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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앞 '시한폭탄'... 귀를 의심케 한 장관의 말 [반도체 특별과외]

요약
  •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국정감사에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다고 발언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 실제 구글 등 주요 기업들은 RE100을 넘어 더 엄격한 '24/7 CFE'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과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 탄소중립 포기·연기했다'는 김정관 장관 발언, 사실과 달라
▲ 업무보고 하는 김정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탄소중립 이슈에 대해서도 지금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걸 처음에 제기했던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사실상 포기하면 포기, 연기하면 연기하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 이제 구글 같은 경우도 RE100에서 소위 CF100으로 지금 바꿨고요. (...) 지금 RE100만 가지고는 현재 AI 데이터센터나 이런 수요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아래 산자중기위)의 산업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용인국가산단의 RE100 대책을 질문하자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내놓은 발언입니다.

이 답변을 듣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바뀌었나 싶어, 국내 반도체 업계에 RE100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구글, 애플, MS, 메타의 최신 환경보고서를 다시 한 번 샅샅이 살펴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 장관의 발언은 사실과 다릅니다. 오늘 반도체 특별과외에서는 이 발언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반도체 등 글로벌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포기했다?

먼저 김정관 장관에게 묻고 싶습니다. 반도체 관련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포기하거나 연기하고 있는 사례를 단 하나라도 제시해 보십시오. 단언컨대 그런 사례는 없습니다. 탄소 중립을 선언한 주요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들은 탄소중립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목표를 앞당기거나 협력사에 이를 강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애플은 매년 'Apple 협력업체 행동 수칙'이라는 공문을 통해 협력업체에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메타 등 다른 기업들이 발표한 환경보고서 역시 모두가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사용과 탄소 중립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  애플은 2030년까지 공급사까지 포함한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애플 2030'을 발표하고 매년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 애플

▲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에 이미 RE100을 달성했으며 그 다음 단계로 무탄소 에너지로의 확대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  얼마 전 RE100 회원사이 지위를 잃은 메타 역시 재생에너지 100% 사용이라는 애초 목표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메타

이런 빅테크 기업들의 요구로 인해 애초에 205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했던 세계 1위 파운드리 TSMC는 오히려 그 목표를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고, 2030년 전사 재생에너지 소비 비중 목표를 기존 40%에서 60%로 상향 조정하기까지 했습니다. 현재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26%(DS부문)에 불과하고 2050년까지 RE100 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정한 삼성전자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메타(Meta)가 더 클라이밋 그룹(RE100 이니셔티브)에서 탈퇴했습니다. 그룹에서 요구하는 RE100 원칙을 일부 지키지 못해 사실상 회원사 자격을 잃은 것인데요. 메타 역시 자사 사용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 자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AI로 인한 전력 수요 폭증으로 목표 달성이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포기'나 '연기'로 돌아섰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둘째, 구글이 RE100을 CF100으로 바꿨다?

일단 글로벌 스탠더드에 'CF100'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과거 윤석열 정부가 이를 주장했다가 세계적으로 철저히 외면당했던 용어일 뿐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장관이 아직도 국감장에서 CF100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며, 다소 현실 감각이 떨어진 것 아닌가 우려됩니다.

구글은 2017년에 이미 RE100을 달성했으며, 단 한 번도 RE100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구글이 새로이 주창한 건 오히려 더 깐깐하고 강력한 목표인 '24/7 CFE(Carbon Free Energy)'로 탄소 중립에 대한 기준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겁니다.

▲  구글의 탄소중립 흐름. RE100은 진작에 달성하고 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의 24/7 CFE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 구글

구글은 2007년, 어느 기업보다 먼저 탄소상쇄권 구매를 통해 순 운영 배출량을 장부상 '0'으로 만드는 등 누구보다 탄소중립에 진심인 회사입니다. 2017년 RE100 달성으로 연간 사용하는 전력량만큼을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로 충당했지만, 구글은 실질적인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1년 총량은 맞췄을지라도 바람이 불지 않거나 해가 지는 시간대에는 여전히 화석 연료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글이 선언한 것이 바로 '24/7 CFE'입니다. 일부 화석 연료를 쓰면서도 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 등의 방식으로 100%를 맞추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1년 365일 24시간(24/7) 내내 실시간으로 같은 지역 전력망의 무탄소 에너지만 직접 쓰겠다는 의미입니다. 탄소 기반 전력은 완전히 퇴출시키겠다는 더욱 엄격하고 차원이 높은 선언인데, 김 장관은 이를 두고 "RE100을 안 하고 CF100으로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본질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발언입니다.

일각엔 구글의 24/7 CFE 사례를 들며 "재생에너지는 실패했고 원전이 답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을 24시간 감당하기 위해 원자력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핵심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여전히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를 가장 많이 구매해 사용하는 기업들이라는 점입니다.

24/7 CFE에서 원전을 일부 사용하는 이유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때문에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빈틈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가스 발전을 완전히 퇴출하기 위한 임시 조치인 셈입니다. 재생에너지가 '메인 요리'고 원자력은 어쩔 수 없이 곁들이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한데, 이걸 두고 "재생에너지가 안 되니 원자력과 가스를 쓴다"고 호도해선 안 됩니다.

더군다나 용인국가산단의 경우는 LNG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탄소 배출이 없다는 점을 인정받아 일부에서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LNG는 RE100이든 24/7 CFE든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명백한 화석연료입니다. 기후위기를 매일같이 실감하는 시대에 용인국가산단에 쓰일 막대한 전기를 화석연료인 LNG를 이용해 만들겠다는 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발상입니다.

결정적으로 현재 용인국가산단에 짓는 것은 AI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반도체 팹(Fab)입니다. 데이터센터와는 달리, 팹에서 생산된 반도체는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앞으로 글로벌 고객사에 판매조차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핵심 수출 산업인 반도체 앞에 RE100이라는 시한폭탄이 놓여 있는데, 주무부처 수장이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이 생깁니다.

김 장관의 해당 발언은 상황을 모르고 했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대놓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이 장관과 수석들을 교체하면서 "오직 실력 중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기초적인 상식과 거리가 있는 발언을 하는 주무부처 장관을 보며 물음표가 그려지는 건, 비단 저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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