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독일 연방의회 보좌관이 바라본 극우정당 압승 그 후

요약
  • 최근 독일의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AfD의 약진과 좌파당의 약세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기존 국민정당 체제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 유권자들은 경제 위기와 사회적 불안 속에서 기성 정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AfD에 투표한 43.8%를 모두 극우로 규정하면 그들이 왜 기존 정치를 떠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표를 이유로 반헌법적 생각마저 받아들이면 방어적 민주주의의 의미가 사라진다. 9월6일 독일 AfD 소속 울리히 지크문트 작센안할트 주총리 후보(가운데)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Photo 9월6일 독일 AfD 소속 울리히 지크문트 작센안할트 주총리 후보(가운데)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Photo

베를린 주의회 선거를 하루 앞둔 9월19일 필자는 사회민주당(SPD)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일하며 정치를 매일 접하지만, 선거운동을 하며 길거리에서 만나는 정치는 의회 안의 정치와 사뭇 달랐다.

이날 만난 젊은 유권자들 중에는 현 연방정부와 기성정당들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독일의 대표적 좌파 정당인 좌파당(Die Linke)에 표를 주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반대편에는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기존 언론과 민주적 제도를 불신하며 음모론에 빠져 대화의 접점을 찾기 어려운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기성정당을 지지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실망 때문에 AfD를 선택하겠다는 이른바 ‘항의 유권자’도 다수였다. 서로 정반대 성향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기존 정치가 자신의 삶과 불안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지난 9월 한 달간 독일에서는 세 곳의 주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가장 극적인 결과는 9월6일 동부 작센안할트주에서 나왔다. AfD가 득표율 43.8%를 얻었다. 2021년 20.8%에서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독일의 대표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CDU)은 17.2%를 득표해 2위에 그쳤다. AfD는 주의회 전체 83석 가운데 39석을 차지해 주의회 단독 과반에 3석이 모자란다. 독일의 각 주에서는 주의회가 주총리를 선출하고 주정부를 구성한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AfD가 주정부를 이끄는 상황이 더 이상 정치적 가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권력 시나리오로 떠올랐다.

9월20일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는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주의회 선거 결과 AfD는 정당 득표율 38.2%, 사회민주당은 35.5%를 얻었다. 의석수로 보면 전체 71석 중 AfD가 32석, 사회민주당이 29석이다. AfD가 승리했지만 사회민주당도 그에 못지않게 선전했다. 여기에는 사회민주당의 마누엘라 슈베지히 현 주총리의 역할이 있었다.

슈베지히 주총리는 ‘파란색에 맞서는 여성(Frau gegen Blau)’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AfD의 당색인 파란색을 겨냥해 이번 선거를 자신이 속한 사회민주당과 AfD의 양자 대결로 만들었다. 동시에 연방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교육과 인프라, 생활비 등 주민의 삶에 직접 닿는 문제에 집중했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정당보다 높은 슈베지히 개인의 지지도가 있었다. 9월21일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 사회민주당 지지자 49%가 “슈베지히가 아니었다면 사회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연방 차원의 사회민주당이 고전하는 상황에서도 슈베지히라는 인물과 지역 현안에 집중한 선거전이 당의 지지층을 넘어 유권자를 결집시키는 데 상당한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 결과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기독민주당의 득표율이 4.9%에 그쳐 5% 봉쇄 조항을 넘지 못했다.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기독민주당이 주의회 선거에서 5%를 넘지 못해 의회 진입에 실패한 것은 처음이다. AfD의 승리만큼이나 기존 독일 정치를 떠받쳐온 ‘국민정당(Volkspartei)’ 체제의 붕괴를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같은 날 열린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는 좌파당이 25.7%를 얻으며 사상 처음 베를린 제1당이 됐다. 튀르키예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엘리프 에랄프를 전면에 내세운 좌파당은 주거 문제를 핵심 의제로 띄웠다. 치솟는 임대료가 난제이던 베를린에서는 ‘주택의 공공 소유’가 화두였다. 2021년 ‘대형 주택회사의 주택을 사회화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대한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당시 투표 참여자 57.6%, 103만여 명이 찬성했다(반대 응답은 39.8%). 그러나 이후에도 실질적인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자, 좌파당은 이 미완의 주민투표 결과를 실제 정책으로 옮기겠다고 강조했다.

베를린에서는 왜 좌파당이 1위를 했을까



특히 베를린에서는 젊은 유권자들의 좌파당 지지가 눈에 띈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 25세 미만 유권자층에서는 43%, 25~34세에서는 48%가 좌파당을 선택했다. 25세 미만 여성만 보면 51%에 달한다. 동독의 다른 지역에서 AfD가 젊은 유권자, 특히 젊은 남성에게 강한 지지를 얻는 현상과 대비된다.

9월20일 독일 좌파당의 수석 후보 엘리프 에랄프(가운데)가 베를린 주의회 선거 후 좌파당 선거 행사 무대에서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9월20일 독일 좌파당의 수석 후보 엘리프 에랄프(가운데)가 베를린 주의회 선거 후 좌파당 선거 행사 무대에서 환호하고 있다. ©AFP PHOTO

지난 10여 년간 독일은 난민 위기와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등 이른바 ‘다중 위기’를 경험했다. 이 연속된 위기는 유권자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이번 세 선거는 그 불만이 하나의 정치적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작센안할트주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는 AfD가 이를 강하게 흡수한 반면, 정치·사회적 환경이 다른 베를린에서는 좌파당이 젊은 유권자들의 불만을 끌어모았다. 물론 베를린 선거 결과가 독일 전체의 ‘좌향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좌파당의 약진이 베를린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2025년 연방 총선에서 좌파당의 전국 득표율은 8.8%로 2021년(4.9%)보다 크게 상승했다. 반대 방향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은 기존 정당에서 유권자가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를 단순히 ‘AfD의 약진’이라는 하나의 틀로만 설명할 수 없다. 독일 정치를 오랫동안 지탱해온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당이라는 두 국민정당의 공간이 좁아지는 한편,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쪽에서는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흡수하며 지지를 넓히는 정당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복잡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현실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문제를 이해하기 쉬운 정치적 구도로 단순화하고 유권자의 불안과 분노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여기서 독일 민주주의는 AfD라는 극우정당이 던진 가장 어려운 질문과 마주한다. 이번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주민의 43.8%가 AfD에 표를 던졌다. 선거 이후 한 여론조사에선 AfD의 주정부 참여에 응답자 52%가 찬성했다. 동시에 AfD 집권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응답도 48%에 달했다. AfD의 정부 참여를 막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찬반이 정확히 47%씩 갈렸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정당들이 ‘방화벽(Brandmauer)’을 세우고 AfD와의 모든 협력을 거부하는 것이 민주적인가. 유권자 43.8%를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닌가. 그 과정에서 AfD가 오히려 ‘기성 정치의 피해자’를 자처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가.

작센안할트주의 AfD는 독일 정치권에서 단순히 ‘극우’라는 수사로만 일컬어지는 정당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AfD는 가족·교육 정책부터 치안과 이민정책에 이르기까지 기존 정치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노선을 내세웠다. 그중 이민정책에서는 대대적인 정책 전환과 이민자 추방 강화를 요구했다. 불법 이주민에 대해서는 기존의 ‘환영 문화’ 대신 ‘떠나보내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표현까지 선거 슬로건에 담았다. 작센안할트주 헌법수호청이 2023년 해당 주의 AfD를 ‘확실한 극우주의적 세력’으로 분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인간 존엄과 민주주의 원칙 등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정치활동을 한다는 판단이 그 근거였다. 실제 헌법기관이 정당의 반헌법적 성격을 규정한 셈이다.

‘방어적 민주주의’가 마주한 시험대



독일이 이 문제에 민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나치당(NSDAP)은 독일 선거에서 단독 과반을 얻은 적이 없다. 1932년 제1당에 올랐지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고, 히틀러가 총리로 임명된 뒤 치러진 1933년 3월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반드시 국민 과반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민주적 제도의 취약성과 정치 엘리트의 오판, 그리고 제도 내부의 권한이 결합하면서 민주주의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경험은 전후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 원칙이 형성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이번 선거는 그 추상적인 원칙을 현실의 문제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AfD가 작센안할트주에서 주정부를 이끌게 되더라도 독일의 이민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체류와 난민정책의 기본 법률은 연방 차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집행에는 주정부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체류법상 외국인청과 추방 집행기관의 조직은 주정부의 권한과 연결돼 있고, 주 경찰 역시 집행에 참여한다. 작센안할트주에서 벌어지는 정부 구성 협상은 지역 정치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독일의 급진 우파 정당을 둘러싼 ‘방화벽’이 실제 권력 앞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베를린에서 배포된 슈테판 크라흐 사회민주당 시장 후보의 선거운동 전단. 뒤쪽 버스에는 ‘나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자(Krach gegen Nazis)’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무홍 제공 베를린에서 배포된 슈테판 크라흐 사회민주당 시장 후보의 선거운동 전단. 뒤쪽 버스에는 ‘나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자(Krach gegen Nazis)’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무홍 제공

선거운동을 마치며 나눠주지 못한 전단 몇 장보다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것은 그날 거리에서 나눈 대화들이었다. 어떤 대화는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민주주의 제도와 언론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주장 앞에서는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느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에 경계를 세우는 것과, 그들을 선택한 시민에게까지 방화벽을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AfD에 투표한 43.8%를 모두 극우주의자로 규정해버리면 그들이 왜 기존 정치를 떠났는지 이해할 기회를 잃는다. 반대로 그들의 표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헌법적 정치까지 평범한 견해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방어적 민주주의’의 의미가 사라진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은 선거 결과처럼 간단하게 좌우로 나뉘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처음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과도 주거비와 물가, 교육, 치안, 행정 같은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서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정치세력에는 분명히 경계를 긋되, 그 정치를 선택한 시민과는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것. 독일 민주주의가 마주한 과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데 있다. 민주주의가 그어야 할 경계는 시민과 시민 사이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치와 그것을 부정하는 정치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