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강화에 매물 씨말라
노·도·강 단지 전월세 ‘0’ 속출
올 전세값 상승률 15년來 최고치
무리한 토허구역에 임대차 막혀
입주가뭄과 실거주 의무 등 규제가 맞물리면서 내년 전·월세가격 급등이 우려되는 가운데 한 시민이 마포구 공덕동 한 아파트 단지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매물정#1. 서울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에선 추석 연휴 직후 4억 원대에 나왔던 전용면적 66㎡ 전세매물이 3∼4일 만에 자취를 감췄다. 현재 남은 매물은 5억5000만 원과 6억 원짜리 두 건뿐이다. 일주일 새 약 1억∼2억 원이 오른 셈이다. 노원구 상계동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대표 A 씨는 “20년 동안 중개업을 하면서 매매·전·월세가 동시에 치솟는 것은 처음 본다”며 “올봄에 비해 전세는 1억 원, 월세는 40만 원가량 올랐다”고 말했다.
#2. 강서구 마곡동에선 국민평형(전용 84㎡ ) 전세가격이 8억 원 안팎까지 올랐다. 올 들어 같은 면적이어도 재계약을 하려면 1억∼2억 원이 올랐다. 전세금을 못 마련하면 세입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도 발산동, 가양동이나 경기 김포시 등으로 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실거주 의무를 강조한 10·15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1년을 맞는 가운데,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씨가 마르면서 무주택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치솟은 전·월세가격을 감당치 못해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막대한 대출 이자를 감수하고 집을 사야 하는 ‘생존매수’로 내몰리고 있는 양상이다. 서울 강남 아파트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서민 주거 불안은 되레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심화된 전·월세난은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해 10·15 대책이 시행된 이후 이날까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각각 15.8%, 12.9% 줄었다. 경기에선 같은 기간 전·월세 매물이 각각 39.6%, 48.7% 급감했다.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실수요가 많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마포·강서·양천구 일대 1000세대 이상 대단지에선 순수전세가 10건도 안 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12단지(1739세대)와 도봉구 대상타운현대(1278세대)는 전·월세 매물이 각각 3건, 0건이다. 마포구 공덕자이(1164세대)와 강북구 번동주공1단지(1430세대)엔 전세매물이 각각 2건과 1건뿐이다. 강북구 미아동 공인중개사 B 씨는 “미아동에선 전세매물 자체가 귀해져 4∼5인 가구도 20평대 전세를 찾고 있는데, 자금에 맞춰서 그냥 집을 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혼부부가 몰리는 노도강에선 전·월세 매물이 소멸한 중형 단지도 상당수다. 노원구 수락파크빌(468세대), 도봉구 방학삼성래미안1단지(603세대), 강북구 번동두산위브(292세대) 등은 전·월세 매물이 0건이다.
전·월세가격은 치솟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8월 아파트 전세가격 누적 상승률은 7.35%에 달해 2011년(9.33%) 이후 최고치다. 같은 기간 아파트 월세 누적 상승률도 6.69%에 달해 종전 최고치인 2024년(1.92%)의 3.5배를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전·월세대란이 내년에 극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 서울 적정 입주 물량은 4만 호인데 올해부터 1만 호대로 꺾이기 시작한 상황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임대 제외)은 올해(1만9368호)보다 14.9% 감소한 1만6488호로 추산됐다. 2028년엔 올해보다 31.4% 감소한 1만3279호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10·15 대책의 최대 패착은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무리하게 묶은 것인데 이때부터 전·월세난이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권대중 한성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은 하루아침에 늘릴 수 없고 정부가 대출규제를 완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전세가격 상승세는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도 전·월세난을 가중시켰다. 토허구역에선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어 전세를 끼고 사서 세를 놓을 수 없다. 세입자가 살던 집에 집주인이 들어가면 그만큼 임대 물량은 사라지게 된다. 노원구 상계동 공인중개사 C 씨는 “전세매물이 없어 세입자가 나갈 집을 구하지 못해 계약이 진행되지 않는 사례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전·월세 시장은 단순히 주택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유량의 문제’”라며 “전·월세 낀 주택이 매매되더라도, 기존 세입자가 다음 주택으로 이동하지 못하면 공급 흐름 자체가 끊기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