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만에 인상분 대부분 되돌려…명품업계선 이례적
금값 하락·소비자 가격 부담 등 영향 가능성매년 'N차 가격 인상'이 정례화한 명품업계에서 이례적인 가격 인하 움직임이 나타났다. 프랑스 명품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이 일부 인기 제품의 국내 판매가격을 최대 11% 가까이 낮춘 것이다. 지난 7월 두 자릿수 인상률을 적용했던 제품을 불과 석 달 만에 다시 인하하면서 당시 인상분을 사실상 되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 금값 하락 등 시장 환경의 변화도 가격 조정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한소희 부쉐론 화보. 부쉐론12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부쉐론은 최근 국내에서 판매하는 콰트로 컬렉션 일부 제품의 가격을 종전보다 5~11%가량 인하했다. 콰트로는 서로 다른 색상과 질감의 금 소재를 결합한 부쉐론의 대표 주얼리 컬렉션이다.
콰트로 클래식 펜던트 라지(L). 부쉐론 홈페이지 캡처대표 제품인 '콰트로 클래식 펜던트 라지(L)'는 기존 998만원에서 890만원으로 108만원(10.82%) 내렸다. '콰트로 클래식 펜던트 스몰(S)'도 751만원에서 690만원으로 61만원(8.12%) 인하됐다. '콰트로 화이트 에디션 펜던트 스몰'은 731만원에서 671만원으로, '콰트로 블랙 에디션 펜던트 스몰'은 828만원에서 760만원으로 각각 8.21% 낮아졌다. '콰트로 클래식 스몰 링' 역시 741만원에서 699만원으로 5.67% 내렸다.
주목할 점은 이번 가격 인하가 지난 7월 인상 폭이 유독 컸던 제품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부쉐론은 지난 7월22일 주요 제품의 국내 판매가격을 인상했다. 당시 상당수 제품의 인상률은 6% 안팎이었지만 콰트로 클래식 스몰·라지 펜던트는 12% 넘게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10.82% 인하된 콰트로 클래식 라지 펜던트의 경우 7월 가격 인상률이 12% 수준이었다면 판매가격이 인상 이전 수준으로 거의 돌아간 셈이다. 불과 석 달 만에 두 자릿수 가격 인상분을 대부분 되돌리는 조정이 이뤄진 것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7월 가격 인상 당시 대부분 제품은 6%대 인상률을 적용했지만 콰트로 목걸이 일부 제품은 12% 넘게 올랐다"며 "이번 인하는 당시 인상 폭이 컸던 제품의 가격을 재조정한 성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당초 인상률이 6%대였던 다른 제품들은 대체로 가격 변동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급격한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부담이 가격 재조정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단기간에 두 자릿수 인상률을 적용하면서 구매 부담이 커졌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일부 제품의 가격을 다시 낮췄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쉐론 콰트로 컬렉션 모습. 부쉐론국제 금값 하락도 주목할 변수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국제 금값은 트로이온스당 4176달러로 전월 말보다 8.5%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0.53%포인트 상승했고 달러인덱스는 2% 올랐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이 낮아진 데다 달러화 강세까지 겹치면서 금값에 하방 압력이 가해졌다.
금은 고가 주얼리의 핵심 원재료인 만큼 국제 시세 변화가 제조원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원자재 가격뿐 아니라 환율, 국가별 판매가격 격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매가격을 조정한다. 다만 주얼리 제품 가격에는 디자인과 가공비, 브랜드 가치 등이 반영되고 원자재 매입과 가격 조정 사이에 시차도 발생할 수 있어 최근 금값 하락이 이번 인하로 직접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조정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유는 명품업계의 오랜 가격 전략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반영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인 가격 인상을 통해 희소성과 고급 이미지를 강화해왔다.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소비자의 기대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판매 전략의 일부다. 이른바 '오늘이 가장 싸다'는 소비 심리가 대표적이다. 잦은 가격 인상은 소비자들이 추가 인상 전에 구매를 서두르도록 유도한다. 기존 구매자에게는 자신이 구입한 제품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반대로 공식 판매가격을 낮추면 향후 추가 인하를 기대하며 구매를 미루는 소비자가 생길 수 있다. 기존 구매자 역시 자신이 지불한 가격보다 제품값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불만을 느낄 수 있다. 명품 브랜드들이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공식 가격을 인하하기보다 인상 시기를 늦추거나 인상 폭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부쉐론의 이번 조정은 지속적인 가격 인상이 일반화된 명품업계에서도 일부 제품의 가격을 다시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인하 대상이 일부 제품에 국한돼 있는 만큼 브랜드의 전반적인 가격 정책이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명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지속적인 가격 인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온 명품업계에서 판매가격을 다시 낮췄다는 점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며 "이번 조정이 일회성에 그칠지, 다른 브랜드의 가격 정책에도 영향을 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