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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먹으려고 KTX 탄다… 2030 ‘떡지순례’ 열풍

요약
  • MZ세대를 중심으로 전국 유명 떡집을 방문하는 '떡지순례'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 전통 떡에 이색적인 재료를 결합한 디저트가 SNS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유통업계에서도 관련 상품 출시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아무튼, 주말]
어르신 간식거리에서
MZ 디저트로 변신한 떡


전국 떡보를 강원도 속초로 불러들이고 있는 ‘육구방앗간’ 찹쌀모찌. 떡의 쫀득함은 한국인이 특히 선호하는 식감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전국 떡보를 강원도 속초로 불러들이고 있는 ‘육구방앗간’ 찹쌀모찌. 떡의 쫀득함은 한국인이 특히 선호하는 식감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13일 오전 9시 30분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식품관 입구. 문이 열리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지만 이미 72명이 대기 중이었다. 이들은 지난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전국 떡지순례’ 팝업 행사의 입장 번호표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줄 맨 앞에 선 남성은 “오전 7시 15분에 도착했다”고 했다.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대기 인원은 200명을 넘었다. 백화점 관계자는 “일부 인기 떡집은 오후 1시 준비한 떡이 다 팔려 조기 마감할 정도”라며 “떡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달콤하고 화려한 빵과 케이크에 밀려 ‘어르신들의 간식거리’로 치부되던 떡이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유명 떡집 앞에는 개장 전부터 인파가 몰려 줄을 서는 ‘떡픈런(떡+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된 인기 떡은 일찌감치 완판된다. 대전 성심당 등 전국 유명 빵집을 찾아가기 위해 기차를 타던 ‘빵지순례’ 유행도 이제는 ‘떡지순례’로 옮겨왔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번진 떡 열풍은 갑작스럽고 새로운 현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떡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가장 사랑해 온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식품 전문가들은 “베이글,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등 그동안 유행한 아이템들은 모두 떡의 식감을 따랐기에 성공했다”고 입을 모은다.

13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식품관 입구에 ‘전국 떡지순례 시즌2’ 팝업 행사의 입장 번호표를 받기 위해 개장 전부터 길게 대기 줄이 섰다. /김성윤 기자 13일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식품관 입구에 ‘전국 떡지순례 시즌2’ 팝업 행사의 입장 번호표를 받기 위해 개장 전부터 길게 대기 줄이 섰다. /김성윤 기자
명절 별식에서 MZ 디저트로

과거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에 주로 먹는 것으로 여겨지던 떡은 최근 젊은 층에서 인기 디저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개성 있는 떡집 앞에 줄 서는 떡픈런, 유명 떡집을 직접 찾아가는 떡지순례가 유행하고 있다. 쫀득한 찹쌀떡 안에 생과일과 그릭요거트를 채워 넣은 ‘생과일 찹쌀떡’으로 인기인 서울 성수동 ‘한정선’ 본점 앞에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세 자릿수 대기 등록이 이어진다. 백설기 위에 토마토소스·치즈·페퍼로니 등 피자 토핑을 얹은 ‘피자설기’를 처음 선보인 부산 ‘영도다리떡방’까지 KTX를 타고 찾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육구방앗간 때문에 (떡집이 있는) 강원도 속초 대표 음식이 물회에서 찹쌀떡으로 바뀌었다”는 말도 나온다.

유통업계에서도 떡의 인기에 주목하고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온라인 유통 플랫폼 마켓컬리는 올해 6~8월 ‘떡·한과’ 카테고리 거래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2배 증가했고, 이에 발맞춰 관련 상품 라인업을 180% 늘렸다. 신세계(SSG)닷컴은 전국의 실력 있는 떡집을 발굴해 온라인 판로를 돕고 브랜드 마케팅을 지원하는 ‘미식 크리에이터 발굴 프로젝트-떡지순례편’을 기획했다. 편의점 CU는 절편을 서구식 디저트로 재해석한 자체(PB) 상품 ‘피자절편’을 출시했고, GS25가 출시한 ‘한정선 요거트 찹쌀떡’은 퀵커머스(배달·픽업) 카테고리에서 전체 아이스크림·디저트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국 떡지순례 시즌2'에 나온 다양한 떡 제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백년화편' 누텔라 초코설기, '봄날엔' 요거 망고/블루베리떡, '대흥떡집' 단호박설기, 영도다리떡방 피자설기. /롯데백화점 '전국 떡지순례 시즌2'에 나온 다양한 떡 제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백년화편' 누텔라 초코설기, '봄날엔' 요거 망고/블루베리떡, '대흥떡집' 단호박설기, 영도다리떡방 피자설기. /롯데백화점
떡지순례, 떡볶이에서 유래

떡지순례라는 신조어는 본래 떡볶이와 성지순례의 합성어에서 출발했다. 2022년 5월 떡볶이 맛집 투어 모임을 이끌던 홍금표씨가 전국 떡볶이 맛집 124곳을 엄선해 소개한 책을 펴냈다. 이 책 제목이 ‘떡지순례’다. 본래 떡볶이를 찾아다닌다는 뜻에서 생겨났지만, 이제 떡지순례는 전국의 이름난 떡집을 순례하는 의미로 그 쓰임새가 완전히 정착했다.

떡지순례 열풍을 가장 먼저 불러일으킨 곳으로는 전남광주시 ‘창억떡집’이 꼽힌다. 단호박을 넣은 떡에 카스텔라 고물을 묻힌 ‘호박 인절미’가 SNS를 통해 주목받으면서 폭발적인 유행으로 번졌다. 이후 피자설기 등 특색 있는 떡이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색 떡이 불러온 떡지순례 열풍은 전통 떡으로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팥 껍질을 벗긴 거피 팥고물을 묻힌 이북식 인절미 명가 ‘도수향’, 3대째 명장의 손맛을 이어가며 ‘이티떡’을 파는 ‘경기떡집’, 궁중 잔치나 임금 수라상에 오르던 두텁떡을 선보이는 70년 전통 ‘비원떡집’이 순례 1번지로 꼽힌다.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강릉 기정떡 전문점 ‘동해기정’, 원주 ‘만낭포감자떡’, 오메기떡이라는 이름을 처음 썼다는 제주 동문시장 ‘아남떡집’ 등이 떡지순례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전국 떡지순례 시즌2'에 나온 다양한 떡 제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할모니' 호박절미, '영동떡방앗간' 밥알찹쌀떡, '창원생과방' 과일 망개떡, '육구방앗간' 찹쌀모찌. /롯데백화점 '전국 떡지순례 시즌2'에 나온 다양한 떡 제품.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강할모니' 호박절미, '영동떡방앗간' 밥알찹쌀떡, '창원생과방' 과일 망개떡, '육구방앗간' 찹쌀모찌. /롯데백화점
익숙한 식감과 낯선 맛의 결합

떡지순례 성지로 이름난 떡집들은 전통적인 떡의 본바탕 위에 서양식 디저트 재료를 과감히 결합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식감을 새롭게 창조했다는 점이 핵심 성공 비결로 꼽힌다. 가장 파격적인 사례가 피자설기다. 백설기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페퍼로니를 듬뿍 얹어 구워낸 피자설기는 익숙한 피자의 맛에 떡 특유의 쫀득한 식감을 더해 젊은 층을 끌어들였다. 글로벌 피자 브랜드 피자헛마저 떡지순례 트렌드에 가세해 신메뉴로 피자설기를 내놓았을 정도다.

과일 찹쌀떡은 사실 나온 지 꽤 됐지만, 혁신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한 경우다. 과일 찹쌀떡은 1980년대 일본에서 탄생했다. 국내에는 2010년대 초반 소개됐다. 하지만 한정선 등에서는 고전적인 팥소를 줄이거나 아예 빼고, 대신 생과일과 요거트 크림을 가득 채워 상큼함을 끌어올리며 첨단 디저트로 다시 태어났다.

떡은 시각적 매력이 중요한 SNS에 최적화된 디저트라는 점도 젊은 층을 사로잡는 요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잘 맞아떨어진다. 맛과 향은 화면 너머로 전달하기 어렵지만, 잡아당기면 쭉 늘어나는 떡의 쫀득함이라는 물성은 숏폼(짧은 영상)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전달된다. 결국 떡은 SNS에서 과시하고 표현하기 알맞은 디저트로 최적화됐고, 여기에 떡을 사기 위해 오래 줄 서서 기다리는 과정 자체도 콘텐츠이자 가치로 소비되며 떡지순례로 이어지고 있다.


성공한 디저트 모두 떡 모방

떡지순례 열풍은 새삼스러운 기현상이 아니라, 한국인 특유의 쫀득한 식감 사랑 유전자가 다시 발현된 결과다. 한국인은 쫀득한 식감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역사와 식습관을 가졌다. 한국어는 ‘쫄깃쫄깃’ ‘쫀득쫀득’ 등 미묘한 질감을 세분화하고 묘사하는 감각어가 유독 발달했다는 점도 식감에 대한 한국인의 유별난 집착을 방증한다. 디저트 업계 전문가들이 “국내 떡 인기가 해외에서 들어온 다른 디저트보다 오래갈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한국인이 떡을 먹어온 역사는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 최초의 곡물 요리는 토기에 끓인 죽이었지만, 가열 시 흙냄새와 불순물이 섞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기로 찌는 시루가 발명됐다. 이것이 본격적인 떡의 기원이다.

한국인이 주식으로 먹는 쌀은 자포니카 품종으로, 인디카 품종보다 찰기를 형성하는 아밀로펙틴 성분 함량이 월등히 높아 특유의 쫀득한 식감이 강하다. 오랫동안 곡물과 채소 위주의 식문화를 이어온 한국인에게 쫀득한 식감은 익숙한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족발, 편육, 곶감 등도 수분을 제거해 입안에 찰지게 달라붙도록 물리적으로 변형시킨 쫀득한 음식들이다. 사실 베이글·두쫀쿠·찰떡아이스 등 최근 인기를 얻은 음식은 모두 떡의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모방해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이효정 창업자는 여러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베이글의 질기고 딱딱한 식감에서 벗어나 한국인에게 친숙한 떡의 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내기 위해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음식 작가 박정배씨는 “혈당 관리와 저당·제로 트렌드가 휩쓰는 시대지만 떡만큼은 수천 년 한민족 혀에 각인된 쫀득한 식감 덕분에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끌고 있다”며 “전 세계 식재료와 결합하면서 K디저트의 최전선에서 계속해서 다채롭게 진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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