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자카르타=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2024년 6월 셰이크 하시나 당시 방글라데시 총리는 독립전쟁 유공자의 후손에게 공직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가 반발 여론에 부딪혔다. 당시 그는 2차례에 걸쳐 21년 동안 집권해 '독재자'로 불렸다.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장기 집권 중인 하시나 정부가 휘발성 높은 정책을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자 대학생 수만 명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총리의 지지 세력을 위한 정책이라고 항의했다.
하시나 총리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유혈 진압에 나섰다. 3주 동안 벌어진 반정부 시위로 1천4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유혈 진압에도 반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군부까지 시위를 진압하지 않겠다고 항명하자 같은 해 8월 하시나 당시 총리는 사퇴한 뒤 황급히 인도로 도피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방글라데시 다카 법원에서 열린 궐석 재판에서 반인도적 범죄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아직도 귀국하지 않고 인도에 머무르고 있다.
하시나 전 총리가 퇴진한 뒤 과도정부가 들어섰고, 올해 2월 총선에서 옛 제1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이 승리하면서 타리크 라흐만 총재가 총리로 취임했다. 2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는 대학생들이 주도해 정권을 바꾼 사례로 기록됐다.
지난해 시위대 방화로 불타는 네팔 대통령 관저[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다른 남아시아 국가인 네팔에서도 지난해 9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가짜 뉴스가 확산한다며 정부가 등록되지 않은 소셜미디어(SNS)의 접속을 차단했고, 젊은 층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반부패 운동을 억누르려는 시도라며 반발했다.
네팔의 반정부 시위를 이끈 이들도 젊은 층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Z세대'가 주도한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방화와 폭력 사태로까지 번졌다.
물대포와 고무탄을 동원한 경찰의 강경 대응으로 77명이 숨지고 2천명 넘게 다쳤다.
시작은 SNS 접속 차단에 반발한 시위였지만 분노의 불씨는 부패와 빈곤이었다.
고위층 자녀들은 사치스러운 생활과 많은 특권을 누리지만 대다수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해야 하는 현실에 네팔 Z세대가 분노했다.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와 총리 자택 등지에 불을 지르고, 수도 카트만두 거리에서 비스누 프러서드 퍼우델 당시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을 폭행한 이유다.
행정 수반인 샤르마 올리 당시 총리와 일부 장관들이 사임했고, 과도정부에 이어 올해 3월 유명 래퍼 출신인 발렌드라 샤(35·일명 발렌) 총리가 역대 최연소로 취임하면서 네팔도 정권이 바뀌었다.
선거관리위원장 사퇴 요구하는 인도 Z세대 '바퀴벌레당' 시위[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올해 5월 인도에서도 '전국 의대 (학부) 입학 자격(NEET) 시험'을 앞두고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졌고 다르멘드라 프라단 교육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가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 Z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급조된 정치운동 단체가 시위를 이끌었다.
'바퀴벌레국민당'(CJP)이라는 다소 웃긴 이름이 붙은 이 단체는 실업 상태인 젊은이들을 바퀴벌레에 비유한 수리야 칸트 당시 대법원장의 논란성 발언이 알려진 뒤 하루 만에 만들어졌다.
인도 Z세대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현재 CJP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수는 2천500만명을 넘는다. 이는 집권당인 BJP의 1천500만명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CJP는 이달 들어 갸네시 쿠마르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도 주도하고 있다.
인도 선관위가 유권자 명단을 수정하면서 일본 전체 인구보다 많은 1억3천300만명의 이름을 삭제한 사실이 지난달 현지 매체 보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0여개 야당 정치연합인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도 시위에 가담하면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아미트 샤 내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장 사퇴 요구하는 대학생들[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24년 방글라데시와 지난해 네팔에 이어 올해 인도까지 1년 간격을 두고 남아시아 국가에서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젊은 층이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불공정'에 분노해 거리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방글라데시에서 공직은 신분 상승의 동아줄이나 마찬가지다. 유공자의 후손에게 동아줄이라는 특혜를 주려고 하자 대학생들은 화가 났다. 네팔에서는 Z세대 대부분은 빈곤에 시달리는데 특권층 자녀들만 호화생활을 누렸다. 인도 의대 시험 문제 유출과 선관위의 유권자 명단 삭제도 Z세대에게는 불공정의 문제였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 당시 대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원동력은 희망이 줄어든 상황에 대한 분노라고 평가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다.
방글라데시와 네팔은 젊은 층의 분노가 정권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인도에서 12년 넘게 집권 중인 모디 총리도 방글라데시와 네팔의 과거 사례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 인도 시위도 앞서 두 나라에서 정권교체가 벌어졌을 때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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