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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까지 번진 대형 산불... 소나무를 보자 눈물이 났다

요약
  • 2025년 3월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해 영양 지역의 선산에 있는 소나무들이 불에 그을리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 필자는 성묘를 하며 불탄 나무들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산림조합의 벌목 계획 속에서 소나무를 보존해달라고 마을 이장에게 당부했습니다.
선산에 남은 화마의 흔적... 부디 이 나무들이 잘 버텨주기를【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무야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고 장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 녹아 내린 송진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송진에 불이 붙어 며칠을 태웠을 것이다.
ⓒ 정수권

지난해 추석 성묘 가는 길은 너무나 처참했다. 산 입구에 들어서니 대부분 소나무들이 밑동은 불에 탔고 잎은 발갛게 말라 버렸다. 차로 한참을 달려도 온 산이 붉었다.

골짜기 저수지 위의 사찰은 불이 나 대웅전은 완전히 소실되었고 주변도 불에 탄 잔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나마 인근의 마을 집 두 채는 간신히 불길을 피했다.

끝내 피하지 못한 화마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나는 속으로 간절히 기원하면서 차를 달려 선산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눈앞은 푸른빛이다.

서둘러 묘소에 들어서자 다시 한 번 놀랐다. 산소는 물론, 불이 나고 몇 달이 지났지만 둘레 소나무는 완전히 숯검댕이였다. 둘러보니 작은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었지만 큰 나무들은 그래도 대부분 살아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뜨거웠을까, 또 얼마나 아팠을까. 나무를 안고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울었고, 함께 간 가족들도 모두 애달파 했다.

▲ 불에 탄 나무들 선산의 나무들이 작년의 대형 산불에 그을렸다.
ⓒ 정수권

2025년 3월,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엄청난 산불이 바람을 타고 안동과 청송을 지나 고향인 영양 쪽으로 번져 가자 부산에 있는 나는 하루 빨리 불길이 잡히길 바라며 안타깝게 뉴스 화면을 지켜보았다. 모든 마을의 집들이 안전하길 빌면서 멀리 이 산소의 나무들도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불길이 휩쓸며 지나가고 며칠이 지나 시골의 형님이 산을 다녀왔다. 형님이 전하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아, 끝내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불탄 자리가 매우 불편했다. 해마다 성묘를 하면서 수백년 된 나무 그늘에서 음식을 나누면서 이야기 하곤 했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던 자리였다. "안타깝지만 그나마 이정도이길 다행이네요"라고 하자, 형님은 "불에 그을린 나무는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어봐야 알 수 있지"라고 말했었다.

마을 이장을 만나다

해가 바뀌어 올해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추석 무렵에 성묘를 하였다. 내심 나무들이 잘 살아 있기를 바라면서 아침 일찍 산을 오르니 역시나 그때처럼 산은 황폐했고 나무들은 군데군데 벌목을 하여 민둥산이 되었으며 저수지 위의 불에 탄 절 터는 인적이 없다.

서둘러 도착한 산소의 소나무는 형님 말대로 큰 나무라도 일부는 죽어 있었다. 겨우 살아 남은 나무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근 일여 년 동안 햇볕과 비바람에 씻겨도 검은 상처는 그대로였다. 나무는 그야말로 생명을 유지하며 사투하고 있었다.

▲ "나무야 미안하다, 고맙고 장하다" 나무를 안아 보았다.
ⓒ 정수권

성묘를 마치고 자리 펴서 음복을 하려고 둘러 앉았는데 어떤 사람이 산소로 성큼 성큼 올라 왔다.

"정씨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뉘신지?"
"이 마을 이장입니다. 반갑습니다."

형님과 악수로 인사를 나눈 후 "이리 앉으시고 술 한 잔 받으시죠" 권했다.

이장님은 감사하다며 앉자마자 손으로 키 높이를 쟀다.

"햐, 옛날 어려서 요만했을 적에 이맘때 쯤 시사를 지내면 여기 떡 얻으러 동네 아이들과 함께 많이 왔었지요."
"그랬었지요."
"그때는 떡이 귀했죠. 어찌 그리 맛있던지."
"떡만 그랬나요, 모든 게 맛있었지요."
"어느 여자애는 한 사람 몫을 더 받으려고 몰래 베개를 업고 갔다니까요, 하하."

멀리 떨어져 있는 고조모 산소

그 옛날 좋은 자리에 묘를 쓰기 위해 풍수가 잡아 준 집에서 수십 키로 떨어진 이곳 터에 고조모 산소를 쓰니 가을에 시사를 지내려면 너무 멀어서 하루에 다녀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곳 산소를 위해 위토로 전답을 마련해두고 필요로 한 사람이 전답을 부쳐 농사를 짓고 그 댓가로 산소 관리와 제사의 제물을 준비해 주었다.

이제는 차가 있어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산소를 돌 본 그분이 계속 관리를 해주겠다고 해서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해왔었다.

그 시절, 나도 어렸지만 몇 번 초겨울이면 하루 전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형님을 따라 나서 저녁 무렵에 도착하면 저 아래 마을에서 차려준 푸짐한 저녁상으로 식사를 하고 뜨끈하게 데워진 사랑방서 제물을 들여 놓고 제사 준비를 하고 잠을 잤다. 이튿날 아침 산을 올라 시사를 지내곤 했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다.

제상으로 떡을 넉넉하게 괴어 가도 시제가 끝나면 모여드는 동네 아이들이 많다 보니 그마저도 모자라 따로 여분의 떡을 더 가져가곤 했다.

▲ 추석 성묘 작년의 대형산불 이전의 성묘 모습
ⓒ 정수권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여긴 동네 바로 뒷산이라도 사람들이 정씨 묘라며 함부로 드나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나무들도 그동안 잘 보존되어 왔다.

일찍이 이 마을 사람들은 도시로 모두 떠나고 텅 비었었다. 현 이장은 최근에 고향으로 귀농하여 이장을 맡은 지 이제 2년이 되었다고 한다. 주위의 불탄 나무를 둘러보며 자신도 몹시 안타깝다며, 며칠 후 산림조합에서 회의가 있으니 형님에게 참석을 권했다.

"회의는 불탄 나무 때문인가요?"

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아마 모두 베어 낼 겁니다."
"네에?!"

나는 맞은편 나무를 모두 베어낸 민둥산을 보며 걱정이 되어 이 산소의 큰 나무들만은 꼭 보존되도록 당부를 했다. 그렇게 건의해 보겠다며 이장이 대답했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잘 부탁한다며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그러면서 그날 산불에 대해 묻자 마치 어제의 일처럼 얘기를 했다.

그날의 산불 이야기를 듣다

이 비어있던 마을에는 두 채의 집이 있었는데 입구에서 벌을 키우는 자신은 미리 대피해 다른 곳에 있었고 마을 안쪽에 살던 자신의 질녀는 불길이 집 가까이 오자 황급히 빠져나와 어둡고 비좁은 산길을 차로 돌아 나오다가 연기로 앞이 안 보여 길옆 전신주를 들이 받았다고 한다. 놀라서 차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덮쳐오는 불길을 막으려 얼굴을 감싸다가 손과 팔에 심한 화상을 입어 아직도 치료 중이라고 했다,

저수지 위의 절도 불에 대웅전도 전소되면서 안에 있던 주지스님도 함께 불길에 휩싸여 세상을 떠났고, 아랫마을도 여러 집에 불이 붙어 마치 전쟁터 같았다고도 했다. 얘기를 듣던 우리 모두가 새삼 놀랐다.

▲ 말벌 집 산소의 불에 탄 소나무 속에 말벌이 집을 짓다
ⓒ 정수권

그동안 땔감나무로 잘리는 것도 비껴갔고, 어느 해의 모진 가뭄도, 백약이 무효인 재선충의 병해도 이겨내었다. 언젠가는 목재업자가 수 백만원을 줄테니 모두 팔 것을 권유해도 거절하였다. 마을이 비어 인적이 없자 도벌꾼이 질 좋은 몇 그루를 몰래 잘라 가기는 하였지만 끝내 이번 산불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저기 말벌집이 있네요."

이장이 먼저 가보겠다며 일어서다가 급히 가리키는 곳을 보니 속이 불에 타 텅 빈 시커먼 소나무 속에 말벌집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도착했을 때부터 벌들이 몇 마리 날아 다녔다. 조금 다가가 보니 검붉은 말벌이 벌집을 들락거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뉴스에서 그렇게 성묘 때 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줬는데 막상 눈앞에 말벌이라니 절로 오싹했다.

그것도 불탄 자리에 싸리나무가 어른 키만큼 자라 있어 형님이 벌이 든 나무 바로 밑에서 소리가 요란하게 예초기를 돌렸을 때도 거기 있는 줄을 몰랐고, 벌에 쏘이지도 않았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아내를 비롯해 여자들도 여럿 있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다행이 벌들도 조용했다.

그래서 벌에 쏘이지 않고 무사한 것은 이 산소의 조상님 음덕이라 생각했다.
또 다른 곳의 성묘를 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말벌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걷고 일어났다.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소나무들을 돌아 봤다. '부디 무사히 잘 있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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