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해 8월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를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한 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대통령 오른쪽),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이 대통령 왼쪽) 등 참석자들과 박수치고 있다. /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조선업 부활의 상징으로 내세운 한화그룹의 필라델피아 조선소가 높은 인건비와 생산시설 부족, 신규 고객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50억달러(약 6조7000억원)를 투자해 연간 선박 건조량을 2척에서 20척으로 10배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관세 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내세워 왔다. 그러나 조선소가 기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것부터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일까지 여러 난관에 부딪히면서 대규모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이다. 현재 필라델피아 조선소가 미국 해운사 매트슨으로부터 수주한 컨테이너선 3척의 계약 가격은 척당 3억3000만달러(약 44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건조하는 대형 선박의 약 2배에 이르는 가격이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취약한 조선업 공급망 등이 생산비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외부 발주처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조선소가 확보한 상선 수주잔량 가운데 한화 계열사가 발주한 일감을 제외하면 외부 고객의 주문은 매트슨 컨테이너선 3척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한화가 2024년 말 조선소를 인수하기 전에 체결된 계약이다. 한화는 지난 7월 미 미사일방어청의 미사일 추적함 2척 건조 사업에 선정되는 등 정부 일감을 확보했지만, 인수 이후 미국 정부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외부 민간 고객으로부터 새로 수주한 선박은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의 미국 해운 계열사인 한화쉬핑이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10척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을 발주했지만, 이 역시 그룹 내부에서 확보한 물량이다.
결국 그룹 계열사의 지원을 넘어 외부 고객들로부터 가격 경쟁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해운 컨설팅업체 카라차스 마린 어드바이저스의 바실 카라차스 대표는 WSJ에 “순수한 경제성만을 기준으로 평가할 경우 해외 구매자가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높은 기업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생산시설과 인력 문제도 걸림돌이다. 조선소는 최근 2년 동안 직원 수를 두 배로 늘려 2500명까지 확보했지만, 연간 20척을 건조하려면 추가적인 생산시설과 숙련공이 필요하다. 현재 보유한 드라이독 2개 가운데 신규 선박 건조에 사용하는 시설은 1개로, 연간 건조 능력도 약 1~1.5척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화는 드라이독 2개와 안벽 3개를 추가하고 선박 블록 생산시설도 확충할 계획이지만, 기존 조선소의 제한적인 공간도 극복해야 한다.
수익성 문제는 이미 현실화했다.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한화가 인수하기 전인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인수 이후에도 올해 2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2분기 영업손실은 약 192억원에 달했다.
한화 측이 당초 올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던 흑자 전환 시점도 내년으로 미뤄졌다. 인수 이전 수주한 선박들의 건조 일정이 지연되고 비용이 증가하면서 손실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에 고정가격으로 계약한 선박들은 공사비가 증가하더라도 이를 선박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워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매트슨 컨테이너선 3척 역시 건조 일정이 지연돼 2척은 내년, 나머지 1척은 2028년 2분기에 인도될 예정이다. 기존 선박의 건조가 늦어지면서 후속 선박 생산에도 차질이 발생하는 구조다.
한화의 투자 계획은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이 약속한 1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조선업 투자 구상과도 연결돼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연간 수십 척의 선박을 건조하는 다른 주요 조선업체들은 아직 미국 현지 조선업에 직접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시장의 높은 생산비용과 사업성에 대한 우려가 그 배경으로 풀이된다. 막대한 투자 발표와 실제 생산 확대, 수익성 확보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화의 미국 조선업 재건 구상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