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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PE 20년의 헌사] 1.3조 만든 꾸준함…김학범 컴퍼니케이 대표 "지금은 과잉투자할 때"

요약
  • 김학범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대표는 AI 산업을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유치산업으로 규정하며 공격적인 과잉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그는 '중꺾투' 철학을 바탕으로 1.3조 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하며 성과를 냈으며, 향후 우주 및 세컨더리 시장을 통해 다음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편집자주] <블로터>가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자본시장을 기록해 온 20년은 국내 벤처캐피탈(VC)과 사모펀드(PEF)가 성장해 온 시간과 겹친다. 그사이 하우스들은 펀드레이징과 투자를 놓고 저마다 다른 답을 내놓으며 자본시장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다. 블로터는 주요 하우스가 걸어온 길과 그들이 세운 성과를 투자 철학과 조직, 대표 회수 사례로 추적한다.
8일 서울 강남구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사무실에서 김학범 대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 박재형 기자 8일 서울 강남구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사무실에서 김학범 대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사진 = 박재형 기자
벤처투자 시장에서 불거진 'AI 버블론'을 두고 김학범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대표의 진단은 정반대다. 국민성장펀드 등 정부 주도의 대규모 자금이 첨단산업에 흘러드는 지금이야말로 거품을 경계할 게 아니라 과잉투자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8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어떤 정책이든 부작용은 따르기 마련이지만, 긍정적인 작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속도 조절이 아닌 공격적인 자금 공급을 주문했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기술 주권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그는 현재의 인공지능(AI) 산업을 반드시 육성해야 할 '유치산업'으로 규정했다.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 벤처 투자 단위가 수백 배 이상 벌어진 상황에서 실패를 감수하고 자본을 투입하지 않으면 핵심 기술을 국내에 내재화할 수 없다는 논리다. 김 대표는 "거대언어모델(LLM)이든 보안 설계든 지금 투자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기술 속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근거로 든 선례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다. 출발 당시에는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안고 있었지만 꾸준한 투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양적 성장의 밑바탕 없이는 질적 도약도 불가능하다"며 규모를 먼저 키워야 기술 경쟁력이 뒤따른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그가 이 원칙을 하우스 경영에서 직접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1967년생인 김 대표는 마흔에 컴퍼니케이를 세워 올해로 20년째 이끌고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은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투자', 이른바 '중꺾투'로 요약된다.

김 대표는 "3년, 5년 뒤를 내다보려면 남들보다 한 발 앞선 투자를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며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황이나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투자한 결과 컴퍼니케이는 누적 결성 펀드 1조3000억원 규모의 중견 벤처캐피탈(VC)로 성장했다.

넷게임즈 60억 넣어 780억 회수…상장으로 GP 커밋 기반 마련 김 대표의 투자관은 일신창업투자 시절 기틀이 잡혔다.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물산과 삼양종금을 거친 그는 1999년 일신창투로 옮겨 벤처 생태계에 발을 들였다. VC업계의 FM으로 평가받는 고정석 당시 사장으로부터 배운 철학은 '밸류 크리에이션'이다. 투자할 기업의 가치를 가려내고, 이후에는 창업자 곁에서 몸값을 함께 키우는 '핸즈온(Hands-on)' 방식이다. 김 대표는 이 과정을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로 구현하고자 2006년 독립을 결심했다.

컴퍼니케이는 금보개발과 바른손, 버추얼텍으로부터 25억원씩 출자받아 자본금 75억원으로 출발했다. 설립 초기 김 대표의 개인 지분은 없었다. 그는 "주주들이 자금을 댈 테니 비전을 실현해 보라고 했다"며 "김학범만의 스타일로 펼쳐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2014년 지분 조정을 거쳐 금보개발이 최대주주, 김 대표가 2대 주주에 오르면서 현재의 지배구조가 갖춰졌다.

그가 고수하는 투자 원칙의 핵심은사람을 판단하는 일이다. 기술 우위나 시장 전망은 어느 VC나 비슷하게 짚어내지만, 성패는 창업자의 비전과 책임감에서 갈린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사업이 중간에 뜻대로 안 되는 건 100%"라며 "위기가 닥쳤을 때 비전을 향해 밀고 나가는 책임감이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언급했다.

창업자와 함께 고비를 넘긴 대표 사례가 넷게임즈(현 넥슨게임즈)다. 컴퍼니케이는 2011년 결성한 M&A 펀드로 엔씨소프트 출신 박용현 대표와 함께 PC 온라인 게임 개발사 넷게임즈를 세웠다.

하지만 게임 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며 후속 투자가 막히는 위기가 찾아왔다. 돌파구로 모바일 피보팅(사업 전환)을 단행했고, 이어 출시한 게임 '히트'가 흥행했다. 이후 넥슨에 매각과 상장을 거쳐 하우스가 투자한 60억원은 780억원으로 되돌아왔다. 해당 트랙레코드를 바탕으로 컴퍼니케이는 직방, 리디, 파두, 카버코리아, 에이비엘바이오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힐 수 있었다.

하우스가 커지자 GP 커밋(운용사 출자) 부담도 늘었다. 2019년 코스닥 상장은 이 부담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다. 김 대표는 "펀드는 커지는데 자기자본이 한정돼 증자와 IPO 외엔 답이 없었다"고 전했다. 상장으로 수혈한 자본 덕에 컴퍼니케이는 펀드마다 50억원 안팎을 자체 출자할 수 있는 재무 체력을 확보했다. 현재 자기자본은 800억원이 넘으며 누적 주주배당은 220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공모가 4500원 밑으로 주가가 떨어진 적이 없다"며 "상장으로 얻은 득이 컸다"고 말했다.

이강수와 25년 파트너십…우주·세컨더리로 다음 20년 준비컴퍼니케이의 성장 동력으로 김 대표는 이강수 투자부문 대표와 설립 이전부터 25년 이상 이어온 파트너십을 꼽았다.김 대표는 일신창투 시절인 2000년, 고려대 영자신문사 1년 후배이자 다국적 제약사 릴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PM)로 일하던 이 대표를 직접 데려왔다. 제어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가 벤처 생태계에 품은 남다른 열정을 일찌감치 알아본 것이다.

매일 오전 7시30분이면 사옥 1층 커피숍에 자리 잡아 독서로 하루를 여는 이 대표에 대해, 김 대표는 "부지런함과 끊임없는 호기심이 그의 가장 훌륭한 무기"라며 "하우스 내 후배 심사역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대표가 매달 두세 차례 카이스트 연구실을 직접 방문해 교수진 및 학생 창업가들과 축적한 네트워크는 라이온로보틱스, 위로보틱스, 디든로보틱스 등 유망 로봇 기업들을 선제 발굴하는 자양분이 됐다는 설명이다.

회수를 앞둔 포트폴리오 가운데 대표 주자는 업스테이지다. 업스테이지에 투자한 시점은 AI 개념조차 막연하던 5년여 전이다. 컴퍼니케이는 네이버 클로바 책임자이자 홍콩과학기술대 교수였던 김성훈 대표가 창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 설립 초기부터 찾아가 시리즈A 단계에서 150억원을 투자했다. 김 대표는 "당시 AI 기업이 많지 않았고 팀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사람이 가장 중요했다"며 "김성훈 박사를 보면 투자를 안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업스테이지는 2027년 증시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ICT와 바이오, 뷰티 부문에 속한 주요 기업들이 연이어 결실을 앞두고 있다. 200억원 이상을 투자해 기관투자자 중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한 캐치테이블은 일본 진출을 위한 유상증자를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 벤처 프레이저테라퓨틱스는 지난달 기술성 평가에 진입했고, 사모펀드(PE) 본부가 투자한 K뷰티 기업 구다이글로벌도 IPO 대어로 꼽힌다.

선제적으로 뛰어든 우주 산업 역시 하우스가 공을 들이는 핵심 영역이다. 당장 매출이 없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김 대표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저궤도 위성 등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서 수조원 규모의 자금이 움직이고 있다"며 "우주개발이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로 전환하는 추세에 맞춰 기술 요건을 갖춘 기업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다음 과제로 세컨더리펀드를 제시했다. 2019~2020년 결성한 벤처펀드 가운데 20조원이 만기를 앞두고 있다. 벤처펀드는 존속기간이 7~8년으로 정해져 있어 이들 펀드는 곧 투자금을 회수해 청산해야 하지만, 상장만 기다리기엔 시간과 회수 창구가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김 대표는 "당시 투자받은 실력 있는 기업이 많지만 상장의 문은 한정돼 있다"며 "이들의 구주를 사들이는 세컨더리 시장이 유망하다"고 짚었다. 컴퍼니케이는 내년 결성을 목표로 1000억원 규모의 세컨더리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VC의 본연의 역할을 '조력자'로 정의했다. 그는 "창업자는 우리보다 100만 배 더 고민하는 분들"이라며 "VC는 시장을 이끄는 주역이 아니라, 창업자와 눈높이를 맞추고 현장의 고민거리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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