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비극보다 내 금전적 손실에 더 큰 충격…뇌가 보내는 '위험 신호'
손실 만회하려다 충동적 투자로 이어져…불안할수록 투자 화면과 거리 둬야
최근 증시 급락 이후 찾아온 불확실성에 투자자들의 마음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일 때면 유난히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대형 반도체주부터 코스닥 개별 종목까지, 빚을 내 투자한 사람들에게는 반대매매라는 또 다른 공포감이 밀려온다. 반대매매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을 산 뒤 만기일까지 갚지 못하거나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졌을 때,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로 하한가에 팔아 대출금을 회수하는 제도다.
또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람들의 입에서는 "이제 주식은 접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당장 생활비부터 줄여야 할 것 같다는 직장인들의 한숨도 이어진다. 그만큼 개인투자자들의 상실감이 크다는 의미다. 지수가 조금씩 반등하더라도 예전처럼 쉽게 투자금이 다시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전망이다.
© ChatGPT 생성이미지숫자로 축소되는 타인의 고통
그런데 주식 손실로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왜 우리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 대홍수 같은 대형 참사 소식보다 내 주식 계좌에 찍힌 손실 숫자에 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일까. 남의 불행에는 비교적 담담하면서 내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일에는 밤잠을 설치는 마음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
사실 이 솔직한 인간의 반응은 뇌 작용 탓이다. 최근 영국 서식스대학교 댄 캠벨 마이클존 교수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사회·인지·정서 신경과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가 그 단서를 보여준다. 연구진은 성인 25명에게 가상의 뉴스 헤드라인을 보여주면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의 반응을 관찰했다.
그 결과 대형 참사 뉴스를 접했을 때 참가자들은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생존과 이익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인간의 이중적 본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생사를 넘나드는 타인의 생명 위협보다 자신의 금전적 손실에 더 민감하게 아파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인명 피해를 마주했을 때의 뇌 반응이다. 참가자들은 인명 피해 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그 반응이 둔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1만 명이 숨진 사고보다 10명에서 500명이 숨진 사고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고, 인명 피해가 500명을 넘어가면 이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이라기보다 하나의 숫자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생각해 보면 이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현상도 아니다.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하고 놀란다. 하지만 사망자가 수백 명, 수천 명으로 늘어나면 어느 순간 화면에 표시된 숫자를 건조하게 바라보게 된다. 10명의 얼굴과 슬픔은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지만 천 명, 만 명의 고통을 한꺼번에 떠올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한 번에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에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런 경향은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같은 사고라도 내가 사는 곳에서 벌어진 일인지,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인지에 따라 느끼는 공감의 크기는 달라진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고통일수록 그 아픔을 나의 감각으로 옮겨오는 일은 어려워진다. 세상의 비극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똑같은 무게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산 손실에 격렬 반응하는 뇌의 메커니즘
그런데 돈의 문제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연구진 분석에서는 경제적 손실 규모가 커질수록 감정적인 반응도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손실 단위가 커질 때마다 뇌가 받는 충격 또한 고스란히 비례해 커졌다. 인명 피해가 커질수록 반응이 둔해진 것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 차이를 생각하면 주식 계좌를 바라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투자자들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수백만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수천만원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은 단순히 숫자가 줄어드는 사건이 아니다. 그 돈은 다음 달 생활비일 수 있고, 대출금 상환금일 수도 있다. 자녀의 교육비일 수도 있고, 평생 모아온 노후자금일 수도 있다. 돈이 곧 생활이고 선택이며 미래인 사람에게 금전적 손실은 단순 재산 감소가 아닌, 지금의 삶과 앞으로의 삶이 흔들리는 경험에 가깝다. 그래서 내 주식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 숫자가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사실은 뇌의 작용 부위다. 연구진은 타인의 인명 피해를 접했을 때와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마주했을 때, 뇌의 비슷한 영역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바로 배내측 전전두피질(dmPFC)이다. 이 영역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자신의 행동과 가치를 돌아보고, 사회적 상황을 판단하는 과정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타인의 비극과 내 지갑의 손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뇌의 입장에서는 둘 다 '중요한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로 처리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자신의 중요한 가치가 위협받을 때 손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를 행동경제학에서는 '손실 회피성(Loss Aversion)'으로 설명한다. 사람은 같은 크기의 이익과 손실이라도 이익에서 얻는 기쁨보다 손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12배에서 2.5배 더 강렬하게 느낀다는 법칙이다. 그래서 주식이 올랐을 때의 기쁨보다 떨어졌을 때의 공포가 오래 남는다. 100만원을 벌었을 때보다 100만원을 잃었을 때 훨씬 더 속이 쓰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니 주가가 폭락했을 때 숨이 턱 막히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너무 나무랄 필요는 없다. 남들은 별일 아닌 듯한데 속물처럼 왜 나만 이렇게 괴로운가 싶어 자책할 필요도 없다. 내 돈이 줄어드는 순간, 뇌는 그것을 숫자 변화가 아니라 내 삶에 닥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뇌의 비상벨이 크게 울릴수록 투자자는 오히려 더 충동적인 선택을 하기 쉽다.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조급함에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이미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또다시 빚을 내 투자할 수도 있다. 내가 돈을 잃었다는 사실과 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럴수록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먼저 살피고, 뇌의 비상벨이 잠잠해질 때까지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보자. 돈을 잃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돈을 잃었다는 이유로 나 자신까지 잃지 않는 일이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