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발전 중요성 높아지며
경제성 심사 문턱 확 낮아져
적자 예상되는 23개 사업에
28조 투입, 재정효율성 우려
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예산처 청사 현판. [연합뉴스]대규모 국책사업에서 경제성 등을 판별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정도를 보는 평가 지표가 강화하면서 경제성이 낮은 사업도 무더기로 예타를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재정투자의 효율성이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15일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예타를 통과한 사업 31건 중 23건(74.2%)은 투입하는 돈에 비해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가 적었다. 경제적 효과가 적은 것으로 나타난 프로젝트의 총사업비 규모는 28조5760억원에 달한다.
투입 비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편익이 예상되는 사업마저 줄줄이 예타 문턱을 넘었다. 비용 대비 편익(B/C)이 0.5 미만인 사업은 6건 중 5건(83.3%)이 예타를 통과했다.
100원을 투입했을 때 돈으로 환산한 예상 효과가 50원에 못 미치는 사업이 대부분 심사 문턱을 넘었다는 뜻이다.
B/C가 0.5 미만임에도 예타를 통과한 5개 사업의 총사업비는 12조4915억원에 달했다. 영월~삼척 고속도로가 대표적이다. 이 사업에는 5조6167억원이 투입되지만 B/C는 0.27에 그쳤다. 동해선 삼척~강릉 고속화 사업비 역시 1조1507억원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만 B/C는 0.4에 불과했다.
B/C가 0.5 이상~0.8 미만인 사업의 통과율은 66.7%, 0.8 이상~1 미만인 사업은 통과율이 83.3%에 달했다.
경제성이 낮은 사업도 예타를 통과할 수 있는 배경에는 종합평가 방식이 있다. 예타는 경제성뿐 아니라 지역균형발전 등을 종합해 사업을 판단한다. B/C가 1 미만이어도 다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면 통과할 수 있는 구조다.2019년 문재인 정부는 비수도권 건설 사업의 경제성 평가 비중을 기존 35~50%에서 30~45%로 낮추고, 지역균형발전 비중은 25~35%에서 30~40%로 높였다. 지역균형발전을 강화한다는 취지였지만 경제성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예타 통과율도 과거보다 높아졌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B/C 평가 사업을 기준으로 2024년에는 조사 사업 14건 중 10건이 통과해 통과율이 71.4%였다. 지난해에는 30건 중 25건이 통과하면서 83.3%로 11.9%포인트 상승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8건 중 6건(75.0%)이 통과해 지난해보다 통과율이 8.3%포인트 낮아졌지만, 2024년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앞으로 경제성이 낮은 사업의 예타 통과 가능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 5월 예타 운용지침을 개정해 인구감소지역 건설 사업의 경제성 평가 비중을 기존 30~45%에서 25~40%로 낮췄기 때문이다. 반면 지역균형성장 비중은 30~40%에서 35~45%로 높였다.
기존의 지역 낙후도와 경제적 파급효과뿐 아니라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관광 자원과 이를 활용한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도 평가에 반영한다. 수치로 확인되는 경제적 효과 외에 향후 발전 가능성까지 따지겠다는 취지다. 경제성보다 지역균형성장에 무게를 둔 개편으로, 한정된 재원을 투자 효과가 큰 사업에 우선 배분한다는 예타의 본래 취지는 한층 후퇴하게 됐다.
김우철 한국재정학회장은 “예타는 경제성이 낮은 인프라 투자를 걸러내는 핵심 제도”라며 “지역균형발전 등 정무적 판단의 비중을 계속 높이면 재정 투자 효율성이 떨어지고 예타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예비타당성조사
▷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지원 300억원 이상인 대규모 신규 사업의 경제성 등을 사전에 평가해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