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 붕괴해도 장기 수혜 전망
美 금리·ETF 자금 유입이 관건
생성형AI 제작인공지능(AI) 투자 거품에 대한 우려로 글로벌 증시가 흔들린 가운데 비트코인(BTC)은 상대적으로 낙폭을 줄이며 버텼다.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이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지 의문이 커지면서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지만 비트코인은 8만 달러 아래에서 빠르게 반등했다. AI 산업의 향방에 따라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이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17일 글로벌 가상화폐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 24분 기준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1.28% 오른 8만 1943달러에 거래됐다. 비트코인은 15일(미국 현지 시간) 장중 7만 9800달러까지 밀렸지만 약 2시간 만에 8만 2500달러 부근으로 회복했다. 이후 횡보세를 보이는 모습이다. AI 관련주와 마찬가지로 매도 압력을 받았지만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빠르게 낙폭을 줄인 것이다.
미국 증시에서는 AI 인프라 기업들의 약세가 두드러졌다. 14일(현지 시간) 나스닥종합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88%,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11% 하락했다. AI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코어위브는 약 15%, 오라클은 약 9% 떨어졌다. AI 서버 제조업체 델 테크놀로지스도 11% 넘게 내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3% 하락했다.
미국발 충격은 국내 반도체주로도 번졌다. 1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7.57% 급락한 5554.22에 마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9.48%, 11.06% 떨어졌다. 미국과 한국 증시에서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과 비교하면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제한적이었다.
AI 관련주를 흔든 것은 막대한 투자 비용에 대한 우려다. AI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고성능 반도체뿐 아니라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전력 설비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미래 수요에 대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실제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물가 상승으로 금리 인상 우려까지 불거지면서 빚을 내 사업을 확장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부각됐다.
비트코인이 상대적으로 낙폭을 줄인 배경으로는 8만 달러 부근에 집중된 매수 수요가 꼽힌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글래스노드가 14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비트코인을 8만 달러 부근에 사겠다는 주문이 가장 많이 쌓여 있었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추정 평균 취득단가도 약 8만 1500달러로 이와 가까웠다.
매도 압력이 약해진 점도 가격을 뒷받침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글래스노드에 따르면 장기 보유자가 손실을 확정하며 비트코인을 매도한 규모는 8월 12일 고점 대비 약 85% 감소했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손해를 감수하고 처분하는 움직임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의미다. 8만 달러 부근의 매수 주문과 손실 확정 매도 감소가 이번 조정에서 하락 압력을 일부 흡수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산업의 향방이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매트 호건 비트와이즈 최고투자책임자(CIO)는 14일(현지시간) 관련 보고서를 내고 “AI 투자 거품이 붕괴하면 비트코인도 초기에는 다른 위험자산과 함께 하락할 수 있다”면서도 “경기 침체에 대응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통화 공급을 확대하면 비트코인이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예상했다. AI 산업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정부가 대규모 지원에 나설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반대로 AI 산업이 성공하더라도 비트코인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게 호건 CIO의 주장이다. AI 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 쉽게 복제하거나 생산할 수 없는 자산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는 비트코인과 함께 금과 부동산 등을 대표적인 희소자산으로 꼽았다. AI 산업이 급격한 변화 없이 완만하게 성장하는 경우에도 ETF를 통한 자금 유입과 기업·기관의 투자 확대가 비트코인 가격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이는 장기적인 가능성을 짚은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비트코인도 기술주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서비스업체 스톤엑스의 매트 심프슨 시장분석가는 15일(현지시간) 보고서에서 최근 5거래일간 비트코인과 나스닥, 엔비디아,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간 상관계수가 모두 0.9를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비트코인이 최근 기술주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여온 만큼 주식시장 변동의 영향을 계속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번 반등이 지속되려면 신규 투자자금 유입이 뒷받침돼야 한다. 파사이드 인베스터스가 집계한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자금 흐름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2억 614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다음 날 비트코인 현물 ETF에 510만 달러가 순유입됐지만 전날 유출 규모에는 크게 못미쳤다. 저가 매수세가 가격 하락을 막더라도 새로운 자금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으면 상승세를 이어가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금리 정책도 변수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15일(현지시간) 발표한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1.3% 상승했다. 2022년 3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하루 앞서 발표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월 대비 3.7% 올라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거나 높은 수준을 장기간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비트코인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