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료품점의 모습/뉴시스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다시 가팔라지면서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악재가 겹치고 있다. 미 노동통계국은 14일(현지 시각)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3.7% 상승했다고 밝혔다. 8월의 3.4%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전월 대비로도 0.6% 올랐다. 10월 CPI는 선거가 끝난 뒤인 11월 10일 발표돼, 이번 수치가 유권자들이 투표 전에 받아보는 마지막 월간 CPI 성적표다. 이란 전쟁으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 가계 구매력을 갉아먹는 가운데 연방준비제도가 선거 직전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가능성까지 커졌다. 물가를 잡겠다는 약속으로 재집권한 트럼프에게 자신이 시작한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선거 전 마지막 성적표
물가를 밀어 올린 주범은 에너지였다. 휘발유 가격이 한 달 새 9.1% 뛰어 전체 물가의 월간 상승분 중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년 대비 상승률은 34.2%에 달했다. 전쟁의 비용이 주유소 가격표를 통해 유권자의 지갑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다. 충격은 주유비에 그치지 않는다. 난방비와 항공료 등에도 부담이 번졌다.
문제는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이 따라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재집권한 지난해 1월 이후 미국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 임금이 사실상 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명목 임금이 올라도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은 제자리라는 얘기다.
백악관의 설명도 궁색해졌다. 케빈 해싯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물가 상승세가 크게 둔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지표 발표 뒤에는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인정했다. 그는 “트럼프의 여러 정책이 물가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도 “오늘의 핵심은 에너지 충격”이라고 말했다.
물가 못 잡아 금리 올리면 대출 부담
연준의 고민은 기름값 상승이 다른 품목으로 번지는지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전월 대비 0.3%, 전년 대비 2.6% 올랐다. 주거비와 교육비 등에서도 상승이 나타났다. 일시적인 에너지 충격으로 넘기기에는 가격 압력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연준의 경기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에서도 연료비 부담이 부각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높은 경유 가격에 관한 언급은 직전 보고서의 2차례에서 21차례로 늘었다. 반면 5개 연준 관할 지역에서는 기업들이 퇴사자를 충원하지 않거나 채용을 미루는 방식으로 인력을 줄였다고 보고했다. 물가 부담은 커지는데 고용은 약해지는, 정책 대응이 어려운 조합이란 지적이다.
연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3.75~4.00%로 올렸다. 다음 회의는 선거 엿새 전인 10월 27~28일이다. 추가 인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물가 재상승으로 동결을 장담하기도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금리로 원유 공급을 늘릴 수는 없어도, 에너지 충격이 광범위한 물가 상승으로 굳어지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추가 인상이 이뤄지면 가계와 기업에는 높은 생활비에 금융비용까지 겹친다는 신호가 된다.
공화당 심판론까지
정치적으로 더 뼈아픈 것은 물가 불만이 트럼프의 재집권을 도운 핵심 동력이었다는 점이다. 이제 백악관과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같은 불만의 표적이 됐다. 로이터·입소스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8%가 트럼프의 정책이 생활비 상승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공화당 지지층에서도 물가가 임금보다 빠르게 오른다는 응답이 과반이었다.
선거까지 남은 기간에 유권자의 체감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아메리칸컴퍼스의 오런 캐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NYT에 “오늘 어떤 수치가 나왔더라도 물가와 기름값에 대한 유권자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백악관과 공화당에는 선거를 앞두고 매우 심각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