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업자본 첫 뮤지컬 투자 이끌어
‘시총 3조’ 휴젤 초기 때부터 지분 참여
스페이스X·크래프톤·야놀자도 결실
“승산 낮은 분야에 얽매이지 말아야
美선 바이오 등 집중 투자…19곳 상장
글로벌 매출 50%까지 끌어올릴 것”
김지원 아주IB투자 대표가 서울시 강남구 아주빌딩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불멸의 명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한국에서 초연을 올린 건 2001년이다. 제작비는 당시 돈으로 130억 원. 기존 작품의 10배에 달했다. 공연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필요했지만 뮤지컬이 낯설었던 당시 국내에서 선뜻 거금을 내주는 곳은 없었다. 그때 한 2년 차 투자심사역이 제작사 문을 두드렸다. 투자 금액은 20억 원. 결론적으로 오페라의 유령은 244회 공연, 19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유례없는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심사역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 초연 투자에도 참여하면서 상업자본의 뮤지컬 투자 시대를 열었다.25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심사역은 아직도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주인공은 김지원 아주IB투자 대표. 아주IB투자는 1974년 설립된 국내 1세대 벤처투자 기업으로 2018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운용자산(AUM) 규모는 올해 상반기 약 2조 5000억 원이다. 김 대표는 2015년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부터 검은사막으로 유명한 게임회사 ‘펄어비스’, 유니레버에 매각된 뷰티 기업 ‘카버코리아’, 미국 나스닥 상장을 노리는 ‘야놀자’ 등 굵직한 투자 건이 모두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 그중 바이오 기업 ‘휴젤’은 김 대표가 발굴한 대표 투자 포트폴리오로 꼽힌다. 2013년부터는 미국에 진출해 주로 바이오·테크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2023년 투자한 우주·인공지능(AI) 기업 ‘스페이스X’의 수익률은 10배 이상으로 추정된다.
김 대표는 14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VC가 30년 이상 한국의 벤처기업 성장을 함께 도모하면서 투자 능력이 글로벌 수준으로 향상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해외 투자를 적극 확대해 현재 약 30%인 VC 부문 글로벌 매출을 5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1967년생인 김 대표는 외환위기 직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VC 업계에 발을 들였다. 전통적인 금융자본보다 모험자본의 역할이 커지는 금융 질서 재편 속에서 VC 산업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심사역으로서의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투자 시장은 반도체·디스플레이·소재 등 기술 중심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심사역들도 이공계 전문가와 박사 출신들이 주를 이뤘다. 김 대표는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떤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다”며 “성과는 보이지 않았고 조급함은 커져 회사를 떠날까 고민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지원 아주IB투자 대표가 서울시 강남구 아주빌딩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그러던 중 만난 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다. 평소 교류하던 모임에서 한국 초연을 기획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제작사를 찾았다. 당시 대형 자본이 뮤지컬에 투자한 사례가 없다 보니 오히려 제작사에서 의아해했다. 김 대표는 당시 중상위층에 존재하던 소수의 뮤지컬 팬덤에 주목했다. 오페라의 유령 로열석인 ‘R석’은 당시 돈으로 12만 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계속 다시 보는 ‘N차 관람’ 문화가 매출을 견인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 대표는 연이은 투자 성공 배경으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들었다. 그는 “승산이 낮은 분야에 매달리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거나 새로운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늘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 대표가 2000년대 초반에 투자한 수학 교육 솔루션 벤처기업은 시장 진입에 실패하며 창업 1년 만에 파산했다. 투자금도 휴지조각이 됐다. 해당 기업은 온라인 강의를 판매해 수익을 낼 예정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개인 노트북을 가진 학생이 드물었다. 김 대표는 “투자 실패를 통해 무조건 좋다고 다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기술과 상품이어야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김 대표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휴젤이다. 휴젤은 흔히 보톡스로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 제품을 개발해 공급하는 기업이다. 2015년 기업공개(IPO) 당시 약 1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현재 시가총액은 3조 원이다. 아주IB투자는 2008년 휴젤의 몸값이 300억 원일 때부터 투자를 시작했다. 처음 투자 제안이 왔을 때 김 대표는 사실 ‘퇴짜’를 놨다. 휴젤은 의사 출신 2인 등 3명이 공동으로 창업한 기업인데 당시만 해도 소유와 경영 분리가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이어진 만남에 김 대표는 휴젤 측에 최고재무책임자(CFO) 선임을 조건으로 투자하겠다고 했고 창업 멤버들이 이를 받아들이며 투자가 성사됐다. 아주IB투자는 2012년 휴젤 구주를 매각하면서 투자회수(엑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상태다. 김 대표는 “창업주가 모든 걸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분야별 전문가들과 권한과 업무를 나눌 줄 알아야 기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주IB투자는 국내에서 투자 규모를 지속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올해는 9월까지 VC와 사모투자(PE) 부문에서 연간 목표치(3790억 원)보다 높은 총 4000억 원을 투자했다. 2028년 연간 투자액 목표는 5000억 원이다. PE 부문도 사업 보폭을 넓힌다. 현재 4개 펀드를 운용 중이며 총 규모는 약 1조 원이다. 주요 투자 기업으로는 더존비즈온과 야놀자·헬리녹스·드림마크원 등이 있다. 김 대표는 “1호 펀드의 경우 기준 수익률을 초과해 청산 성과보수 수익이 발생하고 있다”며 “양적 성장을 위해 인수합병과 바이아웃을 지속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VC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도 집중한다. 아주IB투자는 2013년과 2019년 각각 미국 보스턴, 실리콘밸리에 진출했다. 현재 보스턴에서는 해외 법인 ‘솔라스타벤처스’를 통해 바이오를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솔라스타넥서스’ 법인을 세우고 하이테크 기업을 발굴한다. 솔라스타벤처스가 투자한 바이오 기업 중 총 19곳이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2013년에 결성해 지난해 청산한 해외 전용 펀드의 내부수익률(IRR)은 22.6%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미국에 가면 아주IB투자도 스타트업”이라며 “한국에서처럼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아니라 철저하게 영역별 특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아주IB투자는 미국 바이오 기업에 투자할 때 신약을 개발하는 곳만 다룬다. 하이테크의 경우에도 우주와 AI로 투자 영역을 좁혔다.
김 대표는 아주IB투자가 처음 미국에 진출할 때 현지 법인 설립을 주도했다. 그는 “해외에 진출할 당시 미국과 중국·싱가포르를 두고 고민이 컸는데 결국 시장 위험이 적으면서도 성장 잠재력이 계속 이어지는 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회수 시장의 다양성도 미국으로 간 이유다. 김 대표는 “미국은 바이오의 경우 전임상 단계라도 데이터가 좋으면 기업을 인수하고 기술만 팔 수도 있다”며 “회수 기회가 많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공략을 위해 펀드 규모도 늘릴 계획이다. 아주IB투자는 올해 총 2200억 원 규모의 해외 투자목적 펀드를 결성 중이다. 이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 투자를 목적으로 결성한 펀드(3280억 원)의 약 67%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다. 솔라스타벤처스가 1500억 원, 솔라스타넥서스가 700억 원을 목표로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현재 절반인 약 1000억 원을 확보했다. 김 대표는 “한국의 아주IB투자가 아니라 글로벌 아주IB투자로 성장하는 게 목표”라며 “기존 해외 투자의 규모를 키워가면서도 일본과 동남아시아 등 다른 국가들의 시장 참여 기회를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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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충남 △연세대 경영학 △1999년 아주IB투자 입사 △2012년 아주IB투자 경영지원본부장 △2015년~ 아주IB투자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