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현지시각) 페루 시마(SIMA)조선소에서 HD현대중공업과 시마조선소가 공동 건조한 '침보테(Chimbote)함' 진수식이 진행됐다./페루 대통령실 홈페이지HD현대중공업이 아르헨티나가 발주하는 신형 잠수함 사업 수주에 도전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아르헨티나 해군은 사업 규모가 3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되는 신형 잠수함 최소 3척 이상을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아르헨티나 해군으로부터 잠수함 설계·건조 능력 등 정보 요청을 받고 최근 관련 내용을 회신하는 등, 수주 도전을 공식화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HD현대가 최근 자체 개발하는 수출용 1500t급 잠수함 HDS-1500 관련 상세 정보를 아르헨티나 측에 제공했다”고 했다.
원래 이 사업은 프랑스 국영 조선업체인 나발그룹의 잠수함 도입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HD현대가 나타나며 유럽 대 한국 경쟁이 될 전망이다.
해양방산 업계가 해외 잠수함 사업 전선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도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외 잠수함 사업만 현재 6건에 이른다. 잠수함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곧 국내 잠수함 건조 발주가 씨가 마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잠수함 건조 사업은 2029년이면 더 이상 예정된 물량이 없다.
HD현대중공업이나 한화오션 모두 일종의 ‘잠수함 사업부’를 별도로 두고 있는데, 물량이 없으면 잠수함 건조 경력이 풍부한 인재들이 사실상 유휴인력이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 해외 사업 수주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오랜 기간 우리 군이 발주하는 물량에 주로 의존해왔는데, 내수 시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기업들도 다급해진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하는 수출용 잠수함(HDS-2300)의 조감도. /HD현대◇페루부터 그리스까지… 해외 사업 다 두들긴다
이른 시일 내 가장 수주가 유력한 것으로 꼽히는 사업은 페루의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이다. 페루 해군은 1970년부터 운용한 노후 독일제 잠수함을 대체하기 위해 신형 잠수함 2척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HD현대는 작년 페루 국영 시마(SIMA) 조선소와 잠수함 공동 개발 및 건조 의향서를 체결하고 페루 해군 차세대 잠수함 기본 설계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두 업체가 공동 건조한 신형 상륙지원함 ‘침보테함’ 진수식도 개최했다.
HD현대는 한국 해양 방산 ‘텃밭’이라 일컫는 필리핀 잠수함 사업에도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군 3차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는 필리핀은 이 사업 일환으로 잠수함 2척을 처음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HD현대는 지금껏 필리핀으로부터 함정 12척을 수주하는 등 필리핀 해군의 핵심 파트너로 꼽힌다.
한국 해군이 운용하는 잠수함 20척 가운데 13척을 건조하고 2011년 한국 최초로 잠수함 수출에 성공한 ‘잠수함 명가’ 한화오션도 필리핀 사업에 도전장을 낸 상황이다. 연말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나오면 두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오션은 칠레 잠수함 사업 수주도 노리고 있다. 칠레 역시 1980년대부터 운용한 독일제 잠수함 2척을 대체할 차세대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칠레 측에 수출용 2000t급 ‘오션2000’을 이미 제안한 상황이다. 한화오션은 이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잠수함(최소 4척) 도입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HD현대와 한화오션은 신형 잠수함 4척 도입을 추진하는 그리스 측에도 최근 잠수함 사업 제안서를 낸 상황이다. 조정식 국회의장이 13일(현지 시각) 그리스를 방문해 HD현대·한화오션 관계자들과 그리스 의회 인사들 간 자리를 마련하며 지원 사격에 나서기도 했다.
◇물량 1척밖에 안 남았다… 수출 절박한 업계
한국 기업들은 해외 잠수함 사업에서 작년 말 8조원 규모 폴란드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 ‘오르카’에서 스웨덴 기업 사브에, 지난 7월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 ‘CPSP’에서는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즈(TKMS)에 밀리며 수출 물량이 없는 상황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9월 15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진수를 앞둔 서희함을 공개했다. 서희함은 해군의 최신예 잠수함 기종인 장보고-Ⅲ 배치-Ⅱ(장영실급) 2번함으로, 진수와 시운전을 거쳐 내년 말 해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연합뉴스한국 해군이 가장 최근 발주한 중형 디젤 잠수함 사업으로는 한화오션이 맡은 장보고-III 배치-II(3600t)급 3척 건조 사업이 있다. 1번함(장영실함)은 2025년 건조돼 진수를 마쳤고, 2번함(서희함) 역시 최근 건조를 완료하고 올해 시운전에 들어간다. 사실상 현재 국내에 남은 중형 디젤 잠수함 건조 물량은 2029년까지 건조 예정인 3번함 1척이 전부인 것이다.
정부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비용 문제와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등 과제가 산적해 업계에서는 이른 시일 내 현실화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라는 얘기가 많다. 자칫 100여개에 달하는 국내 잠수함 핵심 소부장들의 일감이 부족해지며 잠수함 생태계가 동력을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한국은 디젤 잠수함에 있어서 유럽에 버금가는 ‘명품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내수 시장에만 초점을 맞춰온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정부가 이제는 잠수함 생태계가 수출을 통해 규모·범위의 경제가 실현이 가능하도록 수출을 적극 지원·장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