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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냉장고는 조금만 더 씁시다”…가전 쉽게 안 바꾸는 유럽, 한국은?

요약
  • 유럽연합(EU)이 가전제품의 수리할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를 시행하여 제조사의 수리 의무를 부과하고 폐기물 발생을 억제한다.
  • 소비자가 수리를 선택할 경우 보증기간이 연장되는 등 혜택이 제공되며, 한국은 부품 보유 기준은 있으나 유럽과 같은 포괄적 제도는 미비한 상태다.
유럽, 가전 ‘수리할 권리’ 눈길
올 7월 말부터 제조사에 수리 의무
보증 끝나도 합리적 비용으로 고쳐야
교환 대신 수리하면 보증 1년 연장
연간 폐기물 3500만t 줄이기 나서

 유럽연합(EU)이 회원국 대상으로 올해 7월 31일부터 이른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유럽연합(EU)이 회원국 대상으로 올해 7월 31일부터 이른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냉장고나 세탁기가 고장 났을 때 새 제품을 사는 대신 고쳐 쓸 수 있도록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제도가 유럽에서 본격 시행돼 눈길을 끈다. 제조사는 품질보증기간이 지났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제품에 대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리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가 보증기간 내 제품 교환 대신 수리를 선택하면 법적 보증기간도 1년 연장된다.

유럽연합(EU)이 올해 7월 31일부터 시행한 이른바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 제도다. 제품을 고쳐 쓰는 것보다 새로 사는 편이 유리했던 소비 구조를 바꿔 가계 부담을 줄이고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겠다는 취지다.

15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제도는 2024년 6월 채택된 ‘상품 수리 촉진에 관한 지침’에 근거한다. 회원국들은 지난 7월 31일까지 관련 내용을 자국 법률에 반영하고 적용하도록 했다.

 수리가 가능한 제품을 수명이 다하기 전에 버리면서 해마다 막대한 양의 폐기물이 발생하고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유럽연합 이사회] 수리가 가능한 제품을 수명이 다하기 전에 버리면서 해마다 막대한 양의 폐기물이 발생하고 자원이 낭비되고 있다. [유럽연합 이사회]제도 도입의 배경에는 일부 부품만 고장 나도 비싼 수리비와 부품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제품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현실이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을 부추긴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EU에 따르면 수리가 가능한 제품을 버리고 새 제품으로 교체하면서 유럽에서 한 해 발생하는 폐기물은 약 3500만톤(t)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2억6100만t으로 추산된다. 제품을 고치는 대신 새로 구입하면서 소비자가 추가로 부담하는 비용도 연간 약 120억유로에 이른다.

수리할 권리 제도의 핵심은 제조사의 수리 의무다. 기존에는 품질보증기간이 끝난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수리를 요청하더라도 제조사가 이를 거절하거나 수리비를 높게 책정하면 소비자가 새 제품을 구입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

이제는 EU 법률에 따라 수리 가능성 요건이 정해진 제품에 대해 제조사가 소비자의 수리 요청에 응해야 한다. 수리는 무료 또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합리적인 기간 안에 이뤄져야 한다. 다만, 기술적으로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까지 제조사에 수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적용 대상에는 냉장고와 세탁기, 식기세척기, 진공청소기, 건조기, 전자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태블릿 등이 포함된다. 모든 소비재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EU가 제품별로 정한 수리 가능성 요건과 범위에 따라 의무가 달라진다.

수리용 부품에 대한 접근성도 강화된다. 제조사가 해당 제품의 수리용 부품과 도구를 공급하는 경우 수리를 사실상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높은 가격을 매길 수 없도록 했다. 소비자는 제조사의 공식 서비스센터뿐 아니라 독립 수리업체를 통해서도 제품을 고칠 수 있다.

제조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기술을 이용해 수리를 방해하는 행위도 제한된다. 안전과 지식재산권 등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호환 부품이나 중고 부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리를 막을 수 없다. 다른 수리업체가 이전에 제품을 수리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조사가 수리를 거절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수리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도 마련됐다. 법적 보증기간 안에 제품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가 교환 대신 수리를 선택하면 보증기간이 한 차례 12개월 연장된다.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수리와 교환 중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과 수리 시 보증기간이 연장된다는 점을 안내해야 한다.

수리 비용과 기간을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수리업체는 소비자에게 예상 수리비와 작업 기간, 수리 조건 등을 담은 표준화된 ‘유럽 수리 정보 양식’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양식을 제공한 업체는 제시한 수리 조건을 최소 30일간 유지해야 한다.

소비자가 수리업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유럽 차원의 온라인 플랫폼도 구축한다. 국가별 수리업체와 수리 서비스를 검색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EU는 관련 플랫폼을 단계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EU는 이번 제도가 소비자의 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수리 산업에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수리 활성화에 따른 EU 내 성장과 투자 효과가 48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품목별 품질보증기간 및 부품보유기간. [공정거래위원회] 품목별 품질보증기간 및 부품보유기간. [공정거래위원회]한국도 가전제품 수리와 관련한 소비자 보호 기준을 운영하고 있지만 유럽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라 냉장고와 TV는 9년, 세탁기는 7년, 에어컨은 8년간 수리용 부품을 보유하도록 기준을 정하고 있다.

부품 보유기간 안에 부품이 없어 수리할 수 없다면 품질보증기간이 지났더라도 감가상각한 잔여금액에 구입가의 10%를 더해 환급하도록 하는 기준도 마련돼 있다.

다만, 유럽처럼 보증기간이 지난 제품에 대해 제조사의 수리 의무와 독립 수리업체의 접근성을 포괄적으로 강화하는 별도의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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