경제(Impact Economy)'로 정의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와 AI 기술 협력, 사회적 가치 경영은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SK의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한 선제적 투자와 함께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확보해 미래 경쟁력을 높이려는 행보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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