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7000 돌파에 자신감 넘쳤던 여권…7거래일 하락에 5500선까지 후퇴
지선 승리 후 뒤집힌 경제 성적표…오세훈 재판·차기 총선 앞두고 민심 변수
"부동산 정상화는 어려운 일이지만 계곡 불법시설 정비나 주식시장 정상화보다는 쉬운 일입니다."(이재명 대통령, 2월24일)
"주식 계좌를 보면서 마음이 흐뭇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민주당 기호 1번에게 투표해달라."(정청래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5월29일)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경제는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었다. 코스피가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자 정부·여당은 이를 국정운영의 성과로 내세우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경제의 표정이 달라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주가는 급락했고, 잡힐 것이라던 집값은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차기 총선까지 500여일 남은 가운데, 오는 23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항소심 선고 결과에 따라 서울시장 재선거라는 변수까지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경제를 바라보는 민심마저 차갑게 식어가면서 여권에도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인공지능(AI) 산업 수익성 논란 재점화 등으로 코스피와 코스닥이 폭락한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종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호재에서 변수로…李정부 1년차, 민생 경제 '서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경제의 상징은 단연 주식시장이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코스피 5000'은 올해 1월 현실이 됐다. 이후 코스피는 6000선을 넘어 7000선까지 빠르게 돌파했다. 주식시장 저평가 해소를 강조해 온 정부의 정책 기조와 글로벌 반도체 업황 호조, 풍부한 유동성 등이 맞물리면서 국내 증시는 유례없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여권에도 힘이 실렸다. 민주당은 코스피 상승을 이재명 정부의 정책 성과로 적극 홍보했다. 지난 1월 코스피가 처음 5000선을 돌파했을 당시 박홍근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내 코스피 5000을 약속했는데, 8개월도 되지 않은 지금 공약을 조기 달성했다"며 "자본과 시장은 정직하다"고 강조했다. 주가 상승을 단순한 시장의 호황을 넘어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을 입증하는 근거로 내세운 셈이다.
이 같은 자신감은 지난 6·3 지방선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5월29일 서울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주식으로 이익을 본 유권자들을 향해 민주당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가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선거라고 규정하며 코스피 상승을 투표와 직접 연결했다.
경제 성과를 정치적 지지로 연결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2곳을 차지하며 승리했다.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에서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역전패했지만, 부산을 탈환하는 등 지방 권력의 지형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여당으로선 경제적 성과가 국정운영 동력을 뒷받침한다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상황은 녹록치 않다.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급격한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7월 말 코스피가 급락한 데 이어 9월 7000선을 회복하면서 반등 기대감을 키웠지만, 10월 들어 다시 거센 매도세가 쏟아졌다.
특히 지난 15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7.57% 폭락한 5554.22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도 7.65% 급락하면서 양 시장 모두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증시 상승을 주도하던 대형 반도체주들이 동반 하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도 커졌다. 16일에는 2.05% 반등해 5668.05로 마감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7000선을 웃돌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 역시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SNS를 통해 부동산 정상화가 주식시장 정상화보다 어렵지 않다며 강한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도 커졌다.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가격 안정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면서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오른쪽)와 최민희 최고위원이 9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일희일비' 선 그은 정부…야권은 '책임론' 제기
물론 증시와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을 정부 정책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 증시 급락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과 인공지능(AI) 산업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 국제유가 상승 등 대외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 역시 지난 15일 긴급 점검회의에서 대외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 확대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주력 산업의 실적과 경제 기초체력이 여전히 견조하다는 입장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작은 변동성에도 경각심을 갖고 금융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에 적극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시장의 일시적인 하락을 정부 정책 실패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여권이 강조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부담까지 피해 가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가 호황일 때 이를 정부·여당의 성과로 적극 내세운 만큼, 상황이 나빠졌을 때도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야당도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국민의힘은 단순한 대외 악재를 넘어 정부의 금융정책이 시장의 과열과 충격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특히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비중 확대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6일 논평에서 최근 증시 급락과 관련해 "제동장치는 풀고 가속페달만 밟더니, 결국 서킷브레이커가 터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연금의 주식 비중 조정과 레버리지 ETF 도입 과정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며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국민의힘은 주식시장의 과열과 투자자 손실에 대한 정부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입장이다.
야권의 공세가 커지는 가운데 여권으로선 선거 시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 선고가 오는 23일 예정돼 있다. 오 시장은 지난 7월 1심에서 시장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결과와 이후 상고심 판단에 따라 시장직 상실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판결이 확정돼 재선거가 치러질 경우 서울 민심을 다시 확인하는 시험대가 마련될 수 있다.
더 큰 변수는 2028년 총선이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는 패배했다. 더욱이 최근 서울의 부동산 문제와 증시 불안이 겹치면서 수도권 민심의 향방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제 성과가 흔들릴 경우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뿐 아니라 여당의 선거 전략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경고 신호가 감지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6일 발표한 결과, 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39%, 부정 평가는 52%로 나타났다.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2%포인트 상승하며 취임 후 최저치에서 벗어났지만, 부정 평가 역시 1%포인트 올랐다. 특히 서울 지역의 긍정 평가는 29%에 그쳤다.
주목할 점은 부정 평가의 이유다. '부동산 정책'이 19%로 가장 높았고, '경제·민생·주식시장 대응'이 12%로 뒤를 이었다. 한국갤럽은 최근 경제 관련 부정 평가가 늘어난 배경에 코스피의 7거래일 연속 하락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짚었다.
차기 총선에 대한 인식에서도 여권이 마냥 웃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같은 조사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은 47%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34%)을 13%포인트 앞섰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민주당이 36%로 국민의힘(27%)에 앞섰지만, 총선에 대한 기대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 내부에서도 민심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수도권 지역구의 민주당 한 의원은 "주식시장은 대내외 변수에 따라 움직이고, 부동산 시장은 이제 막 공급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만큼 당장의 등락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다만 정부와 여당은 '무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족한 부분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서 인용한 조사는 한국갤럽이 지난 10월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3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했다. 응답률은 10.4%,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